#한국어 수업 10강
외국어 공부의 어려움 중 하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정확한 단어를 다른 언어의 단어 안에서 잘 찾는 일이다. 새로운 단어를 사전에서 찾을 때면 그와 관련된 여러 단어 목록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중 과연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것과 딱 맞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래저래 예문도 살피고 쓰임도 살피지만 이 어려움은 사전으로만 해결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그것이 영어와 같이 이미 여러 예시가 나와 있는 언어가 아닌 제2 외국어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새로운 단어 목록을 설명할 때 가능하면 여러 예외와 다양한 쓰임의 예를 설명하는 편이다. 물론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때로는 그 쓰임들이 언어에 담긴 문화나 재미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에 학생들도 재미있어한다.
동사 목록 중에 설명이 필요한 단어 중 하나는 ‘놀다’이다. 스페인어로 ‘놀다 Jugar’는 게임을 하거나, 운동 경기를 하는 정확한 놀이와 게임의 개념을 가지지만 한국어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내일 뭐해?”
“놀아”
“요즘 뭐해?”
“놀아”
이 대화에서 ‘놀아’는 뭘 하고 논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뭐 특별한 일 없는데,,’ 혹은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특별한 일 없이 쉰다’ 이 정도의 말을 대신하는 단어로 쓰인다. ‘뭘 하고 논다’는 게 아니라 ‘아무것(목록화할 수 있는 특정한 것)도 안 한다’의 의미가 담긴 것이다.
한국어에 ‘놀다’ 동사가 있다면 스페인어에는 ‘나가다 salir’라는 동사가 있다. 스페인 친구들에게 “너 오늘 저녁 뭐해?”라고 물으면 종종 “salgo (나가)”라는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응? 나간다고? 뭐 하러?”
그런 건 없다. 이 친구들에게 나간다는 의미는 ‘논다, 놀러 나간다’는 의미다. 특별히 약속이 있어서 뭘 하러 나가는 건 아니고, ‘뭐 특별한 건 없어. 그냥 나가보면 뭐가 있겠지.’ 이런 식이다. 한국어의 ‘놀다’ 쓰임과 비슷한 듯 다르다. 스페인 친구들에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정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다. 그것이 놀이가 되려면 일단 나가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특별한 거 안 하는 상태’를 ‘놀다’라고 말하는 한국어가 훨씬 긍정적이고 여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 긍정적 여유로움이 정작 우리의 삶에 있나? 묻게 된다. 말로는 이렇듯 ‘놀 줄’ 아는 인간인데 정작 그 ‘아무것도 안 함’의 공백을 어떻게든 다른 동사들로 못 채워 안달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내가 스페인어로 아무 약속 없는 저녁을 그냥 ‘나가는’ 저녁이라고 말하는 것이 영 어색했듯이 콜롬비아 친구들도 아무것도 안 하는 주말을 ‘노는’ 주말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딘지 익숙하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두 단어는 참 닮았다. 아직 구체적인 다른 동사들로 자리가 채워지지 않은 그렇기에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동사임에도 아직 동작되지 않은’ 그런 단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이 놀고, 많이 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