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다’는 말

#한국어 수업 15강

by 로하

“오늘 어때요?”


수업을 시작하며 화면 안으로 나타나는 한 명 한 명의 학생들에게 어김없이 묻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어김없이 똑같은 대답들로 돌아온다.


“괜찮아요.”


생각해보면 스페인어를 처음 배울 때도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에는 기계처럼 ‘좋아요(bien, 비엔)’를 대화의 쌍으로 익혔었다. (스페인어뿐 인가. 영어의 ‘파인, 땡큐, 앤드 유?’는 어떤가.) 굳이 ‘안 좋아’, ‘뭐 그냥 그래’ 이런 복잡한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외국어로 만나는 초보 관계 안에 우리의 안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언제나 그렇게 ‘좋고, 괜찮은 것’이었다.

그러다 조금씩 시간이 쌓이고 관계가 생겨서야 이 교과서 공식 같은 인사말의 질문과 정답은 조금씩 틀 밖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 대신 구체적인 무언가를 묻게 되기도 하고 ‘좋아’ 대신 요즘 어떤 상태인지 이야기하기도 하고, 굳이 ‘안녕, 어떻게 지내? 괜찮아. 너는?’ 이렇게 나아가는 인사말의 순서가 의미 없어지는 것이다. 뭘 해도 ‘괜찮던’ 것들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기까지는 그렇게 관계의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괜찮다’를 관계의 말이라고 하고 싶다.


상태가 괜찮을 때

의견이 긍정적일 때

무엇에 동의할 때

반대로 정중히 거절할 때

공감하며 위로할 때


‘괜찮다’의 말 안에는 이렇게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글자보다는 말로써, 말의 느낌으로써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기계적으로 외워 가볍게 내뱉는 가장 쉬운 정답이기도 하면서 사실 진심으로 ‘괜찮다’라는 한마디를 하는 것은 그만큼 깊고 신중한 일이기도 하다.


오늘도 학생들은 여러 질문에 빠르게 답한다. 반복을 많이 하니 발음도 좋다.


“괜찮아요. 선생님!”


하지만 정말 괜찮은 것인지. 아직은 그 대답이 모호하다.

그래도 괜찮다. 말에 힘이 있다고 했으니 결국 그렇게 다 괜찮아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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