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국민연금과 실업 급여

by 채수아

직장은 몇 번 바뀌었지만 쉼 없이 직장을 다닌 남편이, 쉰 적이 있었다. 나는 초등 교사여서 방학도 있었고, 둘째와 셋째 아이 육아휴직도 했었고, 40대 초반 이른 나이에 퇴직을 했지만, 남편은 생애 처음 쉬는 기간을 갖게 된 것이다.


화려한 경력과 프로필이 있어서 직장을 옮길 때마다 매우 수월했지만, 퇴직하기 전에 응모했던 국가기관인 대형 병원의 본부장 자리는 서류를 내고 기다리는 동안, 홈페이지에서 '공고'자체가 사라짐으로 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고 얼마 후 '불합격'문자를 통보받았다. 덕분에 남편은 처음으로 '실업 급여'라는 걸 신청했다. 가서 강의도 들어야 하고, 구직 활동도 보여주어야 했다. 이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일할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구직 활동이 형식은 아니었다.


결혼 이후 남편의 여름휴가와 명절 휴가 이외에는 그렇게 길게 같이 있어본 적이 없었다. 살아보니 무엇이든 의미가 있으니,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기간을 우리는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더 보태어 나는 몇 개월은 아무 생각 없이 푹 쉬라고 말했다. 황금 같은 시간에 내 울화병도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 일상을 함께하면서 서로 깊은 대화를 나누곤 했다. 새벽형인 나는 원래 일찍 일어나지만, 이 사람도 피로가 회복되자 7시 이전에 기상을 하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아침 산책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엣 우리의 조상들은 나이 예순을 넘기면 축하받을 일이라고 잔치를 했지만, 지금 우리는 백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남은 생이 생각보다 꽤 긴 것이다. 내 친구들의 맏이들이 거의 다 결혼을 했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집에 남아있는 사람은 자기와 배우자이다. 고심 끝에 이미 혼자의 삶을 택한 분들은 야무지게 앞날을 살아가면 되지만, 둘이서 함께할 사람들은 질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나름대로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나처럼 울화병 증세가 있는 사람은 배우자가 적극 치료에 협조를 해야 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나아질 방향으로 하루하루 노력해야 한다. 이 과정을 지혜롭게 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황혼이혼을 하거나, 한 집에서 대화 없이 투명 인간으로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 결혼을 하면서 이런저런 계획을 세운 것보다 어쩌면 중년의 계획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우리 부부는 특별한 결혼 생활을 했다. 마음고생이 많았던 오랜 시집살이로 인해 내 마음엔 미움과 원망이 가득했었다. 분가 이후 어머님의 큰 사랑으로 내 안의 독소가 뭉텅이로 빠져나갔지만, 힘든 그 시절에 나를 방치한 듯한 남편의 행동은 나를 심한 울화병 환자로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행복으로 채워야 할 소중한 시간을 잘 보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도 감사하게 우리는 치유와 화해와 용서의 시간으로 그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다.


프러포즈를 월급통장과 카드로 받았다는 젊은 여교사가 있었다. 내가 퇴직한 후에야 남편 월급 통장을 처음 본 나로서는 그 말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모든 걸 숨김없이 공유할 수는 없지만, 통장의 공유만큼 배우자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건 없을 것이다. 내가 아는 여교사들 중에 나처럼 남편의 통장을 보지 못하고 일정액을 받거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 1/n을 모아서 처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부가 함께 돈을 버는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는데, 어쨌든 난 그 젊은 여교사가 한없이 부러웠던 건 사실이다.


내가 퇴직한 후에 남편은 월급뿐만 아니라 상여금 기타 수입(면접관으로 갈 일이 종종 있었다)까지 모두 내게 알려주고, 통째로 내 통장에 입금을 하고 있다. 통장 비밀번호도 서로 공유하고 있다. 지난 5월에 우편으로 국인연금증서를 받은 남편이, 받자마자 내게 증서를 바쳤다. 오랫동안 나를 서운하게, 섭섭하게 했던 사람이었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애쓰고 있으니, 우리는 점점 좋은 관계로 지낼 것이다. 마음의 상처는 마음으로 치유되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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