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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Feb 07. 2022

우리가 살아가는 중년 1.

찬란한 갱년기 이야기

갑자기 어릴 때 친구가 그립다. 동창회를 나가볼까 싶다. 나를 모르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 너무 피곤하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나에 대해 1도 모르는 낯선 사람을 만나 나를 설명하고 나를 증명하고 나를 팔아왔다. 척하면 척하는 사이, 개똥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친구가 그립다.           

후배 인선을 만난 것도 그래서이다. 거의 30년 만에 연락이 왔다. 편한 사람이 그리워서 전화했단다. 우리는 어제 만난 듯이 이야기를 나눴다. 30년 동안 각자 너무 다른 인생을 살아왔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 서있는데도 딱히 추가 설명이 필요 없다. 알지, 언니는 알지? 그럼, 네가 그런 거 나는 알지, 우리는 안도감을 느낀다.                 

이제 우리는 남들 눈치 보기가 싫다. 평생 을로 살아오면서 물러서야 할 때가 너무도 많았다. 어쩌다 갑이었어도 짊어져야 할 책임이 따라오니 버겁다. 가족 속에서도 을로 산다. 사랑은 더 많이 사랑한 자가 지는 게임이다. 가족끼리는 특히. 배려하는 일에 지치고 지겹기까지 하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냥 알아주면 좋겠다. 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그래서 말을 직선적으로 하게 된다.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단순하게 한다. 예전 같으면 하지 않았을 말도 뱉어버리고 하지 않을 행동도 뭐 어때, 한번 살지 두 번 사나, 해버린다. 적게 움직이되 한번 움직일 때마다 과감해진다. 그래도 될 관계만 만나고 싶다. 그러면 안 되는 관계는 점점 끊고 그래도 되는 관계만 남겨둔다. 그러니 인간관계가 점점 줄어들밖에.                    

인선은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 박사학위까지 마쳤다. 아무도 지원해줄 사람 없이 혼자 경제적 책임을 지면서도 불도저처럼 공부해서 남들보다 빨리 학위를 따냈을 뿐 아니라 일하던 곳에서도 남들과 다른 높은 성과를 냈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고 보니 지금까지 그가 몸담아왔던 곳과는 달리 가급적 일을 벌이면 안 되는 곳이었다. 갑자기 많아진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취미가 있으면 그런 거나 쉬엄쉬엄 하라는데, 공부하고 일하는 것 말고 해 본 게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밤낮으로 일하고 공부하던 때도 잘 버텨왔던 몸이 오히려 편한 곳에 와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몸이 무너져서 그런지 의욕도 안 생겼다. 인선은 그런 자신을 용납하기 힘들었다. 빨리 몸을 추스르고 다시 대학원에 들어갈 꿈을 꾼다. 인선에게는 아직도 이루고 싶은 꿈이 많다. 상황이 닥치면 뭐든 해냈던 자신이니까 대학원에 일단 들어갈까 고민 중이다. 일단 시작하면 다시 의욕도 생기고 열정도 생기리라 스스로를 믿는다. 그런데 한번 떨어진 텐션이 쉽사리 올라오지 않았다. 이건 내가 아니야, 현실을 부정하다가 자신이 갱년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 최고의 시기가 지났음을 느끼는 갱년기.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결실을 이루고 빛을 발한 후, 필멸이 기다리고 있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더, 더, 더 끌어올려서 최고의 호황기를 만들어내느라 방전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야 성취하는 방법을 알 것 같은데, 다시 그걸 반복할 자신이 없어졌다. 인생에서 써야 할 에너지를 다 써버린 기분이다. 그런데 여전히 눈앞에 인생이 버젓이 남아있다. 인생은 모름지기 활활 타올라야 하는 것이라고 인선은 생각한다. 그렇게 살았고 그것이 얼마나 멋진 것인지 잘 아는데, 다시 할 수 없게 되다니. 그렇다고 그렇지 않은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다. 차라리 인생에서 그만 사라지고 싶다.    

  

예전에 인기 있었던 연기자들이 나이 들어서 다시 티브이에 나오면 얼굴을 찌푸렸다. 왜 굳이 다시 나와서 좋았던 추억을 망치는 건가 의아해하면서. 그들의 굴곡진 인생사를 예능에서 풀어내는 것도 구질구질해 보였다. 예쁘고 우아하던 이들이 나이 들고 거친 배역을 맡아 연기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서 박수를 치기는커녕 추해 보인다고 외면했다. 그들에게 너그럽지 못했던 것은 아마 젊었기에 부릴 수 있었던 객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들은 시청자의 추억을 위해 존재하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그들 몫의 삶을 사는 하나의 인생임을 몰랐다. 아마 그들도 몰랐으리라. 인기와 돈과 이름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삶을 살다 보니 무언가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했던 거라는 사실을. 많은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얻기 어려운 것인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인선은 아직도 이루고 싶은 버킷 리스트가 많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버킷 리스트인지, 아니면 거품처럼 끓어오른 자잘한 욕망들인지 알 수 없다. 시간을 들여 자신의 내면을 보살피고 나면 바닥에 숨어있는 진짜 욕망을 마주하게 되겠지. 갱년기는 바닥으로 내려가는 시기이다. 긴 날숨으로 바닥에 가라앉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가능한 아래로 내려가서 천천히 다음 숨을 고르다 보면 어느새 다시 떠오를 것이다.  

그동안 기를 쓰고 얻게 된 삶의 방식, 불나방같이 달려들어 기어이 해내는 방식은 내려놓아도 된다. 이미 몸으로 체득되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마치 고수의 비기처럼 애쓰지 않아도 그 힘은 발휘된다. 윤여정 배우님이 아카데미상을 목표로 배우 생활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성취의 순간은 그렇게 오기도 한다. 그러니 성취를 위해 접어두었던 마음을 한 켜 한 켜 돌아보기를. 미뤄왔던 감정을 드러내는 연습을 하기를. 자신을 마주하는 갱년기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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