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월 1일
첫날, 강사의 첫 질문은 물이 무서운 사람? 이었다. 당연히 나는 손을 들었다. 나 같은 수강생들이 생각보다 꽤 많았다. 우리는 한쪽 구석에서 물에 얼굴을 담그는 훈련부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수영복을 입는 것부터가 도전이었다. 얇은 수영복 하나로 내 몸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그것은 반바지 입을 때도 용기를 내야 하는 나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남편이 보는 앞에서. 30년 같이 산 남편과는 볼꼴 못 볼꼴 다 보고 산 사이이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수영복 차림을 보여주는 게 쉽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우선 수영복을 사는 것도 쉽지 않았다. 나도 무언가를 살 때 인터넷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한 번도 산 적이 없는 품목 앞에선 순식간에 머리가 초기화되면서 이걸 어디 가서 사야 하나, 막막해지는 것이다. 결국 장롱을 뒤져 언니가 20년 전 미국에 이민 갈 때 주고 간 수영복(그게 왜 아직도 있냐고@@)을 꺼내들었다.
언니가 나보다 약간 크기도 하지만 입던 걸 오래 묵혀둔 탓에 수영복은 조금 늘어져서 헐렁했다. 그 약간의 주름이 있는 공간 속에 몸을 숨겼고(라고 믿고), 말도 안 되지만 그게 나를 조금 덜 부끄럽게 해주었다.
88체육관 옆에서 살던 때가 있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처음 한갓진 시간이 주어지자 나도 수영강습을 받아보기로 했다. 차가운 물에 들어가야 한다니 두려웠지만 강습을 받으면 남들처럼 나도 어찌어찌 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레인 끝에 매달려 발차기를 하고 고개를 박은 채 음파를 하다가 한 달이 끝났다. 강습도 자주 빼먹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마도 생리 때문이었으리라. 생리를 끝내고 가면 당연히 진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결국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역시나 물은 나랑 안 맞아, 라는 강한 고정관념만 생겼다. 아무튼 그때 내 기억에는 주로 젊은 여성이 많았다. 20대나 30대로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수영장은 완전 할머니들의 세상이다!
아쿠아로빅을 하는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수영을 하는 이들도 50,60대의 비율이 매우 높다. 70대도 많다. 낮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직장인반이라 할 수 있는 새벽수영에도 어르신들의 비중이 반반이다. 당연히 샤워실에서도 쭉쭉빵빵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은 늙은 자연적인 몸, 늘어진 편안한 몸, 중부지방이 풍부한 귀여운 몸들이다. 그들이 벗고 씻고 수영복을 입는다. 그들의 수영복은 운동복이다. 매일 입는 일상복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이 당연함을 몸으로 체득하기가 어려웠다. 몸을 드러내기 힘들었고 (남들의 눈길이) 안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은 내게 수영장은 일종의 해방구다. 내 몸을 드러내도 괜찮다는 안도감을 처음 느껴보는 공간이고, 타인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운동에만, 그러니까 수영에만 집중할 수 있ㄴ느 공간이 되었다.
수영복이 편안하게 받아들여지면서 물도 조금씩 편안하게 받아들여졌다. 수영복을 입었으면 물이 온몸을 적시는 게 자연스럽다. 이제 머리카락 안으로 차갑게 스미는 물의 감각이 이물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너무 더운 여름이었던 지라 사실은 좀 시원했다. 물이 시원하다고 느끼는 내가 신기할 만큼 더운 날들이었다. 어쨌든 물의 무서움이 한여름밤의 납량특집처럼 시원하게 느껴지는 순간, 무서움은 더이상 무서움만은 아니게 되었다. 내가 물을 무서워하지 않다니, 내가 물을 시원하게 여기다니! 50대에 처음 느끼는 감각이 또 있다는 게 가장 놀라웠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더니 인생은 정말 아직도 놀랄 일들로 가득차있다.
새롭게 느낀 감각을 지나치게 침소봉대하지 말자며 자꾸만 나를 달래야 했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내가 어떻게 돌변하는지 내가 너무 잘 아니까. 하지만 이미 그때 나는 눈치챘던 것 같다. 내 안에 수영에 대한 불씨가 불타오르기 시작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