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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Nov 04. 2020

우리의 저녁 루틴

작은 소리 작은 말 작은 행동에 크게 사랑하게 된다

밤 11시 40분

오빠는 음음음 콧노래를 부르며 샤워를 한다.

샤워를 오래 한다.

샤워기에 물을 틀기 전에는

변기에 오래 앉아

똥을 누며 웹툰을 보았을 것이다.

글씨의 반 이상이

얍얍얍 하압 슉 촤악 인 무협 웹툰을.


내가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씻는 동안

오빠는 우리 집에서 제일 예쁜

분홍 꽃이 그려진 찻잔에 뜨거운 물 반 시원한 물 반을 담아 둔다.

씻고 로숀을 바르고 나와서 컵 표면에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힌 따뜻한 물을 한잔 마시며 생각한다.

'행복하다'


티브이로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

침대 옆에 놓여있던 태아보험 파일을 뒤적이던 오빠가

혼잣말로 조용하게 '우리 애기 보험!' 하면서

소중하게 파일을 옆으로 치운다.

그러더니 몰래 눈물 반 방울을 훔친다.

"오빠 왜 울어?" 하면

"그냥 애기 보험을 보니까." 한다.

바보가 따로 없다.     


나는 또 그 작은 소리 작은 말 작은 행동에

크게 사랑하게 된다.

역시나, 바보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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