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5kg 감량했다옹
후쿠는 개냥이 중에서도 최고 개냥이다. 적응 기간이랄 게 없었고 구조자가 집에 가자마자 화장실도 잘 이용하고 내 옆에서 잤다. 초반에는 오히려 내가 긴장하고 조금 거리를 두고 싶을 정도였다. 며칠 전부터 잘 때 내 팔을 꼭 껴안고 잔다. 나를 향한 후쿠의 이유 없는 애정에 가끔은 코끝이 시려진다.
나는 하루의 대부분을 책상에서 보낸다. 책상이라고 해봤자 노트북을 세워둘 수 있는 아주 작은 크기. 모니터 앞에 앉아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또 쿠팡에 들어가서 쇼핑리스트를 확인한다. 후쿠를 들이고 나서는 고양이 카페에서 정보를 얻기도 한다.
속칭 무릎냥이라 불리는, 무릎에 앉길 좋아하고 사람 무릎에서 잠을 청하는 고양이. 이는 우리 후쿠에게도 해당되었다. 후쿠는 하루 대부분 자는 시간을 내 무릎에서 보냈다(나중에 무릎에서 독립했는데 허벅지가 참 허하다). 처음에는 너무 신기하고 귀엽고 어쩔 줄 몰랐다. 어떻게 이런 생명체가 있는 건가 싶어서 감격에 겨웠다. 이내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의미로 어쩔 줄 몰랐다.
후쿠가 잠에서 깨면 다시 한 시간은 놀아줘야 한다. 나는 내가 하루에 정한 분량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심하다. 어찌 된 일인지 아무리 노력해도 쉽사리 목표에 도달하진 못한다. 어떻게든 노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훗날의 후회를 줄이는 거라 생각한다. 지금은 준비기간이며, 이때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삶이 결정될 것이라는 과한 생각도 품고 있다. 놀아주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일일 계획을 실천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그랬기에 한 번 무릎에서 잠에 든 고양이를 깨우는 건 극도로 조심스러운 일이 되었다.
더더욱 나는 단잠에 빠진 사람이나 고양이를 거침없이 깨울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사람이었다. 후쿠는 현관 밖에서 소리가 나도 귀를 쫑긋하는 등 아주 청각이 발달하고 예민하다. 그런데 내가 화장실이나 가고 밥 먹는다고 얘를 깨운다면 잠을 자도 피곤함은 가시지 않을 것 같았다. 선잠에 들었을 때 깨우는 일만큼 고문인 것도 없으니까. 귀여운 고양이는 수면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내게 주어진 방법은 하나였고 나는 그걸 꽉 쥐었다. 최대한 움직이지 말자.
여기서 누군가는 반기를 들 것이다. 침대로 옮기거나 잠깐 두고 가면 될 것이지 왜 그렇게 벌벌 떠냐고. 실제로 언니도 내게 그랬다. 왜 그렇게 바보 같이 구냐고 뭐라고 했다.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침대로 옮기면 후쿠는 다시 잠들지 못하고 완전히 깼다. 내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서 고양이의 단잠을 방해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쩌다 보니 식사도 더 걸렀고 물도 거의 안 마셨다. 화장실도 최소한으로 갔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냈다. 그 사이사이에도 내가 정말 참지 못하고 의자에서 일어났을 땐 후쿠는 어김없이 깼고 내가 자세를 바꾸거나 옆집 배달 음식이 도착한 소리에도 후쿠는 귀를 들썩거렸다. 잠귀가 어두운 나와는 정반대였다.
그 결과 일주일 만에 무려 5kg가 빠졌다. 체중의 앞자리가 바뀌었고 상담 선생님은 무슨 일이기에 얼굴이 반쪽이 되었냐며 물으셨다. 상황을 말하니 역시 상담 선생님은 심각하게 말씀하셨다.
‘크루아상 씨. 크루아상 씨를 먼저 생각하도록 하세요. 이건 주객이 전도된 거야.’
한 마디에 정신이 바짝 들었다. 물론 후쿠를 뒷전으로 하라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우리는 행복을 공유하는 사이지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이 희생하는 사이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조금씩 강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무릎에서 살살 들어서 미안하다고 사죄를 하면서, 우는 후쿠를 달랜다. 끼니도 제대로 챙겼다. 밥을 먹을 땐 완전히 깬 후쿠가 내 식탁 위로 올라와서 코를 들이민다. 그렇게 타의에 의한 짧은 다이어트는 막이 내렸고 체중은 아쉽게도 원상대로 돌아왔다.
몇 주 뒤 언니가 집에 놀러 왔을 때였다. 저녁을 먹는데 후쿠가 언니의 무릎에 자리를 잡았다. 언니는 흡사 미국인처럼 말없는 격한 표정으로 감정을 터트렸다. 목소리를 죽인 채 사진을 찍으라며 지시했고 나는 과잉 설정된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밥을 다 먹고 나서도 후쿠는 언니의 무릎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윽고 언니가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어떡하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가 알려준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떼어놓고 가라며.’
그제야 내 생황을 이해한 언니는 몇 분을 더 버티다 이러다간 지리겠다며 후쿠에게 사과하고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내가 유난 떤 게 아니라 누구나 그럴 법한 행동을 한 거였다. 문제라면 조금 과했다는 점이지.
후쿠와 난 명절에 잠깐 내려가 얼굴을 보는 사이가 아니라 일상을 공유한다(사실 우리 집은 큰집이라 나는 명절 정체를 겪어본 기억이 없다). 그렇기에 각자의 선이 필요하다. 물론 후쿠는 고양이라서 선을 모른다. 그저 뭔가가 날아다니면 날뛰고 주어지면 먹고 싸고 자고 할 뿐이다. 그렇다면 선을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사람 관계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상대는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반응하고 나도 상대가 하는 것에 따라 반응한다. 쌍방향이고 관계의 선이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고양이와의 관계보다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 간에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또 쉽지 않을까? 결과적으로는 고양이와 사람, 사람과 사람의 선 지키기의 난이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뭐, 이런 생각도 다 해본다.
어쨌거나 이 글을 쓸 때 내 무릎을 지켜준 후쿠 덕분에 한 편을 단숨에 완성했으니 이건 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