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일상이 공존하는 구조

박서보의 선과 하태임의 색이 머문 집

by 오륜록



“이제 진짜 우리 집이 생겼어요.”


그 말에는 긴 시간의 기다림과 설렘이 함께 담겨 있었다.
이 집은 단순한 인테리어 프로젝트가 아니라,


한 가족이 오랜 시간 꿈꾸어 온

‘삶의 형태’를 세상에 드러내는 일이었다.





현관, 들어서는 순간의 온도


가족은 좁은 현관이 답답하지 않기를 바랐다.
공간은 작았지만, 마음만큼은 넓게 펼치고 싶었다.


그래서 수납을 포기하지 않는 벤치형 신발장을 두고,
확장감을 위해 펜트리 문에는 전신거울을 달았다.


거울 속에는 조금 더 큰 ‘우리 집’이 비쳤다.

문은 자동 간살 원목 중문으로 마감했다.


따뜻한 나무결이 손끝에 닿고,
문이 부드럽게 닫힐 때마다 집의 공기가 달라졌다.


그곳은 하루의 시작이자,
세상의 먼지를 털고 돌아오는 가장 개인적인 프롤로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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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 시선이 이어지는 리듬


문을 열고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우측으로 살짝 보이는 다이닝 공간이 묘하게 시선을 끈다.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며, 다음 장면을 예고하는 듯하다.

복도의 끝에는 거실과 주방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 사이에는 단 한 줄의 끊김도 없다.


안방 진입부는 히든도어로 처리해,
벽 전체가 하나의 표면처럼 이어지도록 했다.

그 덕분에 집 안을 걸을 때마다,
공간이 아닌 리듬 속을 걷는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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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대화가 머무는 자리


이 집의 거실에는 TV가 없다.
대신 벽면을 따라 책과 오브제가 놓인다.
어느 날은 책의 표지가, 어느 날은 작은 꽃병이
공간의 중심이 된다.


벽면에는 하태임 작가의 작품이 걸렸다.
색이 겹겹이 쌓이며, 벽의 결이 살아난다.
빛이 그림 위를 스치면,
공간 전체가 부드럽게 흔들린다.


이 가족에게 거실은 쉬는 곳이 아니라,
하루를 정리하고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작은 대화실이다.


“집이 조용하니까,
마음이 먼저 정리되는 것 같아요.”


그 말처럼,
이곳의 정적은 고요함이 아니라 평온이었다.





주방, 리듬과 여백의 미학


주방은 가족의 시간을 담는 중심이다.
이 집에서는 세로형 아일랜드가 중심에 서 있다.


거실과 다이닝이 ㄱ자로 이어지면서도,
공간은 오히려 더 넓게 느껴진다.


다이닝에서 보면 대형 아일랜드처럼 보이고,
거실에서 보면 거울의 반사로 확장감이 더해진다.

각 위치마다 다른 표정을 가진 주방이다.


세라믹 상판은 얇고 단정한 대신,
두께감 있는 디자인으로 단단함을 강조했다.


그 속에 이 가족의 성향 '조용하지만 견고한 리듬'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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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닝, 예술과 일상이 만나는 자리


복도를 지나 다이닝 공간으로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박서보의 ‘묘법’

그 뒤 벽면은 벤자민무어 페인트로 마감해
빛이 닿을 때마다 미세하게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저녁 식사 후,
조명을 살짝 낮추면 벽이 살아난다.
은은한 간접등이 그림의 결을 따라 흐르고,
그 빛 아래에서 가족은 와인잔을 기울인다.

그들은 매일 같은 자리에 앉지만,
빛과 대화, 음악이 조금씩 달라지며
매번 다른 하루를 만들어간다.


“그림이랑 조명이 같이 변하는 게 좋아요.”


그 말에는 공간이 주는 감정의 여백이 담겨 있었다.
이 다이닝룸은 예술 작품이 걸린 공간이 아니라,
삶이 예술이 되는 자리였다.





집의 표정


이 집은 화려하지 않다.

대신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정갈하다.

박서보의 선처럼 차분하고,

하태임의 색처럼 따뜻하다.


집이란 결국,
살아가는 사람의 리듬이 쌓여 만들어지는 표정이다.
이 가족의 집은 그 리듬 속에서 매일 조금씩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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