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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둥 Feb 07. 2022

우리가 살아가는 중년 2.

찬란한 갱년기 이야기

다온은 회사원이다. 연차가 있으니 꽤 책임 있는 직책을 맡고 있는 듯하다. 다온의 집에서 그녀의 출근을 지켜본 적이 있다. 다온은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난다. 아직 반쯤 감긴 눈으로 익숙하게 어젯밤 냉동실에서 꺼내놓은 떡을 전자레인지에 집어넣는다. 식탁 의자에 잠시 앉아 조금 더 잠을 깨우고는 큰 숨을 몰아쉬며 욕실로 간다. 물소리가 전자레인지의 소리와 함께 아침을 흔들어 깨운다. 젖은 머리로 욕실을 나와 떡을 한 입 물고 창문을 연다. 떡을 우물거리며 화장대로 와서 머리를 말린 후 다시 나가 사과를 썰어 통에 담는다. 화장을 하며 약과 비타민을 찾아먹고 그릇을 씻는다. 밀대로 거실 바닥을 이리저리 밀어대고 창문을 닫는다. 이제 날이 훤히 밝아왔다. 그녀는 외투를 걸치고 길을 나선다. 아마 8시 30분쯤 회사에 도착해서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시겠지. 커피를 마시는 중에도 밤새 들어온 메일을 검색할 것이다.

 

이렇게 써놓고 보면 보통의 직장인들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녀의 부자연스러운 동작들을 추가하지 않았다는 점을 빼면 말이다. 다온은 지금 양손 모두 방아쇠 수지 증후군과 손목터널 증후군으로 손을 거의 쓰지 못한다. 그 외에도 엉덩이, 무릎, 팔의 강직까지 와서 몸을 쓸 수 없는 지경이지만 오늘도 아프기 전의 패턴 그대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는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부터 다르다. 알람 소리도 밤새 굳은 어깨와 팔을 주무른 후에야 끈다. 몸을 옆으로 굴려 침대 아래로 내려선다. 사과가 담긴 통을 열기 어려워 뚜껑을 채 닫지 않는다. 밀대 걸레는 겨드랑이에 끼워서 쓰고 외투를 입을 땐 의자에 소매 끝을 세워놓고 몸을 돌려 입는다. 바지를 입거나 양말을 신으려면 소파에 앉아 발에 끼우고 의자에 앉아 위로 올린다. 머리를 감고 헤어드라이어를 쓰고 창문을 여는 동작이 모두 버겁다. 냉장고 문이 이렇게 무겁고 자동차 기어 넣는 게 이렇게 손가락 힘을 요하는 것인 줄 몰랐다. 

발가락 사이에 때 좀 닦았으면 좋겠어. 발가락을 벌리는 것도 어렵고 닦는다고 손가락에 힘주는 것도 너무 아파. 

다온이 이렇게 말했을 때, 발톱깎는 게 완전 전쟁이야 했을 때와는 또다른 애전함이 느껴졌다. 아마 출근길에도 엉덩이가 아파서 이리저리 움직여가면서 운전했을 것이고 메일을 검색하면서도 자세를 계속 바꾸고 있으리라. 그래서 그녀는 남들보다 일찍 일어난다. 서두르지 않는다. 서둘러서 할 수가 없다.

 

다온은 이제 예전과 같이 깨알 같은 답메일을 보내지 않고 밤새 기획서를 만들어 직원들을 놀라게 하지도 않는다. 주어진 일은 어찌어찌해내고 있지만 새로운 일을 제안하지는 않으니, 일이 재미없다. 일이 재미없어진지 한 2년 된듯하다. 몸이 아프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전부터 조금씩 재미를 잃어갔던 것 같다. 마음을 터놓고 지낼만한 동료가 있는 것도 아니요, 자유롭게 일을 추진해나가는 입장도 아니요, 현장을 누비는 것도 아닌, 오로지 책임만 지는 자리에 있으면서 그런 것 같다.

자신이 따르던 상사들은 이런저런 일로 퇴임하거나 (뜻하지 않게) 물러났다. 상사가 없다는 건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상사를 의지하다니 이해할 수 없겠지만 책임지는 자리에 있다 보면 상사는 내 앞을 막아서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내 앞을 막아준 사람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정적도 있다. 너무 거창한 표현인 것 같지만 모든 회사원은 동료도 있지만 정적도 있다는 것에 공감하리라. 이제 다온은 동료는 없고 정적만 남았다. 그래서 다온은 다리가 아파도 남들 눈에 뜨일 정도로 절뚝거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아픈 기색이 얼굴에 드러날까 봐 조마조마하다. 심지어 꽤 통통했던 살이 빠지는 것도 기쁘지 않다.    

다온은 출장을 다녀오거나 큰 행사를 치르고 나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가 내일 출근할 에너지를 보충해야 하고 한약을 연달아 먹는다. 회사에 열심히 다니는 것만큼이나 병원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의 성실이 이번에도 그를 구제하리라.      


그 위치에 선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다온은 누구보다 열정적이었고 성실했고 남들이 해내기 힘든 것을 해냄으로써 자신을 증명해 보였다. 성실과 열정은 그녀가 가진 최고의 삶의 무기이다. 지금 몸이 조금 아프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무기가 녹슬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 회사라는 조직과 사회에 필요한 인재로서 그 몫을 다한 그녀는 분명 후배들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후배들은 지켜보고 있다. 이제 그녀가 어떻게 중년을 보낼 것인지. 우리가 지켜봤던 선배, 즉 퇴임하거나 물러난 상사들은 우리에게 선배로서 보고 배울 만한 것을 남겨주지 않았다. 그 많던 선배들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 이제 그녀는 그녀 스스로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나는 주군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내게도 주군이라 할 만한 선배가 있었고 지금도 그 선배는 내게 주군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훌륭한 사람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가 누군가를 따를 마음이 없어졌다.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내 멋대로 하고 싶지 누군가를 따르는 일이 쉽지 않아졌다. 이제 내가 나의 주군이 되어야 한다. 나를 대신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다. 따르고 순종할 때가 좋았다. 여전히 군가를 들으면 가슴이 뛴다. 하지만 누군가를 따르는 군가가 아니라 오로지 나를 위한 군가로 들린다.

주군이라면 어떻게 할지 상상해본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주군은 멋대로 하려는 이에게 한 번 더 생각하게 하고, 살아온 대로 살려는 이에게 살고 싶은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닥여준다. 나는 내 안에 지혜로운 주군을 모시고 천방지축의 나, 본성 그대로의 나를 다스린다.

다온과 인선도 그들의 주군이라면 어찌할지 상상하며 나아갈 것이다. 마음속 주군의 뜻에 귀 기울일 것이다. 그들 마음 속 주군은 결국 우뚝 서 후배들의 주군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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