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화병과의 싸움

by 채수아

남편과 사귀던 중 내가 헤어지자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한 말은 "사랑은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거래"였다. 하지만 이 남자는 나를 한 시간 이상 설득했다. 노력하면 모든 게 가능하다고. 그리고 다시 사랑을 이어갔고, 결혼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이별 이유는 옳았다. 나는 이 남자와 결혼을 한 이후 많이 울었고, 많이 아팠다. 비단 시어머님 시집살이에 보태어, 이 사람의 많은 행동들이 나를 서운하게, 화나게, 절망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중년의 내 울화병이 오랜 시집살이 후유증이라고 보고 있지만, 어머님 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건 남편일지도 모른다.


장애가 있으셨던 아버님 대신 생계를 책임지고 사셨던 어머님처럼, 남편은 자기 아내도 그런 존재로 만들었다. 남편의 가난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던 나는, 측은지심으로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가 되었다. 나는 남편 월급에 관심이 없었고, 이 남자는 가난의 한을 원 없이 풀며 살았다. 아내에게 용돈을 받아쓰는 회사 동료들의 밥값과 술값을 내며 이 남자는 매우 행복했을 것이다. 내 월급으로 생활이 가능했기에, 난 어머님 용돈과 아이들 교육비, 온갖 세금, 생활비를 내 월급으로 충당했고, 이 사람은 목돈이 필요할 때 가끔 보태는 식이었다.


건강이 무너져 학교를 그만두고 내 월급이 사라진 40대 초반에, 난 남편에게 처음으로 월급통장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렇게나 난 어리석었고, 호구 중의 호구였다. 아내가 전업주부였지만, 야무지게 돈을 모으고 살던 아주버님과 달리, 이 남자는 가난을 이상한 방향으로 풀고 살았던 것이다.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는 여자와 남자와 만나, 우리는 평범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했고, 나의 사랑법이 옳지 못했음을 몸과 마음의 건강이 와르르 무너진 후에야 깨닫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자기를 아끼고 사랑하라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도와주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기적인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말씀하셨다. 부모님께 순종하던 나는, 부모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노력했고, 평범하지 않은 시댁과 남편을 만나 그야말로 '안성맞춤 호구'가 되어 처절하게 망가지고 말았다. 그래서 난 아픈 사람, 아픈 교사, 아픈 엄마로 살아야 했고, 이 중년에도 울화병으로 큰 고통을 당했다. 그런 엄마가 키웠음에도 나의 삼 남매는 당당하면서도 사람다운 사람으로 성장했고, 이 남자는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며 평생 나의 머슴으로 살겠다고 다짐을 했고, 몸으로 보여주며 살고 있다.


이 화병은 언제까지 나와 함께 할까? 잘 지내다가도 불끈불끈 튀어나오는 이 증세로 나도 남편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몇 달 전부터 하늘에서 보내주신 것만 같은 한의원 원장님을 만나, 깊은 상담과 한약치료를 병행하고 있다. 내 삶은 꽤나 힘들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