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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Oct 13. 2020

망친 건 없다

따라 그리기

그림책을 따라 그려봤다. 어떤 그림은 쉽게 따라 그릴 수 있는데 어떤 그림은 처음 그림을 대할 때처럼 막막했다. 어디서 문제가 생겼나 했더니, 여러 사람과 사물이 뒤섞여 있는 그림 앞에서였다. 하나의 사물을 그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장벽이 서 있었다. 사물이 두 개만 겹쳐도 어디서부터 선을 그어야 할지 허공에서 손이 방황했다. 3D를 2D로 바꾸려니 당연히 힘들지. 단어만 겨우 내뱉을 줄 아는 사람이 갑자기 문장을 쓰게 되는 상황이랄까.


포토샾이라는 프로그램에 레이어드라는 개념이 있다. 처음 포토샾을 배울 때 뭐 이런 복잡한 방식으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나, 누가 이걸 제대로 사용할까 싶었다. 그런데 그림이라는 게 바로 이 레이어드를 쌓아가는 것과 같았다.      

머릿속으로 어떤 것을 먼저 그릴지 하나하나 더해 가면서 원하는 장면을 구상해야 한다. 레이어드를 제대로 올려야 원하는 결과물이 나온다. 포토샾은 순서가 헷갈려도 손쉽게 순서를 바꿀 수 있지만 그림은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머릿속 구상이 중요하다.   

이호백 작가가 쓴 <쥐돌이는 화가>라는 그림책에서도 이 이야기가 나온다. 쥐돌이가 화가에게 그림 그리는 법을 물어보자 화가는 머릿속으로 먼저 그려보고 나서 그리라고 말한다. 쥐돌이는 화가의 말대로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머릿속으로 먼저 그려본다. 그림을 배우기 전까지는 이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핵심적인 표현인지 몰랐다. 그림 그리는 데에 방법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하긴 그렇지 않은 게 어디 있겠는가. 그림만이 아니라 글도 음악도 수학도 집짓기도 먼저 상상하고 레이어드를 쌓아가듯 하나씩 과정을 밟아가야 한다. 지금 알게 된 것을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딴 얘기지만, 새로운 분야를 접할 때 그 분야에서 쓰이는 전제조건, 말하자면 그 분야의 언어가 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중학교 올라가자마자 수학 시간에 a, b, x, y 등의 알파벳이 나와서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수식을 주고 이를 a라고 하자, 라는 전제조건이 나오면 일단 머릿속이 하얘지는 것이다. 왜? 왜 그게 a야? a는 영어잖아, 내가 아는 쥐꼬리만 한 지식이 앞을 가로막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언어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안다. 음악도 그랬고 과학도 그랬고, 특히 컴퓨터 같은 기계는 아직도 그러하다. 내가 왜 새로운 분야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는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아싸, 나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연습을 해온 셈이다. 레이어드라는 개념을 이해하면서 그림을 그리기 전에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보는 일에 신이 났다. 어려운 그림책은 피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만 골라서 조금씩 따라 그려본다. 수채화로 그려진 그림을 그냥 선으로 긋기도 하고 복잡한 전체를 생략하고 그리고 싶은 부분만 그리기도 한다. 따라 그리면 마음이 가볍다. 그림책을 따라 하면서 붓 말고 연필이나 펜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조금씩 이겨냈다. 붓은 붓의 느낌이 있고 연필은 연필의 느낌이 있으니까. 나도 그 느낌을 흉내 내고 싶으니까. 가끔은 그림만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따라가 보기도 한다. 존경의 마음이 흘러넘쳐 자칫 자괴감이 들 때도 있다. 얼른 빠져나와 따라 그리기라는 단순한 마음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그림책의 그림을 따라 그리다 보면 그게 '내 그림'이라고 착각할 때가 있다. 이제 나도 그 정도는 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따라 그리기는 그림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지만 지금 이 그림이 '내 그림'이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따라 그리는 그림은 내 것이 아니다. 아프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따라 그리기는 걸음마를 배울 때 발을 떼게 해주는 보조기일 뿐이다.           

젠탱글도 보조기처럼 사용하기에 좋은 기법이다. 젠탱글은 단순한 선이나 점 등으로 패턴을 채우는 미술 기법이다. 단순하기 때문에 미술치료 요법으로도 많이 쓰인다. 그림을 혼자 그리다가 우연히 취미 예술가를 위한 미술 강좌를 접하게 되었다. 주변에 전공자는 많아도 나 같은 생초보가 기댈 곳이 없었다. 생초보는 무엇을 물어야 할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좀 더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주는 곳이 필요하다. 첫 시간에 젠탱글을 배웠다. 그저 빈칸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된다는 기적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똥 손도 빈 종이를 채울 수 있다! 그 사실이 얼마나 큰 용기를 주는 일인지 금손들은 모른다. 선생님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초등 1학년 때 선 긋는 연습을 시켰던 것 같다. 똑바로 그리라고 했었다. 굳이 왜 똑바로 그리게 했을까. 아무렇게나 그리는 것부터 했으면 미술 시간이 그토록 싫지는 않았을 텐데. 우리가 똥 손이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저 채우기만 해도 그림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해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이다. 손은 죄가 없다(어떻게든 면피하고 싶다).  


