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연연하기

#한국어 수업 13강

by 로하

드디어 과거다.


언어를 배우는 일반적 순서를 따라가다 보면 제일 먼저 현재 시제를 배우게 되지만 사실 현재 시제를 일상 대화에서 많이 쓸 일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금 이 순간’이 아니고서야, 혹은 반복되는 일반적 행동에 대한 정보를 줄 일이 아니고서야 현재는 문장에서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드디어’ 과거를 외치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과거’ 시제를 만나는 순간, 언어의 세계는 급격히 확장된다. 우리의 시간은 대부분 이렇게 과거에 있다


“다른 과거는 없어요?”


‘다른 과거’라니? 과거는 과거일 뿐 이란다! 한국어를 가르치며 '아주 쉽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법이 바로 과거이다. 왜냐하면 스페인어와 비교해서 한국어의 과거 변형은 정말 단순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어의 과거는 어렵기로 유명하다. ‘내가 오늘 친구를 만난 것’과 ‘어제 만난 것,’ ‘어느 과거에 습관처럼 누군가를 만난 것’을 말하는 과거 형태가 다 다르다. 적어도 이 세 가지 경우의 과거 형태는 알아야 지나 간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가 있다. 과거를 향해 가는 길이 먼 셈이다. 굳이 나의 과거를 카테고리 화하여 이야기를 해야 하는가? 한창 스페인어를 배울 때는 이것이 불만이기도 했다. 여전히 스페인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한숨 소리를 과거를 가르치는 동안에는 듣는다.

하지만 변형이 약간 익숙해지기 시작하면 지난 일을 지금의 현재와 연결하여 다른 느낌으로 나누어 이야기하는 일은 또 다른 흥미로운 부분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현재와 연결된 과거

현재와 분리되는 과거

사진으로 박제된 과거

동영상처럼 상영되는 과거


흑백 필름 속 과거가 이렇게나 다른 톤과 결을 담고 이야기된다. 얼마나 버라이어티(?) 한가. (스페인어 과거에 고통받는 분들에게는 죄송)


과거의 변형이 쉽다고 해서 말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한국어 화자가 스페인어의 과거를 배우고 과거를 세분화하는 것이 어려움이듯 스페인어 화자가 세분화된 과거를 하나로 통합하여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어색함과 어려움일 것이다. 지금은 단순한 과거 변형에 마냥 행복하겠지만 한국어로 무언가 많은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게 되면 분명 그 한계를 느끼지 않을까.


과거를 배우고 맨날 수업 시작에 “어때요?‘라고 묻던 것을 “어떻게 지냈어요?” “뭐 했어요?” 이렇게 물을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의 숙제에도 마땅히 한국어로 쓸 말이 없었는데 ‘잘했어요’라고 과거 시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비로소 대화가 조금은 자연스러워지고 과거가 개입되지 않은 조금은 어색했던 대화의 구멍들이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고? 이런데 어떻게 연연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현재를 살라고?

그래!

현재를 살고

과거를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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