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를 했다. 늘 그렇듯이 갈 목적지를 미리 보고, 전철로 가는 법을 캡처해 두었다. 이번 모임은 세 번 갈아타는 위치에 있었다. 첫 전철로 가는 시간이 50분 정도 되었다. 앉지도 못하고 서서 가는데, 파스를 붙인 허리도 다시 통증이 느껴지고, 다리도 슬슬 아파지기 시작했다. 난 속으로 내 앞에 앉아있는 여대생이 일어나 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학생은 꿈쩍도 안 하고 스마트폰만 하고 있었고, 그 옆에 앉아있던 사람이 급하게 일어났다. 나는 순간 내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무척이나 부러웠다. 그런데 그 남학생은 나를 바라보더니 앉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고맙다고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 학생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스마트폰을 하지 않았고, 나는 잠시 후 오프라 윈프리의 책을 꺼내 재미있게 읽고 있었다. 한 20분 정도가 지나서 학생은 몸을 틀어 내릴 준비를 했고, 두 발자국을 출입문 쪽으로 옮기고 있었다. 전철문이 열리기 전, 난 급하게 그 학생에게 내가 읽던 책을 주었다. 그 학생은 책을 받고 눈인사를 하며 문밖으로 나갔다.
청년이 나간 후 오래 전의 내 갑작스러운 책 선물이 생각났다. 큰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겨울방학 때의 일이니 33년 전이다. 교사 일정 강습이 있었는데, 들어야 할 강의의 양이 많아 꽤 힘들고 지루했던 시간이었다. 그런 와중에 100% 집중할 수밖에 없는 강의가 있었다. 그 강사는 당시에 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하던 분이었는데, 섬마을 선생님으로 지내던 오래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우리 앞에서 울고 말았다. 그때까지도, 지금까지도 강의를 하다가 눈물을 그렇게 많이 보인 남자는 처음이었다.
"저는 교감이 되기 위해 필요한 점수를 따려고 섬마을에 갔었습니다. 학생 수가 얼마 되지 않았어요. 저는 매일, 계획했던 2년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어요. 애들은 눈에 보이지 않았어요. 정말 무심했고, 화도 많이 냈고, 심지어 어떤 아이의 빰을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저는 그야말로 교사가 아니었던 거예요. 아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주지 못했던 그 시간이 두고두고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가 아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싶어요. 여러분은 저처럼 후회할 행동을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분은 강의를 마치고, 눈물을 닦으며 강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침통한 표정으로 출입문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가방에서 시집을 꺼내 출입문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그분이 출입문을 열고 나갔을 때 그분 가까이 갈 수 있었다.
"저.... 이거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시집이에요. 제가 드릴 게 이것밖에 없네요. 그냥 드리고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