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 11강
나는 한국 사람 치고는 말이 짧은 사람 중 한 명이다.
크게 나이차가 나거나 사회적 관계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꽤 쉽게 말을 놓는 버릇이 있다.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반말은 분명 좋지 않은 습관이라 조심하는 편이지만 관계가 편해지면 나도 모르게 불쑥 동의하지 않은 반말이 나와 당황하곤 한다. 그렇다고 버르장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까지 고백하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 반말이 어렵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에서 반말을 쓰며 사는 일이 그렇게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이와 상관없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학교 교수님이나, 친구의 부모님 등 차마 ‘너’나 이름을 부르기가 영 어색한 관계들이 있었다. 뭐가 문제야? 그럼 그냥 존댓말 쓰면 되지 않나? 싶겠지만 그 사회는 또 존댓말을 하면 오히려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 또한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뱐말을 쓰는 것이 배려가 되는 경우도 있는 법이니까.
한국어의 존댓말이 어렵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외국인에게만 어려울까.
“왜 반말해?” “말이 짧다?”
한국인들 사이의 대화에서도 이 존댓말이라는 것은 툭툭 대화의 걸림돌이 되곤 하니 어느 한쪽의 어려움은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국어 존대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나이, 사회적 위치, 역할 등 다양한 관계들이 얽혀 있고 그 경우의 수를 모두 펼쳐놓고 바른 존대법을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설명을 하다 보면 ‘뭐 이렇게 까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낯선 사람에 대한 배려나, 상대방에 대한 존중, 손 윗사람에 대한 예의로서의 존대뿐 아니라 사회적 서열 문화가 만들어지는 화법으로서의 존대도 있기에 더더욱 설명하기가 어렵다.
형태도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 ‘주다’라는 동사만 보아도 내가 윗사람에게 무언가를 줄 때는 ‘드리다’라는 말을 쓰고. 윗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준다라는 문장에는 ‘주시다’를 쓴다. 말하는 사람과 말하는 대상, 문장의 주어 등, 다양한 요소를 모두 고려해야만 제대로 된 문장을 만들 수 있다. 게다가 존대의 단계도 ‘주세요’ ‘주십니다’ 등 다르니 어느 정도 관계에서 ‘~세요’체를 쓸지 ‘~십니다’ 체를 쓸지를 딱 선긋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느낌이며 경험이고, 자의적 판단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스페인어에서 존대는 주어를 ‘너’라는 2인칭이 아닌 ‘당신’이라는 3인칭으로 바꾸어 동사 변형을 하는 형태를 가진다. 주어에 따라 동사 변형이 되는 언어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2인칭에게 3인칭 동사 변형으로 말을 하면 존칭이 되는 것이다. 이 말은 2인칭과 3인칭간의 거리감이 생기는 것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존대를 쓰는 관계는 좀 더 낯선, 거리감이 있는 관계를 가지고 대화하는 느낌이라고 해야겠다. 어쩌면 상하, 서열 관계보다는 친밀도의 차이가 그 구분점에 있다 보니 더더욱 존칭을 반기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이가 이 정도란 말이야?” 이런 정도의 거부감이지 않을까.
스페인에서 존댓말을 쓰지 않아 편했던 것은 누구 하고나 편하게 논쟁하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평등함이었고, 불편한 것은 존대가 주는 안전한 거리감 확보, 그로 인한 관계의 안락함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는 이 두 언어가 가지고 있는 존대의 기본 틀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문득 생각이 든다.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한국어의 존댓말을 배우는 친구들이 존대를 서열이나 계급의 말이 아닌 존중과 배려의 말로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다소 어색하겠지만 그 거리감이 주는 안락함 또한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
숙제 체크를 해서 보내며 ‘주말 잘 보내요’라고 인사를 보냈더니 답 톡이 왔다.
“고마워요! 너도.”
풉. 이런 또 실수했네. 동사를 존댓말로 쓰는 것은 실수를 잘 안 하는데 명사 조사 뒤에도 ‘요’를 붙이는 것, ‘너’를 다른 명사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은 몇 번을 말해도 익숙하게 쓰지 못한다. 그래도 한국어의 존댓말이 스트레스가 되면 안 되니까, 겨우 애써 한글로 답 톡 했는데 기죽이면 안 되니까 다음 수업시간에 한번 전체적으로 다시 설명을 해야지 하며 그냥 넘어간다.
‘너도’라고 하면 어때?
아직 그 안에는 어떤 거리감도, 버릇없음도 없는데 말이다.
언어 초급인 학생들의 말이 짧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