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엄마들은 대가족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노년에도 할 일이 있었다. 사랑방에 앉아 곰방대만 물고 있는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는 광 열쇠라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손에 틀어쥐고 집안 대소사를 챙기며 손주를 돌보는 등 당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가족 내에서 존재감을 느낄 수 없는 지금과는 확연히 달랐다. 물론 그때도 갱년기가 오면 상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우물가에서나 빨래터에서 동네 언니들에게 지혜를 얻었을 것이다. 각개전투로 상실을 이겨나가고 있는 우리는 ‘언니’의 존재가 부럽다.
우리 엄마 세대는 핵가족을 이룬 첫 세대다. 마을이라는 개념이 사라지기 전, 골목 문화가 마을을 대신했다. 악을 쓰던 엄마들은 다 함께 관광버스를 타고 사라졌다가 돌아와 다시 웃곤 했다. 우리 엄마를 떠올려보면 갑상선 저하를 앓았던 것 같다. 순식간에 몸이 붓고 피로감을 호소했던 기억이 난다. 엄마는 갑상선이라는 병명조차 갖지 못한 채 갱년기를 앓으면서 보냈다. 아픈 몸을 다스리며 엄마는 집안의 실질적인 주인이 되어갔다. 여전히 가부장제 관습을 가지고 있었지만 머리 굵어진 자식들과 데면데면한 아버지보다 엄마의 입지가 더 커지는 건 당연했다. 친구 유영은 고3 때 엄마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고 한다. 아빠의 기에 눌려 소리 없이 지내다가 갱년기를 겪으며 용기가 생긴 유영의 엄마는 여장군이 되어갔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엄마 아빠의 관계가 뒤바뀌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동네 언니가 있었고 엄마에게는 이웃이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언니도 이웃도 없다. 우리에게도 언니가 필요하다. 먼저 살아낸 사람들의 농밀한 지혜를 듣고 싶다. 우리는 책과 '전문가'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그런데 그 전문가들이 정상과 비정상, 일상과 비일상으로 구획을 짓고 재단해버린다. 함부로 재단당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참고 억지로 힘을 내고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신호를 무시하고 묻어버린다. 갱년기에는 몸이 달라지고 마음이 달라지는데, 자신에게 일어난 변화를 세심하게 감지하고 받아들일 수 없다. 사춘기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된 증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느끼는 모든 증상을 부정적이고 파편화되고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해버리기 때문이다. 요즘은 랜선 사수라고 해서 사회에 나오자마자 전문가 노릇을 해야 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다. 우리도 랜선 언니를 구해야 하려나.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제대로 사회가 지원했으면 좋겠다. 각개전투 방식으로 개인이 알아서 하는 거 말고 사회가, 국가가 언니를 만들어 달라. 우리의 언니들이 우물가에서 나누던 공감과 위로가 조금만 더 공공의 영역으로 나왔더라면, 조금만 더 공적인 문제로 다루어졌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풍요로웠을 것이다.
이제라도 우리 딸들을 위해 중년들이 겪는 이 고통과 섬세한 감정에 적절한 언어를 부여해야겠다. 생리를 생리라 말하게 되었듯이(생리가 아니라 정혈이라 부르자는 논의가 있는데, 이는 논외로 하고) 갱년기를 갱년기라 부르자. 생리휴가가 권리인 것처럼 갱년기에 안식년을 갖는 것을 당연하게 누리자. 생애전환기 건강검진에 갱년기 검진을 넣자. 아니, 질병이 아니니까 따로 생애주기별 지원센터 같은 걸 국가가 마련해서 임신이나 출산, 사춘기이나 갱년기 등에 대해 미리 교육하고 궁금할 때 상담도 해주도록 제도화하자.
우리 세대는 지금의 페미니스트들을 키워낸 엄마들이다. 아들과 마찬가지로 딸에게도 목소리를 부여하고 제 몫의 삶을 쟁취하도록 가르쳤다. 그러나 집과 달리 밖에서는 이중적 태도를 취함으로써 사회변혁에는 실패했다. 목소리를 가진 딸들은 직접 사회에 나가 자기의 권리를 주장했다. 페미니스트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니라 자라면서 배운 대로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요구한 것뿐이다.
