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Jan 05. 2021

올해의 소원

며칠 전 유튜브 알고리즘이 베이비박스 관련 영상을 연결해 주었다. 여러 번 봤던 영상인데도 너무 새로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전에 볼 때는 아이들이 가엾다, 정도의 마음이었는데 이번에 볼 때는 정말 신생아구나, 분유와 기저귀가 많이 들겠구나, 애기들이 하나하나 엄마를 찾겠구나, 저걸 어쩌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로 이어졌다.


여름이는 신생아실의 유명인사였다. 하도 울어서. 선생님들이 여름이를 방에 데려다줄 때마다 아기가 별나다고 했다. ‘밥을 잘 안 먹어요. 잠을 잘 안 자고 깨면 무조건 이렇게 울어요. 계속 안아달라고 해요.’ 그 얘기를 하면서 아기를 많이 안아주고 시간을 많이 보내주라고 했다. 불안해서 우는 거라고. 하긴 나도 낯선 곳에 혼자 있으면 불안한데 여름이는 얼마나 불안했을까. 조리원에서는 무조건 쉬는 거라는 얘기를 듣고 하루 2시간 모자동실을 제외하고는 애기를 볼 생각을 못했는데, 아차 싶었다.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순해지는 여름이를 보면서 아이에게는 엄마가 무조건 필요하구나, 생각했었다. 머리로만 알던 걸 온몸으로 알게 된 기분이었다.


그걸 알고서 보니 한 명 한 명의 아이들이 더 아프게 느껴졌다. 60일간의 취재 중 34명이 베이비박스에 버려졌고, 그중 5명의 아이만 엄마 품으로 돌아갔다. 그 다섯 명도 녹록지 않은 환경에서 자랄 것이다. 여름이가 한두 번 입고 작아진 옷들과 단계가 맞지 않는 새 기저귀와 분유, 한 달도 채 쓰지 못한 수유 쿠션, 여러 개 선물로 받아서 남은 장난감과 역류방지 쿠션 같은 것들을 보내줄 미혼모 센터를 찾아보았다. 앞으로 여름이의 물건들을 필요한 친구들과 나눌 수 있게 아주 깨끗하게 사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토요일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에 ‘정인이는 왜 죽었나?’가 방송됐다. 방송 전부터 알고 있던 일이었지만 그알 특유의 디테일로 사건을 마주하니 차마 보기 힘들 정도로 괴로웠다. 특히 그알에서 처음 공개한 어린이집 cctv에 담긴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마음에 걸려 자꾸 눈물이 난다. 하루 종일 어린이집 선생님에게 안겨 축 쳐진 아이의 모습이 졸려서 내 품에 안겨 있는 여름이의 모습과 다르지 않고, 그 아이도 여름이처럼 잠깐 자고 일어나 다시 뛰어놀아야 맞다. 이렇게 작은 아이들이 죽을 만큼 맞고 어른도 견디지 못할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이, 끔찍하다. 평소였음 엉엉 울며 혼자 이불킥을 하다가 잠들었겠지만 그날은 팅팅 부은 눈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1월 13일 재판 일주일 전까지 양부모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보내는 것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부터 하기로 했다.


나는 언제나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관찰자로 살았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멀리서 응원하고 조용히 슬퍼하며 혼자 화를 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아이들과 관련된 일은 이제 그게 안 된다. 애기 엄마들은 왜 그렇게 오지랖이 넓을까. 이제는 알겠다. 남 일 같지 않기 때문이다. 전에도 마음은 아팠다. 그런데 지금은 진짜 아프다.

내 아이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이게 가능할까 싶었는데 정말 그렇다. 제발 아이들을 아프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올해의 소원이다. 내 소중한 신년 소원 꼭 들어주소!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의 저녁 루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