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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하 Jan 17. 2022

쑥쑥 어른이 되어가는 친구

“토요일에 뭐해?”

“별일 없어.”

“그럼 네 집으로 갈게. 아침 먹자.”


경기도에 사는, 아직 두 초등학생의 엄마인 친구라 가뜩이나 보기 힘든데 코로나로 그 간극이 더 벌어져 가끔 통화와 톡만 하며 영 얼굴 볼 엄두를 내지 못했는데 연말에 통화하며 1월엔 어떻게든 꼭 보자 했었다. 동네 운전이라 서울 나들이하기엔 아직 겁나지만 용기 내어 한번 가보겠다고. 그리고 연락이 온 것이다.


“7시에서 8시 사이에 갈게”

“응? ㅎㅎㅎ”

“차 안 막힐 때 가려고. 너무 일러?”


뭔 상관인가. 괜찮다 했다.


친구와 나의 주 만남 장소는 강남역이었다. 경기도에서 버스를 타고 오고 나는 2호선을 타고 가면 딱 좋은 위치. 우리의 만남 시간은 대체로 친구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오전이었다. 10시쯤 만나 강남에서 일찍 문을 여는 국밥집에서 아침을 먹고, 커피숍에서 2차 수다를 떠는 것이 1년에 몇 번 안 되는 우리의 만남 패턴이었다. 의례히 만날 때면 그 루틴이 있었으니 ‘뭐하지?’ 고민은 필요 없었다.


무사히 자차 운전으로 서울 골목에 입성한 친구는 로켓 배송을 시킨 단팥죽을 친히 아침 식사용으로 가지고 왔다. 친구 아침을 뭐 해줄까. 고민하다가 콩나물과 두부를 사두었는데 그냥 친구의 단팥죽으로 뚝딱 아침을 먹었다. 


“너 다이어리 올해 거 구했어? 내가 하나 가져왔는데”

“어떻게 알았어? 나 다이어리 필요했는데.”


친구와 나는 대학 친구다. 우리의 대학생활 패턴은 사실 전혀 친할 수 있는 패턴은 아니었다. 당시 학생회 일을 하며 외형적으로는 과의 인사이드 안에 있던 나에 비해 친구는 소위 아웃사이더라 불리는 그룹에 있었다. 수업 마치면 바로 학교 밖으로 나가는 그룹 말이다. 친구의 스타일은 우리 과 다소 수수한 친구들에 비해 돋보였고, 종종 직설적인 친구의 화법에 당황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친구와 어떻게 친해졌는지 그 계기가 기억이 나진 않는데 우린 종종 그 인사이드와 아웃사이드 가운데 만났고, 꽤 잘 맞았다. 내가 학생회장을 할 때는 평소에는 1도 참여 안 하던 학생회 모임에도 의리로 참여해주곤 했다. 


같이 장을 봐서 점심은 친구가 맛있는 파스타를 만들어 주었다. 요리를 하는 동안 옆에서 뻘쭘하게 보고 있는데 친구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네가 본래 요리를 좋아했나”

“좋아하는 게 어딨어. 그냥 하면 느는 거지”


친구는 손재주가 좋았다. 전공과 상관없이 디자인을 하고 싶어 대학 졸업하고 웹 디자인 학원에 다녔고 주로 디자인 회사에서 일했다. 그리고 뒤늦게 디자인 대학원에 다니기도 했다. 초기 창업 붐이 일 때 선릉역이었나. 작은 사무실을 얻어 사업자를 냈던 창업 선배이기도 했다. 원하는 디자인을 프린트해주는 티셔츠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같은 것이었는데 너무 시대를 앞서간 아이템이 아니었나 싶다. 지금 생각하면. 덕분에 나도 스타일리시한 프린트 티셔츠 몇 개를 가지고 있었다.


“요즘 운동도 하고, 독서모임 만들어 책도 읽고 하니 좀 괜찮은 거 같아.”


초록 후드티에 군청색 바지, 초록 캔버스화에 비니. 여전히 패션 감각 남다른 친구는 몇 해 전 봤을 때보다 훨씬 활력이 있어 보였다. 아내이면서 두 아이의 엄마, 늘어나는 흰머리와 쑤시는 몸(이건 나도 마찬가지지만), 생각대로 쓸 수 없는 시간의 한계 안에서 스스로 조금씩 틈을 만들어 에너지를 만들어 낸 듯했다. 그리고 그 에너지는 어딘지 더 묵직하고 단단해 보였다.


몇 달째 냉동실에서 잠자고 있는 멸치를 꺼내어 후다닥 볶아놓고 친구는 또 차 막히기 전에 간다며 짐을 챙겼다. 친구에게 어울린 만한 모자 하나를 골라주고 나는 평생 가야 요리해 먹을 리 없는 집에서 보내준 생선들을 친구 손에 안겼다. 


친구는 쑥쑥 어른이 되어 가는데

나는 여전히 철없는 어린이 같네.


같은 나이,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공통점이 많았던 어떤 시기에 친구가 된 우리는 시간만큼 서로 다른 점을 더 많이 쌓아가고 살아간다. 그럼에도 참 신기하게 어른이 된 친구와 어린이로 남는 친구는 여전히 친구다. 그것도 더 서로를 잘 아는 친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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