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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냥 Dec 16. 2019

넘실넘실

외부 상황이 큰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칠 때 그리고 동시에 내 감정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칠 때가 있다. 부표처럼 파도의 흐름에 맞춰서 이리저리 휘둘리면서 파도가 잠잠해지길 버티면 나으련만. 아쉽게도 파도가 보이는 시점부터 두 발은 땅에 붙잡혀 있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어, 피할 수 없을 거야. 내면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다. 차라리 달려가서 바닷속으로 풍덩하고 빠져서 이판사판 싸우면 차라리 나으련만. 도망갈 용기가 없는 것처럼 뛰어들 자신도 없다.


이내 전신이 덮힌다. 암전. 시야를 떠올리기 전, 한 마디로 아프다. 무겁다. 헤어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순간이다. 통증이 가시고 감정의 무게감에 익숙해질 무렵  내가 어떤 자세로 어떻게 있는지 더듬어 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 홀로 떠도는 기분. 밑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위에서 누르는 것도 한계가 없어 보인다. 손가락 까딱 하나 하기도 힘든 채로 엎드려져 있고 그 순간에 할 수 있는 건 눈을 끔뻑거리며 눈물 한 방울 흘리는 것. 밝은 미소를 짓는 어부 손에 주둥이를 잡혀 생보다 사가 가까운 물고기 같다. 도축을 앞둔 소의 까만 눈동자가 주는 하염없는 감정만이 솟구친다.


이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본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 가장 괴로울 때 느낀다. 발버둥 치면서 악착같이 살아남으려는 모습이 내게도 있구나. 이내 짓누르던 감정들이 희미해질 무렵이 온다. 어깨 위에 올려진 것이 창가에 조용히 쌓인 뽀얀 먼지 같이 느껴질 때. 찰나의 순간이다. 이때의 감정을 놓치면 안 된다. 재빠르고 가볍게 어깨를 살짝 털어내야 한다. 톡톡. 그러면 그 감정은 ‘다음번에 다시 올게.’하며 사라진다.


한 달이나 두 달 주기로 와서 짧으면 사흘, 길면 일주일 동안 짧게 홈스테이 하던 감정들이 이제는 제집인 양 내 맘에 자리를 잡으려고 한다. 소유권 없는 감정이 점유권을 먼저 주장하려 드는 통에 내 속은 남아나지 않는다. 사흘 주기로 와서 한 달을 체류하거나 체크인과 체크아웃을 하루에도 수십 번 반복한다. 달갑지 않은 손님을 쫓아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 중이다. 감정에 지배받지 않을 것이다. 난 애초에 바다보다 뭍이 좋다. 오늘도 괴로움 속에 신음하다 저녁을 겨우 먹고 힘을 되찾아서 기록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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