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도 아픈 손가락이 있다

by 채수아

그날은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혜경이와 은경이가 학교를 며칠 빠져 여기저기 두 아이를 찾으러 다녔다. 주변 아이들의 소식통으로 집히는 곳이 있어서 물어물어 그 장소에 도착했더니, 거기에는 다른 학교 아이들도 몇 명 더 있었다 학교에 안 가고 백화점이나 그 주변을 서성이던 아이들! 혜경이는 우리 반 아이였고, 은경이는 혜경이의 언니였다. 엄마는 재혼을 해 서울로 갔지만, 새아빠가 두 아이를 거부해 두 아이는 수원의 삼촌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것도 학구도 아닌, 버스로 20분 정도를 가야 하는 동네에 말이다.


아이들이 모여있는 모습을 보니 한숨부터 나왔다. 몰래 한숨을 몰아쉬고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니 다른 학교 한 남자아이는 6학년 나이인데, 5학년 겨울까지만 학교를 다녔고 자기가 6학년 몇 번인 지도 몰랐다. 또 한숨이 나왔다. 일단 아이들에게 짜장면을 먹였다. 탕수육까지 시켰다. 어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아이들을 배부르게 먹이고, 가장 먼 동네에 사는 한 남자아이를 데리고 버스를 탔다. 그 아이가 사는 곳은 수원역 근처의 쪽방이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집 중에서 가장 작은 집이었다. 세 명이 누워 잘 수 있는 방과 그 반만 한 부엌이 집 전체였다. 머리가 백발인 할머니와 중 1 형이 있었다 아버지는 한 달에 한 번 생활비를 가져다준다고 했다. 나는 사 가지고 간 딸기를 할머니께 드리고 이야기를 잠시 나눈 다음 돌아왔다.


혜경이와 은경이에 대한 관심이 심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때 우리 집에 계시던 시어머님께서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여!"


나는 처음에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님은 내가 두 아이를 입양할까 봐 걱정이 되신 거였다. 내가 시누님께 조카딸의 옷을 가져다 입히고 두 아이를 계속 챙기는 것을 보시면서. 난 그럴만한 자격이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첫아이 난산을 한 이후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둘째 아이 낳기도 미루고 있었으니까.


어쨌든 두 아이는 학교에서도 내 딸들처럼 내 곁에 많이 머물러 있었다. 공부가 끝나면 언니와 동생이 우리 교실에서 놀다가 퇴근할 때 같이 나올 때가 많았다. 한 번은 직원회의가 있어 아이들을 두고 교무실을 다녀왔는데, 옆 반 선생님이 걱정하는 소리를 하셨다. 아이들이 있는데 가방을 두고 오면 어쩌냐고, 아이들이 지갑에 손을 대면 어쩌냐고. 난 웃고 말았다. 난 그 아이들을 의심하지 않았고, 아이들도 내 지갑에 손을 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 두 아이의 새아빠가 두 아이를 받아들이기로 결정을 했고, 두 아이는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동생인 혜경이가 우리 시누이 형님 딸과 동갑이니 지금은 40대 초반의 아이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아픈 손가락인 자식이 있다고들 한다. 그런 제자도 있다. 몸이 많이 아팠던 아이들과 마음이 많이 아팠던 아이들! 그래서 문득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제자들. 어디에서건 잘 살고 있기를, 행복하기를 가슴 깊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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