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보관자의 집을 나선 건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터덜거리며 큰 길가로 나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여관으로 들어갔다. 오후 늦게 콜라 한 캔 마신 것 말고는 아무것도 먹은 게 없어 허기가 졌다. 청동거울을 만드느라 땀까지 뺐더니 온몸이 욱신거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백이가 근처 편의점에 먹을 것을 사러 나간 사이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중고거래 어플 메시지 알람이 떠 있었다.
‘궁금합니다. 거울 확보했습니까?’
내가 메시지 보냈을 때는 답도 없더니… 흥, 애가 타긴 타는 모양이지?
‘네, 확보했죠, 당연히.’
바로 답 메시지가 올라왔다.
‘보여주시겠습니까?’
가방 안에서 청동거울을 꺼내 사진 몇 장을 찍어 전송했다.
‘확인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메시지가 끝나자마자 띠링~하고 은행 어플 알림 창이 떴다. 이번에도 2백만 원이 입금됐다.
‘세 번째 활동비와 보너습니다. 이제 애월만 남은 겁니까?’
뭐야, 지난번 하고 똑같은 금액으로 퉁치려고? 어림도 없지.
‘이번 활동비는 좀 더 주셔야 할 듯요. 제주도니까.’
‘구체적으로 애월 어딥니까?’
‘그건 왜 물으세요?’
‘거기서 바로 거래합시다. 마지막 물건이니. 시간도 아끼고. 어떻습니까?’
돈만 충분히 준다면 안될 것도 없다.
‘안될 거 있나요. 가격만 잘 쳐주신다면.’
‘기대 이상일 겁니다. 물건 가격은.’
오호, 자신 있다 이거지? 좋았어. 어디 기대해 보지.
‘얼마나 부르실지 기대되네요. ㅎㅎㅎ’
‘오시는 건 좋은데 저희가 일 마칠 때까지 참견하거나 방해하면 안 됩니다. 아시죠?’
‘저희요? 동행이 있습니까? 혼자가 아니고?’
내가 말 안 했었나? 했든 안 했든 무슨 상관있나?
‘네, 방울 찾을 때 만난 동생이 있어요. 이번에도 같이 왔어요.’
‘누굽니까? 믿을 수 있습니까? 저에 대해서도 압니까?’
내가 누구랑 다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길래 이러지?
‘누구랑 다니든 상관있나요? 계약 조건도 아닌데.’
‘사장님에 대해선 말 안 했어요.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아서. 그게 그렇게 중요해요?’
‘아닙니다. 전혀요. 비용 더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 인적사항 보내세요. 비행기 티켓 끊어드릴 테니. 일정과 편명 알려드리겠습니다. 당일 공항 항공사 라운지에서 찾으세요.’
‘찾아가는 곳 주소 알려주세요. 근처에 며칠 쉴 만한 숙소도 잡아드리겠습니다.’
‘끝으로, 일 마치면 연락하세요.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방해 안 하고.’
띠링~하고 은행 어플 알람이 울렸다. 2백만 원이 더 입금됐다. 물 쓰듯 펑펑 돈을 쓰는 이 사람의 정체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사장님 뭐 하시는 분이에요?’
잠시 뜸을 들였다가 답 메시지가 올라왔다.
‘골동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씀드렸을 텐데요.’
‘제가 말씀 안 드린 것까지 알고 계시던데…. 그게 좀 이해가 안돼서요.’
한동안 채팅 창에 아무런 글도 올라오지 않았다. 여관방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먹을 것을 사러 나갔던 백이가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스마트폰 창을 닫으려는 순간 메시지가 올라왔다.
‘글쎄요, 알아야 할걸 알고 있을 뿐이죠. 당신은 모르는….’
이게 무슨 소리야? 화들짝 놀라 벽에 기대고 있던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 순간 백이가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백이의 양손에는 묵직한 비닐봉지가 하나씩 들려 있었다. 얼른 스마트폰 전원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화면은 꺼졌지만 놀란 심장은 계속 뛰었다.
“펴, 편의점을 다 털어왔어? 뭐 그리 많아?”
백이는 전기주전자에 생수를 채우고 가열 버튼을 눌렀다. 비닐봉지에서 컵라면을 꺼내 뚜껑을 뜯으면서 대답했다.
“딱 먹을 만큼 사 온 거예요. 먹다 모자라면 안 되잖아요.”
백이는 신문지를 펼친 방바닥에 편의점에서 데워온 즉석식품들을 늘어놓으며 잔소리를 보탰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 보는 거, 그거 중독이에요 중독.”
찔리는 마음을 감추려고 스마트폰을 뒤집어 놓으며 대꾸했다.
