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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수아 Oct 10. 2024

친구의 눈물

오랜 절친 모임에 다녀오면, 늘 내 마음을 묵직하게 만드는 건 내 사랑하는 친구의 눈물이다. 내 친구 숙이는 서울대를 갈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었지만, 가난한 집안을 생각해서 그보다 조금 낮은 대학의 4년 장학생으로 입학을 했다.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던 친구이고, 내 친구들 중에서 가장 작은 집에 살던 아이였다.


너무나 가난한 집의 딸이었던 친구는 힘겹게 대학 생활을 했고,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전문 직업인이 되어 어느 정도 숨통은 좀 트였을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돈 걱정 없이 자랐던 나는 배우자 감에 대해 말할 때 "난 돈 안 봐. 인간미와 지성미와 낭만이 있는 사람이면 돼."라고 했던 그대로 되어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시댁을 만났다. 그 친구는 시댁의 경제적 부유함에 대해 말한 적이 없었지만,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생각을 했으리라고 난 짐작만 할 뿐이다. 정말 감사하게도 친구는 풍족하면서도 많이 배운 시부모님을 만났고, 인격 또한 높으신 분들이어서 결혼 이후 친구는 굉장히 편하고 여유로운 얼굴로 변해갔다. 그 친구가 나이가 들수록 모임에 나와 자주 눈물을 글썽였다.


"난 우리 작은오빠 생각을 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파. 가난한 집 둘째 아들로 태어났지만, 집안과 거의 의절하고 살고 있는 큰아들 대신 맏이 노릇을 하며 살았어. 결혼하면서 바로 부모님을 모시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치매 엄마를 모시고 살고 있지. 우리 오빠는 우울증 약을 먹고 있어. 너희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부모님 성격이 쉬운 분들이 아니었어. 나도 무척 힘들었거든.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계실 때, 병문안 온 사람과 복도에서 잠시 이야기 나누는 사이에 아버지가 응급상황이 되셔서 바로 중환자실로 가셨어. 얼마 후 돌아가셨는데, 그걸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죄책감을 아직까지도 갖고 있더라고. 얼마 전에는 엄마의 치매 상태도 점점 나빠져서 내가 요양원으로 모시자고 말했다가, 자기에게 혼란을 주지 말라고, 너 때문에 내가 더 힘들다는 말까지 들었어. 오빠는 정신과 약을 먹는 것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몸도 많이 아픈 상태야. 난 엄마보다 오빠가 더 걱정이 돼."


이야기를 하다가 눈이 빨개지며 눈물이 고이는 그 친구의 눈이 내 가슴에 박혔다. 오랫동안 경제적인 도움을 주고 있는 여동생의 돈을 받으면서도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그 오빠의 '결벽증적 효도'가 너무나도 안쓰럽고 가슴 아팠다. 그 오빠는 자신이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걸 전혀 모르는 사람 같았다. 내가 10여 년 전 병 휴직을 하고 대학병원을 다닐 때 의사 선생님께 들었던 말처럼.


※ 그 이후 친구의 어머님은 하늘나라로 떠나셨습니다.


사진 : 한옥 유진게스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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