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었다. 바닥에는 지옥불에 달궈진 기름이 들끓었다. 기름에 불탄 병사들의 살 냄새가 천지에 진동했다. 하늘에서는 저주의 갈고리가 쉴 새 없이 날아다니며 아군 적군 할 것 없이 모든 것을 뒤집어엎었다. 해도 지지 않는 무쇠의 평원, 큰 상처를 입은 순왕이 심복들에게 둘러싸여 격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평원의 건너편에는 반역자 양 대장군과 당 재상이 남은 병사들을 정비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이리되었는가…”
순왕의 탄식에 건너편을 노려보던 창 장군이 몸을 돌려 깊이 고개를 숙였다.
“전하, 못난 저를 죽여주시옵소서!”
창 장군은 분루를 삼켰다. 그 편지를 믿었더라면 이런 치욕은 없었을 것이다.
양 대장군의 역모를 알리는 투서가 왕의 호위대장인 창 장군에게 전해졌다. 지난밤이었다. 출신 성분은 다르지만 누구보다 강직한 양 대장군. 겉과 속이 한결같은 그는 대대로 순왕의 충성스러운 신하였다. 파국과의 전쟁에서는 제 몸으로 순왕을 향해 날아들던 맹독 산(蒜)이 묻은 화살을 막아냈고, 바다를 건너온 후국의 첩자가 순 왕에게 정체를 알 수 없는 독가루를 뿌렸을 때도 자신의 망토를 펼쳐 왕을 구해냈다. 이런 그가 왕을 배신해? 터무니없는 시기 질투라고 가볍게 넘겼던 것, 그것이 화근이었다.
엄청난 함성과 불길이 왕궁 안팎에서 치솟았다. 부하들이 달려와 양 대장군의 부하들이 왕궁으로 들이닥쳤다고 알렸다. 왕실의 일가로 자신의 상관인 당 재상에게 전령을 보냈지만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설마 당 재상이 벌써 당한 것인가? 왕의 호위 총책임자인 만큼 당 재상의 곁에는 무예가 출중한 최정예 호위군을 배치해두지 않았던가.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당 재상의 무예도 아직 제 몸 하나쯤은 충분히 지키고도 남을 공력이다. 그때 또 다른 부하 하나가 달려들어와 고했다.
“장군, 당 재상… 당 재상이…”
“당 재상과 연락이 됐느냐?”
“그것이… 반역자 양 대장군과 함께…”
“뭣이? 당 재상이?”
겹겹이 둘러싼 반란군의 저지선을 뚫고 궁을 빠져나와 무쇠 평원까지 달려오면서도 창 장군은 당 재상의 반역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강직하지만 유연할 줄도 알았던 인품과 길고 넓었던 지혜. 창 장군은 당 재상을 아버지처럼 존경했다. 그래서 그의 반역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이었고 아픔이었다. 왕의 피난 소식을 듣고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속속 군대를 이끌고 모여들었다. 가장 먼저 왕실 정보와 물품을 공급하던 깨 객주가 달려와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서럽게 울었다. 깨 객주는 이번 반역의 주모자가 양 대장군이 아니라 당 재상이라고 했다. 당 재상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던 깨 객주는 얼마 전부터 이상한 인물 하나가 당 재상 집에 머물고 있었다고 했다. 이 인물이 오고 난 이후부터 당 재상이 조금씩 변해갔던 것. 진정한 왕의 자격, 자격을 가진 자의 책임, 하늘로부터 받은 사명, 주어진 운명과 방치하는 죄에 대해 공공연히 입에 올리는 일이 잦아졌다. 일이 벌어진 어젯밤. 당 재상은 눈빛을 번뜩이며 오늘밤, 하늘로부터 받은 자신의 소명을 완수하겠다며 깨 객주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말했다는 것. 그 말을 듣고 뒤에 서 있던 이상한 인물이 고개를 크게 조아렸다.
“지당하십니다, 지당하십니다.”
깨 객주가 당황하여 대답을 못하자 당 재상은 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섰다. 마당에는 무장을 갖춘 양 대장군의 병사들이 오와 열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충성심이 강한 양 대장군은 진짜 왕실을 세워야 한다는 당 재상의 말에 진작에 설득당해 가장 먼저 충성을 맹세했던 것. 당 재상이 그들을 보고 소리쳤다.
“세상 이치를 조율하는 자, 조리사여! 그대의 가르침이 내 눈을 열었도다. 그대의 덕분이다. 쫄깃한 유연함이야말로 우리 당 가문이 가진 힘. 우리의 힘이 없다면 지금의 왕실의 인기는 있을 수 없었다. 당 가문의 쫄깃함을 갖지 못했던 구 시대의 왕조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생각해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는 우리 당 가문이 세상의 주인으로 우뚝 설 자격을 이미 넘치도록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늘이 우리에게 이런 자질과 자격을 주었는데 어찌 외면하고 거절한단 말인가. 내 조리사의 말 대로 이제 세상의 이치와 질서를 바로잡으려고 한다. 순 왕실의 정통성을 당 가문이 다시 세워 순 왕실을 완성시키려고 한다. 진짜 왕을 따르고자 한다면 바로 이곳이 그곳이다! 세상 가장 뛰어난 맛을 위해, 나를 따르라!”
당 재상의 뒤에 서 있던 조리사의 웃는 얼굴이 기묘한 일그러져 보였다. 깨 객주는 두려워 따르는 척하다가 군수물자를 핑계로 도망쳐 왕이 계신 무쇠의 평원까지 간신히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순대 왕이 씁쓸하게 웃었다.
“저와 나는 한 몸이었거늘…. 어찌 그런 요망한 자의 선동에 놀아났단 말이냐. 이것도 운명이로다.”
정비를 마친 양배추 대장군과 당면 재상이 후추국에서 보내온 병사들과 마늘 화살로 무장한 파국 궁수들을 이끌고 순대 왕의 진영으로 전진해 왔다. 진영의 맨 앞에 선 양파와 대파 병사들이 깻잎 병사와 곱창 병사의 시체를 장대에 매달아 흔들며 짐승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그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매운 죽음의 냄새가 무쇠의 평원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전하, 신이 끝까지 모시겠습니다.”
곱창 장군이 칼을 머리 높이 받들어 올리며 무릎을 꿇고 맹세했다. 곁에 있던 들깨 객주도 들깨 기름을 펑펑 쏟으며 흐느꼈다. 무쇠의 평원은 한층 더 뜨거워졌다. 쓰러진 자들은 한데 뒤섞여 눌어붙고 있었고, 산 자들도 서서히 숨 죽어가며 볶아지고 있었다. 뒤집개가 대치한 순대 왕의 진영과 당면 재상의 진영을 한꺼번에 훑어 뒤엎었다. 격렬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모든 것이 끝났다.
“불 끄고 드시면 됩니다. 맛있게 드세요~”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던 쇠젓가락 무리가 평원으로 날아들어왔다.
* 특별히 한 줄 요약 해드림
: 무쇠 평원에서 펼쳐지는 순 왕과
반역 세력인 당 재상,
양 대장군의 결전.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그들.
최후의 승자는 누구?
* '오늘비'의 뱀발 한뼘
: 순대볶음의 성지 신림사거리 순대타운.
아직 건재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