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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y 25. 2021

'괜찮다'의 기준

아침에 운동을 가면 선생님이 묻는다.

"오늘 컨디션 어때요? 괜찮아요?"

컨디션이 좋은 날도 있고, 온몸이 삐그덕거리는 날도 있지만, 언제나 나의 답은 똑같다. "괜찮아요."

운동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괜찮냐고 물으면 달리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심지어 애기를 낳는 순간에도 "산모님, 괜찮아요?"라는 물음에 "헉헉 괜찮아요"라고 답했다.


'괜찮다'의 기준은 뭘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100중에 0.5 정도만 괜찮아도 "괜찮다"고 하는 것 같다. 괜찮은 척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상태에 둔한 편이라 어느 정도가 괜찮지 않은 건지 판단이 잘 안 서고, 누가 물었을 때 "안 괜찮다"고 말하기가 어색하다. 몸에 관해서든 마음에 관해서든 '안 괜찮다고 대답을 할 수 있는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힘이 들긴 하지만 모든 순간이 힘든 건 아닌데' 싶기도 해서 답을 하기가 망설여지는 것이다.


괜찮지 않다고 했을 때 따라오는 반응에 반응하는 것도 참 어렵다. "안 그래보였는데 힘들었구나, 힘내, 괜찮아질거야" 같은 말을 들으면 고마운 마음과는 별개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응 고마워"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까지는 아니야"라고 해야 하나, "이제는 괜찮다"고 해야 하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그냥 괜찮다고 하는 게 가장 괜찮은 방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안 괜찮은 것은 위로와 프레임을 동시에 얻는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과 감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단편적인 이야기가 곧 내가 되는 것도 싫다. 적어놓고 보니 참 피곤하다. 피곤하게 산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는 내게서 묘한 거리감을 느끼고, 나는 종종 외롭다. 나부터도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이 쓰이니까. 당연한데 영 씁쓸하다.


그런 와중에 옆에서 세상 떠나가라 우는 여름이를 보면 픽픽 웃음이 난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웃기고 귀엽고 신기하다. 온 얼굴을 찡그리고 자기가 낼 수 있는 가장 큰소리로 입을 크게 벌려 혀를 달달 떨며 우는 여름. '나도 아기였을 때는 괜찮지 않음을 이렇게 큰 소리로 엉엉 울면서 표현했겠지' 싶고, 여름이는 "괜찮아요"를 되도록 늦게 배웠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엔 아기가 울면 "응응 괜찮아 울지마 괜찮아" 했는데, 요즘엔 "그래그래 뭐가 속상하니, 그래그래 슬프구나"한다. 이러다 울보로 키우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이번 생에 나는 틀렸다. 오늘도 선생님의 물음에 괜찮다고 답했다. 괜찮다, 괜찮다 하다가 데드리프트 무게가 45kg까지 올라갔다. 죽을 뻔했다. 내일은 무조건 안 괜찮다고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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