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안 먹을 건데요?

#한국어 수업 16강

by 로하

문제는 “밥 먹을까요?”였다.

약속 잡는 표현을 배우고, 대화문을 만들며 여러 약속 잡기의 예를 보다가 때 아닌 ‘밥’ 논쟁이 벌어졌다.


“우리 오늘 먹을까요?”

“소니아. 그 문장에서는 ‘먹을까요?’ 말고 ‘밥 먹을까요?’ 이렇게 쓰는 게 자연스러워요.”

“밥 안 먹을 거고, 다른 거 먹을 수도 있는데 꼭 ‘밥 먹을까요?’라고 말해야 해요?”

“한국어에서 ‘밥 먹다’는 꼭 ‘밥’을 먹겠다는 건 아니고 일반적인 ‘먹다’의 의미로 쓰여요.”

“그럼 그냥 ‘먹다’라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러게 말이다. 그냥 ‘우리 오늘 먹을까요?’ 이러면 될 일을 한국어에서는 ‘밥 먹을까요?’ 하지 않으면 왜 뭔가 어색한 것일까. 더군다나 주식이 ‘밥’ 문화가 아닌 학생들에게 먹는다는 대표 명사에 꼭 ‘밥’이 들어가는 것은 참 어색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에게 ‘밥’은 그만큼 중요한 명사니까 이참에 얼마나 한국 사람들이 밥을 사랑하는지 이야기해 본다. 흔한 안부 인사 ‘밥 먹었어?’ ‘밥은 먹고 다니니?’부터 기약 없는 약속을 할 때 ‘밥 한번 먹자’하는 것, 식탁을 ‘밥상’이라고 하는 것, 뭘 먹어도 꼭 밥으로 마무리되는 한국인의 음식문화까지 수업 내내 ‘밥.. 밥’ 거리다 보니 정말 우리가 이렇게나 ‘밥’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다시 느낀다.


먹는 일이 사는 일과 직접적으로 밀착되어 있다 보니 언어 속에 식문화가 많이 담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끼니에 대한 단어도 외국인 입장에서 보면 재밌다. 스페인어에는(물론 다른 언어도) 아침 먹다(desayunar). 점심 먹다(almorzar), 저녁 먹다(cenar)에 해당하는 단어가 존재한다. 이에 비해 한국어는 시간을 나타내는 단어 아침, 점심, 저녁이 각 끼니를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그리고 여기에 ‘먹다’를 붙여 동사로 사용한다. 시간은 곧 먹는 일인 셈이다. 때에 맞추어 꼬박꼬박 먹는 일, 삼시 세 끼가 이렇게나 중요한 것이다.라고 언어가 말하고 있다.

말만 다를까. 먹는 음식도, 시간도 다르다. 아침 한상 거하게 차리는 한국인의 아침에 놀라는 외국인 들을 종종 목격하고, 저녁을 9시가 넘어서야 먹는 스페인 사람들의 야식 같은 저녁 문화에 놀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 역시 스페인 예술 학교에 다닐 때 저녁 여섯 시 정도에 항상 조금 긴 쉬는 시간이 주어졌는데 스페인 친구들에게는 보통 가벼운 간식거리를 먹고 차를 마시는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저녁시간이었다. 그래서 끼니가 될 만한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몇 년을 같이 보면서도 6시에 저녁 먹는 나를 친구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그들의 시간에 끝끝내 적응하지 못했다.

이렇듯 먹는 일이 그냥 먹는 일로 통일되지 않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제대로 된 시간에 약속을 정해 모두가 만족하는 한 끼를 먹는 일이란 참 만만치 않구나.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고 보면 보다 보편적이고 일상에 가까운 테마일수록 언어 간 거리는 더 멀다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듯하다.


“오늘 밥 먹었어요?”

“네! 선생님”

“정말 ‘밥’ 먹었어요?”

“ㅎㅎ 아니요 선생님. OO 먹었어요”


그 거리를 조금 더 좁히기 위해, 그렇게 오해가 있다는 것을 서로 알아가면서 오늘도 그저 맛있게 밥을 먹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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