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만나요!

#한국어 수업 17강

by 로하

시작할 때는 6개월이 참 길다고 느껴졌는데 어느새 마지막 시험 날이 왔다. 첫 의지와는 다르게 끝까지 남은 학생들은 반이 조금 넘었다. 언어 수업을 하다 보며 흔한 일이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학생수는 점점 줄어든다. 필수 언어가 아닌 제2외국어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더더욱 마지막 시간까진 다소 긴 여행을 같이 한 학생들이 고맙고 또 아쉽고 그렇다.


온라인 수업이다 보니 시험도 구글 폼을 이용해 화면을 켜 두고 각자 보고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그 사이 말하기 시험을 위해 메신저 영상통화를 개인적으로 한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다. 6개월 만에 처음으로 학생들 개개인과 얼굴을 보고 만나니 화면이나 톡으로 만날 때와는 사뭇 또 다른 기분이 들었다.



클라라는 질문왕이다. 첫날부터 그랬다. 클라라의 줌 화면에는 수시로 ‘손번쩍’ 표시가 올라온다. 그만큼 출석률도 좋았다. 유일하게 개근을 한 친구이기도 하다. 수시로 개인 톡으로 질문 공세를 펼치는 통에 솔직히 조금 귀찮을 때도 있었는데, 그 덕인지 처음에는 다른 학생들에 비해 조금 어려워했지만 수업이 마무리될 쯤에는 우등생으로 거듭났다. 성실함으로 뭔가 결실을 맺는다는 것. 나는 여전히 그 진리가 통하는 세상이 좋기에 클라라를 기분 좋게 응원한다.


수업에서 유일하게 40대였던 마리솔이 10대에서 20대 초반이 대부분인 구성원 사이에서 잘 적응을 할까 걱정이 되어 조금 더 신경을 쓴 것이 사실이다. 감성은 어린 친구들과 다르지 않아서 차은우의 열혈 팬이었다. 과연 6개월을 버틸까 하던 나의 걱정이 무색하게 성적도 상위권으로 수업을 마무리했다. 수업을 마무리하며 한국어에 대한 몇 질문에 대한 답변 영상을 부탁했는데 한껏 멋을 내고 찍은 영상에 훗! 웃음이 났다.


어디나 모범생은 있다. 17살 마리아나는 딱 봐도 ‘모범생’이라고 쓰여 있는 학생이었다. 꼬박꼬박 숙제도 잘하고, 출석률도 좋고, 글씨는 또 얼마나 이쁘게 쓰는지. 똑 소리 나는 학생이었다. 그야말로 선생님이 좋아하는 학생 스타일이다. 기본적으로 차별이 나쁘다는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학생들에게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오고 싶다는데 아마 마리아나는 한국에서 만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수줍음이 많은 까떼리네는 특히나 한국어 발음 때문에 정말 고통스러워한 학생이다. 본인이 원하는 소리가 나지 않아 애를 먹는 것이 수업시간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고 노력하는 게 보여 안타깝고도 항상 응원하고 싶었던 학생이다. 일을 하면서 대학을 다니느라 항상 일 아니면 공부를 하느라 바쁜 학생이었는데 본인 얼굴만 하던 커다란 안경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수업 때마다 화면에 사랑스러운 고양이가 왔다 갔다 하는 고양이 엄마 엘리아나는 스페인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던 한 학생을 생각나게 했다. 외모도 비슷하고, 말하는 어투나 분위기가 너무 비슷해서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자영업을 하고 있다고 해서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했는데 나중에 SNS를 알려주어 보니 선글라스 가게를 운영 중이었다. 매일 편안한 홈패션으로 화면에서 만나다가 SNS에 선글라스 홍보용으로 멋스럽게 차려입고 찍은 사진을 보니 정말 새로운 캐릭터라 깜짝 놀랐다. 역시 온라인의 아쉬움은 이런 조금 더 확장된 삶을 볼 수가 없다는 거구나. 나중에 콜롬비아에 가게 되면 나에게 어울리는 선글라스 하나 추천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주에 한번 작은 화면 속에 등장하던 학생들과의 6개월의 시간이 끝났다. 스페인에서 오프라인으로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그렇게 수업이 끝나도 바로 다음 단계에서 만나기도 하고 동네에서 다른 일들로 만나기도 하고, 말 그대로 같은 하늘 아래 있으니 그 거리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온라인으로 만난 수업은 ‘모두에게 종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 화면 밖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고 다시 우리의 자리는 지구 한 바퀴의 거리감으로 남는다. 그래서 시험이 다 끝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마지막으로 ‘종료’버튼을 누르는 마음이 조금 더 아쉬웠다.


어느 시간이 지나 이 지구 한 바퀴의 거리를 넘어 오프라인의 시간 안에 다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마지막 인사는 ‘감사합니다. 또 만나요! “로 한다.

한국어 수업은 그렇게 ‘안녕하세요’로 시작하여 ‘또 만나요.’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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