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9시 아들 늘이가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고,
아빠의 발은 협탁 앞에 아무 생각 없이 놓여 있었다.
그때 늘이가 협탁 서랍을 열었다.
그냥 여는 게 아니라,
아이 특유의 힘으로 ‘끝까지’ 열었다.
순간 발이 침대와 협탁 사이에 끼었다.
“아빠 아파, 그만해.”
나는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늘이는 멈추지 않았다.
서랍은 계속 열렸고,
아이의 입에서는 이렇게 말이 나왔다.
“아빠가 알아서 피해야지.”
놀라서 나는 소리를 질렀다.
“어떻게 피해!”
아킬레스건 근처,
보기에도 위험해 보이는 위치에서
큰 통증이 밀려왔다.
아들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늘이는 바로 서랍을 닫았다.
그리고 내 품에 안겨 있던 아이는
급하게 침대 아래로 내려가
“아빠 다리 비켜줘”라고 말하며
서랍 속 장난감을 꺼냈다, 다시 넣었다.
그날은
더 이상 동화책을 읽을 기분이 아니었다.
한숨을 몰아쉬고
잠깐 생각을 멈춘 뒤
표정을 가다듬으려 했지만
내 얼굴에는 분명히
화난 사람, 삐친 사람의 표정이 남아 있었다.
일곱 살 아들에게 너무 서운했던 날.
아들의 기분보다 내 아픔이 나를 지배했던 날.
그리고
내가 생각보다 많이 철없다는 걸 또 한 번 느낀 날.
늘이가 타인을 배려하는 법을 아직 배우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고,
아빠의 아픔보다 장난감이 먼저였다는 사실이 서운했고,
무엇보다
아빠답지 않게 아이에게 큰소리로 똑같이 애처럼 굴었던 내가 미안했다.
뒤늦게 찾아오는 후회였지만 그 순간 내 안에서 튀어나온 외침은 되돌릴 수 없었다.
이런 애매한 순간마저 우리는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한다.
이걸 어떻게 계획하고, 어떻게 다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다음엔 잘해야지’라는 결심보다
내 수준이 아직 아픔 앞에서 소리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먼저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게 조금 슬펐다.
그럼에도 묻고 싶다.
어떻게 해야 진짜 어른이 될 수 있을까.
아들에게 어떻게 사과하면 좋을까.
아마 답은 거창한 말이 아니라
오늘 밤, 아이를 꼭 안고
이렇게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까 아빠가 많이 놀라고 아팠어.
그래서 화를 냈어. 그건 아빠가 미안해.”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거라
나는 믿어보려 한다.
오늘은
그 연습을 조금 늦게 시작한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