불행히도 고령화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사회의 중추 역할을 할 기회를 주지 않았고, 결국 젊은이들은 목소리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일에서 성취를 맛보고 세상을 주도하고 변혁을 일으키기보다는, 다 필요 없어, 내가 행복한 게 최고야, 라며 소확행을 꿈꾸고 n포를 하고 40대에 은퇴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고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젊은이들을 보면, 요즘 애들은 참 현명하다고 물개 박수를 쳤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봐도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년에 와서야 할 수 있는 말을 젊은이들이 하다니, 요즘은 노년도 선행학습을 하나? 청년 시기에 겪어야 할 활력과 패기와 도전과 성장 없이 노년에야 취할 안정을 앞당겨 취하려는 모습이 안타깝다. 필요 없어져서 내려놓은 우리와 포기해서 내려놓는 젊은이의 그것은 완전히 다르다. 인간은 누구나 생로병사를 몸으로 겪고 우주적 존재인 나로 거듭나야 한다.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경험하지 않으면, 노화를 질병이라고 주장하고 유전자 조작을 통해 청년 같은 노년을 반복하려는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된다. 나이에 맞는 질문과 답이 있다. 같은 질문과 답이라 해도 나이에 따라 그 뜻과 깊이가 달라지는 법이다. 예컨대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질문한다는 건, 젊을 때는 옳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고 나이가 들면 유연하기 위해 던지는 질문이 될 것이다.
드라마 <지리산>에서 사람을 구해서 헬기로 내려보낸 후 탈진한 상태로 산 아래를 굽어보는 장면이 나온다. 얼마나 세상이 아름다워 보일까, 가슴이 설레서 두 번 세 번 되돌려 봤다. “사람 구하기 딱 좋은 날씨다”를 외치던 영화 <반창꼬>처럼, 사람을 구하고 내려다보는 산의 정경은 그저 등산해서 보는 정경과는 차원이 다를 것이다. 대단한 무엇이 될 필요는 없지만 온 생명을 바쳐 가치 있는 순간을 맛보는 짜릿함을 우리 젊은이들이 주도적으로 경험했으면 좋겠다.
좋은 삶을 위해 다양한 무엇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효리는 훌륭한 사람 말고 ‘아무나 되’라고 말했다.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서는 대단한 무엇이 되기를 강요하지 않는 세상이 필요하다. 비록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만 세상을 탓하지 말고 스스로 전면적인 존재가 되어서 세상을 바꾸어나가면 좋겠다.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느라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는 것을 거부하지 않고, ‘아무나 되’어서 엄마이기도 하고 딸이기도 하고 옆집 이웃이기도 하고 ‘언니’이기도 한 그런 존재 말이다. 세상이 자리를 내어주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 사회적 존재로서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혼자 유유자적 살아가는 곳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라고 쓰지만 사실은 마구 개똥밭에 구르듯이 사는) 곳임을 몸으로 체득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10대, 20대에는 불안정했지만 30대 40대는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맛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청년들은 그런 시기도 없이 평생 불안정함이라는 두려움에 시달리다가 필멸의 두려움으로 곧바로 진입할 걸 생각하면 안쓰럽다. 하지만 두려움에 제압되면 삶의 희로애락을 제대로 누릴 수가 없다. 다행히 지금 청년들은 삶의 기준을 우리처럼 생산성에 두지 않고 성공보다는 성취를 소중히 여길 줄 안다.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의 편이 되어줄 줄 안다. 청년이라는 시기에는 세상을 재해석하는 프리즘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인생 주기가 길어지면서 예전에는 없었던 청소년기가 생겼듯이 이제는 장년 이후 노년이 아니라 중년이라는 중간 단계가 꽤 긴 시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가 그 긴 중년을 맞이하는 첫 번째 세대쯤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갱년기를 보내면서 노년을 맞이할 준비도 해야 하지만 긴 중년의 시기를 어떻게 살아낼지 고민해야 한다.