따라 그리기나 젠탱글처럼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림 기법이 좋은 이유는 그림을 그리는 혼자만의 시간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내 안의 나와 대면하는 적막하고도 고요한 시간. 그것은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맛보는 사람은 없다는 바로 그 맛이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내면의 고요가 거기에 있다. 그림은 기본적으로 혼자 하는 일이다. 혼자 할 수 있어서, 혼자 하는 일이어서 내가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구나, 깨달았다. 비대면의 시대를 크게 어렵지 않게 견디게 해 준다.      

따라 그리기나 젠탱글 같은 보조기를 떼고 나면, 순간 허공에서 버둥거리는 내 모습을 본다. 어이쿠야, 다시 보조기를 잡는다. 그러면 된다. 조심스럽게 손을 떼다가 넘어질 것 같으면 다시 보조기를 잡으면 그만이다. 그래도 손을 떼는 시도를 해보는 거다. '남의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언뜻 머릿속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이미지를 붙잡고 자꾸 구체화해보는 거다. 선명하게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비슷한 사진이나 그림을 뒤져본다. 그중 몇 개를 합성하듯이 짜 맞춘다. 레이어드를 겹치듯이.

그리고 싶은 주제는 있는데 아무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는다면, 몇 개의 키워드로 검색해본다. 비슷한 느낌의 이미지가 있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그림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잘 그리는 사람은 기억해서 그린다고 한다. 대상의 형태, 특징, 동작 등을 기억하거나 반복된 연습을 통해 기억되는 것이다. 나는 아직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지 못하면 원하는 동작을 사진으로 찍어서 느낌을 찾아가면 된다. 손발이 조금 고생이긴 하지만 못할 것은 아니다.     

중간에 멈추면 안 된다. 망친 건 없다. 끝까지 그려보지 않은 것뿐이다. 브런치를 하다 보면 낱개의 글을 어떻게 골라 모으느냐에 따라 주제가 다른 브런치 북이 만들어진다는 걸 알게 된다. 프레임을 달리 하다 보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주제로 브런치 북이 정리되기도 한다. 그때마다 내 인생의 주제가 달라지는 기분이다.  

망친 것 같은 그림도 끝까지 그리면 잘못 그린 그림이 되기는 하지만 그림이 아닌 것은 아니다. 멈추면, 나만 멈춘 것이 아니다. 매일 그리는 나를 응원하고 좋아요를 눌러주던 수많은 사람들도 나의 멈춤으로 인해 좋아요를 멈추게 된다. 멈춤이 아니라 멈칫이라도,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멈칫이 쌓여 어느 순간 좌절을 겪어왔다. 나의 멈춤이 좌절로 이어지지 않기 위해 잘못 그린 그림이라도 끝까지 가보는 거다. 누가 아는가. 내가 망쳤다고 생각하는 그림이 누군가에게는 독특한 인상을 줄지. 예술은 완성하는 게 아니라 포기하는 거라고 누가 그랬더라?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림이 마무리되면, 이게 내 그림이라고? 말도 안 돼. 다시 그리면 이렇게 못 그릴 거야(또 기특하다는 얘기다), 를 반복한다. 그림 그린 지 2년이 넘어서까지 그랬다. 시작할 때마다 다시 두렵고 다시는 못 그릴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내 그림이다. 하루만 지나도 부끄럽지만 그림을 마치는 그 순간에는 어디 내놔도 손색없을 것 같은 내 작품이다. ‘내 작품’ 말이다. 누군가의 그림을 따라 그린 것이 아니라 순전한 내 작품의 탄생이다.

작가는 항상 자신의 작품을 부끄러워하는 줄 알았다. 아니다. 작품을 끝내는 순간은 사실 자랑스러워 죽겠다. 다만 자고 일어나면 부끄러워 죽는다. 부족한 것이 한눈에 다 보인다. 하지만 작품을 끝내는 그 순간만큼은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인 것 같다. 남들도 그럴 것이다(그래야 나도 덜 부끄럽지).   

내 작품이 아닌 그림을 그리는 것, 그러니까 따라 그린 그림은 내 그림, 내 작품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림이 아닌 것은 아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언젠가 내 그림도 그리게 된다.

평생 남이 만든 음식을 먹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평생 남이 만든 레시피로만 음식을 만들어 주어도 감사히 잘 먹어왔다. 그래도 내가 직접 음식을 만들다 보면 나만의 레시피가 탄생하기도 한다. 그럴듯한 레시피인데 나만 모르는 경우도 많다.       



   

언뜻 떠오른 이미지를 그려봤다. 이미지에서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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