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울화병 치료를 위해 내 주치의이신 한의원 원장님을 만나고 돌아온 후, 남편이 달라졌다. 남아있는 내 울화가 불쑥 올라와 최대한 흥분을 가라앉히려 노력하며 억울했던 이야기를 꺼내는데, 내 울화를 내버려 둔 채 도망을 가던 남편이 계속 앉아서 내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화가 났던 그 상황에 대해 설명을 자세히 하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내 심장 떨림은 20분 정도 지속되었지만, 다른 때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였다.
결혼 후 시댁 행사에 가면 남편의 사촌누나가 나를 붙들고 '답답해서 어떻게 사냐'고 물었다. 첫 만남부터 결혼 이후에도 대화가 잘 통하던 남편이기에 난 그 누님의 말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살다 보니 그런 순간이 왔다. 어머님을 모시고 사니 부부 싸움도 제대로 할 수 없어, 소리를 낮추어 싸우거나, 심한 경우엔 밖으로 나가자고 해서 큰 소리로 싸우고 올 때가 가끔 있었다. 어쨌든 가슴속 답답함을 다 풀고 살 수 없는 여건이었는데, 나를 더 화나게 하는 건 이 남자의 태도였다. 다툼의 빌미를 제공했음에도 이 사람은 사과도 없이 화해가 되기 전까지 계속 늦게 들어왔다. 대화 없이 며칠을 지내다 내가 힘들어 먼저 말을 시키는 게 화해였다. 내 생활이 힘들고 1인 4역을 해야 하는 몸 약한 나로서는 그래야만 살 수 있었다. 그런 식이 반복이 되니 시집살이에다 더 큰 고단함이 있던 것이다.
그 회피하던 답답한 모습이 이어져 중년의 내 울화병 치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고, 오히려 내 울화병이 심해지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스쳐 지나간 내 제안으로 남편은 처음엔 비록 거부했지만, 함께 한의원을 가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효과가 있었다. 끝까지 들어주었고, 설명을 해주었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 남자를 보며, 고마운 마음도 있었지만, 진즉 이렇게 좀 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내 울화 증세는 쉽게 가라앉았다. 앞으로는 분명 점점 나아질 것이다. 오랜 세월의 내 쌓인 울화가 조금씩 조금씩 녹아내릴 것이다.
오래전 틱낫한 스님의 책에서 놀라운 글을 읽었다. 소녀들을 성폭행하고 죽이는 걸 아무런 죄책감 없이 자행하던 해적들에 대해 글을 쓰고는, "저도 저 해적이 태어난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똑같이 저런 짓을 했을 겁니다."라는 글이었다. 나는 틱낫한 스님을 존경하지만, 그 글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든 행동에는 우리가 알 수는 없지만, 그 원인이 분명 있고, 죄인은 엄벌에 처하고 잘못한 사람은 그 대가를 받아야 하지만, 그 상황을 이해의 눈으로 '바라보라'는 말씀이셨다. 잠시 들었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유튜브 강의에서도 그랬다. 늘 결과와 행동이 있으면 그 원인을 찾으면서 치료를 한다고. 가만히 생각하니 그 두 분의 글과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갔다.
내 남편, 그리고 시어머님, 시댁 형제들의 행동에 난 많은 실망을 했고, 고통스러운 시간도 많았다. 내가 겪은 우울증과 울화병의 원인 제공자라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분들의 행동에는 가난과 열등감, 분노와 막막함, 여러 감정들이 얽혀 그리 행동을 하셨을 거고, 보통 사람보다 어리숙하고, 마음이 여리고, 측은지심이 병적으로 많았던 나는, 그분들과 어우러지면서 마음의 병이 깊어지고, 몸까지 망가졌던 것이다.
같은 집안에 시집온 우리 형님은 늘 건강하셨다. 자기가 감당 못할 시집살이를 일찌감치 시댁 식구 모두에게 알렸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기 싫은 일은 하지 않으셨다. 고통스러워하는 내가 어머님을 한 달만 모셔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단호히 거절하셨다. 자기 일상이 불편한 게 싫다고. 맏이로서 어머님이 연세가 드시면 자기가 어머님을 책임질 거라고 하셨지만, 아무래도 불편해사 못하겠다고 훗날 내게 말씀하셨다. 매사에 본인의 몸과 마음을 잘 챙기시니, 다 걸린다는 갱년기도 거치지 않으셨다고 내게 자랑도 하셨다.
그러니 이런 시집을 만나 내가 아프고 살았다는 건, 어찌 보면 진실이 아니다. '이런 시댁을 만나 했던 나의 선택들이 나를 병들게 했다'가 맞는 표현이다. 그렇게 정리가 되어도 내 울화병은 아직 남아있고, 난 울화병 치료를 정성껏 받고 있으며, 이제는 남편까지 도움을 주고 있다.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은 남편과 나는 잘 이겨낼 것이다. 볼 때마다 '이쁜 내 새끼'라는 단어가 내 안에서 봉긋 올라오게 만드는 나의 세 아이들이 있다. 내 좋은 인연들이 있다. 내 재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괜찮다, 괜찮다. 다 잘될 거다. 잘 흘러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