“잔소리 좀 그만해! 제주도 갈 비행기 표 알아본 거야.”
비행기라는 말에 백이의 눈이 반짝 빛났다.
“비행기요? 저 한 번도 안 타봤어요. 완전 기대돼!”
“표 끊는데 필요하니까 개인정보 알려줘.”
채팅 메시지 때문에 당황한 기색을 지우려고 비행기 탈 생각에 들뜬 백이의 마음에 한번 더 펌프질을 했다.
“우리 청동검 찾으면, 거기서 며칠 놀다 올까?”
음식을 한 입 가득 베어 문 백이의 손과 입이 그대로 멈췄다. 입 안의 음식을 꿀꺽 삼킨 백이가 흥분해 침을 튀겨가며 말했다.
“역시 형, 아니 왕검님은 완벽한 왕검님 그 자체예요. 저는요, 그걸 단 한순간도 의심한 적이 없다니까요. 청동거울을 찾을 때 보여준 신박한 꾀와 용기, 그리고 이 풍백이의 휴가까지 챙기는 자상함까지. 크으, 역시 새로운 세상을 열여 젖힐 자격이 있으십니다요. 암요. 풍백이가 감히 핫바 하나 바치니 맛있게 드시옵소서.”
백이는 너스레를 마치고 다시 제 몫의 컵라면과 간식들을 먹는데 집중했다.
“후루룩~ 그리고 아까 말인데요, 후루룩~ 왕검님이 차라리 안 하겠다고 중얼거리면서 주저앉아서 울 때요, 앗뜨뜨~ 그때, 다 끝난 줄 알았어요.”
뜬금 없는 백이의 말에 컵라면 면발을 휘젓던 손을 멈췄다.
“왜?”
백이는 먹는 것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포기하는 줄 알았거든요. 후루룩~ 그게 포기가 아니라 솔직함이라는 걸 알았으면, 그게 시험을 통과하는 방법이라는 걸 알았으면 아마 손뼉 치면서 만세를 불렀을 거예요. 우리 형, 아니 왕검님 멋지다! 그러면서요. 쩝쩝쩝~ 솔직히 자기 못난 거 그렇다고 하는 게 쉬워요? 나 같은 못난이도 그건 하기 싫거든요. 후루룩~ 근데 왕검님은 그걸 한 거잖아요. 그래서 역시 대단하구나. 꿀꺽~ 왕검은, 새로운 세상은 아무나 못하는 거구나. 내가 잘 따라왔구나, 끝까지 따라가야겠다, 다시 한번 결심했어요.”
백이의 말이 돈 때문에 삼재를 찾으러 나선 내 가슴에 날카로운 화살이 되어 날아와 박혔다. 아찔할 만큼 아팠다. 입맛이 싹 달아나버릴 만큼. 젓가락을 내려놓고 스마트폰을 들고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요? 더 드세요.”
일어서는 나를 보고 덕이가 말했다.
“다 먹었어. 배불러. 너 많이 먹어.”
고개를 끄덕이는 백이를 방에 남겨두고 모텔 건물 밖으로 나왔다. 모텔 조명과 가로등 불빛만큼만 빼고 온 세상이 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고 채팅 창에 나와 백이의 개인정보, 그리고 청동검을 찾으러 갈 집의 주소를 적었다. 전송 버튼을 누르기 위해 들어 올렸던 오른손이 슬그머니 제 자리로 돌아갔다. 소금기둥이 된 것처럼 꼼짝 않고 서서 전송 버튼을 노려봤다. 시선을 돌려 하늘을 올려다봤다. 불빛이 없는 강원도의 하늘에는 수많은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시선을 내리자 여전히 전송 버튼이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길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 버튼만 누르면 끝나게 되겠지. 마지막 보물 찾기도, 큰돈이 걸린 거래도, 나와 삼재를 향한 백이의 믿음과 희망도, 그리고 여전히 거짓말 같은 가문과 나의 비밀 그리고 원치 않는 사명도. 돌아갈 길이 있을까? 무거운 어둠이 가로등과 모텔 조명을 빈틈없이 짓누르고 있었다. 숨이 막혔다. 모텔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텔 카운터 앞에 서서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오른손 검지 손가락으로 전송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리고 전원 버튼을 길게 눌러 스마트폰을 꺼버렸다. 불 켜진 방안에는 음식 냄새와 백이의 코 고는 소리가 가득했다. 조악한 화장대 위에 전원이 꺼진 스마트폰을 던져놓았다. 불을 끄고 빈자리에 몸을 눕혔다. 이젠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길었던 또 하루가 까무룩 잠의 뒤안길로 가라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