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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Aug 06. 2021

빨래를 사랑하는 방법

집안일은 대체로 못하는(안 하는)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빨래는 되도록 멀리하고 싶다.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는 거 아니냐고? 아니다. 널고 개고 제자리에 넣는 게 일이다. 미루고 미루다 수건이 없어 빨래를 해야 하는 자취생의 고단함을 엄마랑 같이 사는 사람들은 절대 모른다. 밥 하기 싫으면 시켜 먹어도 되고 나가서 먹을 수도 있지만, 수건이 없는 건 방법이 없거든.


그렇게 10년을 수건과 싸우다가 결혼을 하니 집안일을 분담할 수 있어 좋았다. 요리는 내가, 설거지는 네가, 빨래 돌리는 건 내가, 너는 건 네가, 화장실 청소는 내가, 청소기는 네가. 서로 그나마 덜 싫은 걸 맡아하다 보니 할 일이 반으로, 가끔은 그 이상으로 줄어든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 모양인 내가 아기를 낳고 하고 싶어서 엉덩이를 들썩거리는 집안일이 생겼다. 빨래다. 정확히는 아기 빨래.


임신했을 때, 아기 빨래는 하루에 두세 번씩 해야 한다는 지인들의 말을 듣고 걱정이 앞섰다. 아, 내 빨래도 너무 귀찮은데 할 수 있을까. 첫 빨래는 세탁기에 세 번쯤 돌리고 뜨거운 물에 삶아야 한다는 말에 그것도 너무 귀찮아 양가 엄마들의 도움을 빌렸던 나였는데, 어느 날 건조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아기 양말을 보고 홀리듯 빨래의 세계에 빠져들고 말았다.


분홍 양말은 못 참지


아기 빨래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아기 세제가 필요하다. 우리가 쓰는 세제는 1+1이거나 인스타 광고에 낚이거나 홈쇼핑에서 ‘다시는 없을 가격!’이라고 하면 그냥 사는 편이지만 아기 세제는 성분을 열심히 찾아보며 고른다. 어른 세제보다 비싸고 성분도 깨끗하고 향도 좋은 아기 세제를 쓰는 것부터 빨래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그렇게 산 소중한 아기 세제를 조금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아기 옷은 부피도 적고 온수 대신 미온수 혹은 냉수에 빨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소량/쾌속 모드에 두고 헹굼만 다섯 번을 선택한다. 덕분에 표준 모드로 빠는 다른 빨래보다 시간도 적게 걸린다.


세탁기의 일이 끝나면 드디어 나의 일이 시작되는데, 손바닥만 한 아기 옷과 손수건, 양말을 너는 건 놀랍게도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 새삼스럽지만, 나는 그게 정말 놀랍다. 얼마나 놀라운 일이냐 하면, 색깔별로 걸려 있는 아기 옷이 너무 예뻐서 사진으로 찍을 때도 있다. 평생 처음이다. 빨래 사진을 찍은 건.


건조대에 올라간 빨래는 하루 이틀 정도 베란다에서 시간을 보낸다. 햇볕에 보송하게 마른빨래 냄새는 고소하다. 면 100%가 많은 아기 빨래는 더욱 그렇다. 빨래를 하고 난 뒤에는 볕에 민감해진다. 더운 건 싫지만 해가 반짝 뜨면 빨래 생각에 기분이 좋고, 미세먼지 지수가 나쁘거나 우중충하면 이번 빨래는 망했군, 싶다. 엄마와 통화를 하다가 이 얘기를 했더니, 엄마는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아줌마가 다 됐군, 우리 딸.”했다. 나는 짐짓 아줌마스러운 말투로 “인생의 아주 중요한 즐거움 하나를 깨달은 거지, 지겨워 정말!”이라고 답했다.


빨래를 좋아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밀리지 않고 조금씩 자주 하는 것이다. 나는 그 당연한 사실을 조금씩 자주 할 수밖에 없는 아기 빨래를 하면서 깨달았다. 한 번에 모든 빨래를 해치울 필요 없이 건조대에 넉넉히 올라갈 만큼만 빨래를 돌린다. 수건 열두 개, 오빠 속옷 일곱 개, 양말은 양껏, 브래지어 세 개… 이런 식으로.

그리고 겉옷 몇 개를 제외하고는 우리 빨래를 할 때도 아기 세제를 쓴다. 아기만큼 나와 오빠도 소중하니까.

자주 빠는 속옷과 실내복, 수건과 양말을 주기적으로 바꿔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왕이면 예쁜 것으로(포인트)! 사실 이건 위생적인 면에서도 필수다. 알면서도 멀쩡한 것들을 버리기가 아쉬워 쌓아 두고만 있었는데 빨래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버릴 것은 버리고 바꿔주는 연습을 하고 있다.


빨래의 즐거움을 알고 나니 일상의 숙제 하나가 사라진 기분이다. 평생 수건과 싸울 일이 없어 다행이다.



++

주변에서 그러지 말고 건조기를 하나 들이라고 하는데, 세탁실이 좁아서 건조기가 안 들어간다. 나중에 이사 가면 그땐 건조기 있는 삶의 기쁨에 대해 써야겠다. 빨래의 즐거움이고 나발이고 “건조기 만세”라고 할지도 모르지. 그러면 또 그런대로 좋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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