선배 신영은 은퇴자금을 털어 자식의 새로운 시작을 돕기로 했다. 취준생이었던 아들이 남편이 하던 허브농장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로 한 것이다. 신영의 아들처럼 주변에는 엄마가 만든 된장을 브랜딩 해서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거나 부모가 하던 떡집을 마을기업으로 확장시키는 등 많은 젊은이들이 부모의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취업이 어려운, 그러나 마케팅 감각이 있는 젊은 세대와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운영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아버리기에는 노후가 막막한 기성세대가 손을 잡는 것은 서로가 윈윈 할 수 있는 좋은 선택지다. 다만 부모가 자식을 얼마나 독립체로 인정하느냐가 성패를 좌우하는 핵심 열쇠가 된다. 부모 자식 관계를 넘어서 대등한 사회인으로서 인정해주고, 변화한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의 도입을 가슴 졸이더라도 밀어주고 지켜볼 수 있는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미국의 영성가 토머스 키팅 신부는 노화야말로 자신의 한계를 절감함으로써 의식의 전환을 통해 무아의 관상적 삶으로 넘어갈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어려운 말 같지만, 노화를 잘 받아들이면 도인처럼 온화해질 수 있다는 말 아닌가. 우리는 할 수 있다!
도도히 다가오는 변화의 물결에 우리는 올라탈 수 없다. 쓸려내려가지 않게 젊은이들의 손을 꼭 붙잡고 버텨야 한다. 어쩌면 우리들 중년의 과업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중심을 잘 잡고 서있는 젊은이들이 나 때문에 넘어지게 하지 않으려면 고독의 시간 동안 나를 내려놓고 가만히 감각을 벼려야 한다. 내려놓는다는 말은 이런 때 쓰이는 거다. 예전과 같을 거라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 상대의 마음도 나와 같으리라는 믿음을 내려놓는 것.
<완경 일기>에서 다시 스타인키는 "가임 시기를 넘어선 여성을 두고 재생산 시기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일은 사실상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생식 능력 자체는 중단되었을지 몰라도 그들 유전자의 보존과 재생산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업을 계속 추진해나가고 있다는 증거들이 아주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확실히 각 가정의 양육은 끝났을지 몰라도 미래를 살아갈 세대에 대한 양육과 그들에 대한 연대의식은 더 커진 것 같다. "완경의 명백한 이점들 중 하나는, 맹렬한 정의감을 불태우던 소녀였던 자신과 다시 조우하는 일이다. 완경은 한동안 가사와 일상에 밀려서 등한시되던 열정을 보다 더 넓어진 세계를 향해 발산하는 시기"라는 문장 앞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소녀였던 자신과 다시 조우"한 것은 분명하다. 지난 10년의 내 모습보다 소녀였던 시절이 더 나다웠다고 여겨지는 순간들이 있다. 이루지 못한 꿈을 떠올리기도 하고, 사느라 외면했던 순수한 나의 본성은 무엇이었던가 다시 되돌아본다. 때로 오래도록 연락하지 않았던 동창들을 찾아 그때 이야기를 꽃피우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연 '맹렬한 정의감'이었던가, '더 넓어진 세계를 향해 발산'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없다. 꼭 더 맹렬해지고 더 중요하고 더 넓어져야 하는가. 자신 없는 지금 그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때로 주저앉을 수도 있지 않은가.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업을 추진하"지 않아도 그것 그대로 인생이다.
친구 연수는 이혼하고 딸들과 함께 산다. 딸들은 엄마의 일방적인 돌봄을 거부하고 상호 돌봄을 선언했다. 엄마의 가사노동을 돌봄 중독으로 규정하고, 익숙한 가사노동 말고 당신의 할 일을 하라고 촉구한다. 어떻게든 자식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 시대에 상호 돌봄이라니, 대환영이다. 그러나 우리는 타인의 손길에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 익숙하지 않다. 받기보다 주는 것에 익숙한 우리는 이미 성인이 된 자식에게 못 줘서 안달이다. 책임감은 필요 이상으로 높으면서 자신의 필요는 참고 또 참는다. 특히 가까운 이에게 신세 지게 될 것을 극도로 두려워한다. 상상만 해도 벌써 우울하다.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의 돌봄 없이 살 수 없었고 인간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것이 당연한 데도 돌봄을 받는 일이 우울한 이유는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늙어 도움받는 것을 추한 것으로, 치매를 가장 불행한 것으로 주입당했다. 사실은 늙거나 치매인 당사자보다 돌봐야 하는 가족이나 주변인이 더 고통스럽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 중년이 현재 그 고통을 겪고 있어 자식들에게는 그 고통을 넘겨주지 않겠다는 건데 그 애잔한 노력이 오히려 늙음을 수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유영은 사회복지사 일을 하는데, 많은 동료들이 자신의 노후를 가족이 아닌 남과 함께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한다. 서로 돌봄을 약속한 지인(아주 친하지는 않은, 적당한 거리의 관계)들이 있단다. 그래서 이들은 졸혼을 꿈꾼다. 그만큼 가족은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이기에는 조금 버겁고 부담스러운 대상이 되어버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사랑과 신뢰라는 인류의 유산이 책임과 의무가 되어버리면서 가족은 오히려 가장 멀리 하고 싶은 존재가 된 것이다.
다르게 해석하자면 전통적으로 기대하는 ‘기대는 가족’이라는 전형이 해체되고 ‘독립적인 가족’이 형성되는 것이다. 대신 길어진 노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에 맞게 사회적 돌봄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대하는 노인시설과 사회적 인프라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자식들과 부모들, 그리고 내가 앞으로 살아갈 가족관계, 이런 것들이 '더 넓어진 세상'일지도 모르겠다. 열정을 '발산'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향한 막연한 인류애 같은 것이 바로 '맹렬한 정의감'일지도. 깔끔하게 죽겠다는 야무진 다짐을 하기보다 우리에게 닥친 노인 문제를 상호 돌봄 문제로 변환해서 새롭게 정의하고 인식을 바꾸어내는 일 말이다. 어쩌면 이건 우리에게 멋진 언니가 되라는 시대적 과업일지도 모른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고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라'는 스토아 철학은 갱년기를 지나며 습득한 정서와도 같으니 너무 애쓰지는 말고.
필요한 순간에 타인에게 기대고 도움을 받을 줄 아는 현명함부터 장착하는 게 좋겠다. 다른 이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자신의 효용감을 높여주듯이 친절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적 돌봄력'을 높이는 일이다. 손 내밀 줄 아는 것도 인생의 중요한 스킬이다.
연수는 부모를 뵙고 와서 마음이 힘들었다. 부모를 모시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딸들은 이제 가족애 말고 인류애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일침을 가한다. 가까운 곳에서 어르신 봉사부터 하란다. 내 부모 말고 남의 부모에게 더 살가운 어쩔 수 없는 우리네 한계를 똘똘한 딸들은 잘도 캐치한다. 상호 돌봄은 가족으로 한정된 개념이 아니어야 한다. 받은 대상에게 주는 방식도 아니다. 상호, 돌봄, 그리고 가족까지 각각의 개념을 좀 더 열린 자세로 상상해나가야 한다.
딸들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안 하면 되잖아,라고 말해서 연수를 서운케 한다. 젊은 그들은 당연한 것들을 당연히 행하고 빠르게 전환할 수 있겠지만 중년의 우리는 머리와 분리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있다.
보부아르가 갱년기를 보낼 무렵 실비 드 봉이 곁에 있었다. 보브와르는 마흔 살이나 어린 실비와 깊은 유대관계를 맺으며 글을 계속 써 나갔고 “너를 통해서 살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넘어”서는 시기를 맞이한다. 아마 <노년>을 쓰던 당시 그녀에게 ‘그 무엇’은 젊은 시절의 ‘그 무엇’이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여행과는 다른 시선으로 새로운 인식을 낳았을 것이다.
딸들이여, 우리의 실비가 되어 차분히 가르쳐달라. 우리가 너희에게 했듯이 너희도 우리를 기다려주고 반복해주고 작은 성취에도 칭찬해 달라. 함께 인생을 살아가는 도반으로서 연대해달라. 너희가 우리 손을 놓지 않는 한, 우리도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