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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학부모들의 공통적인 어려움

키키편: 경청과 공감

by 천둥


천둥: 학폭을 겪은 다른 사람들은 어땠을까? 키키가 만난 사람들은 어땠어?


키키: 그들도 우리처럼 사건 그 자체보다도 그걸 다루는 과정 안에서 느끼는 수치심과 모멸감에 대해 말했어.

내가 학폭 심의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랑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던 한 학부모가 있었어. 부모와 아이가 긴 책상 가운데에 앉아 있고, 교사들이 원탁에 둘러앉아선 “왜 그렇게 했나요?” 하고 취조하듯 묻는 장면, 그 부모님은 그때 “마치 가해자가 된 것 같았다.”고 했어. 게다가 “어머니는 잘 몰라서 그러시겠지만요”, “학교는 안전합니다.”라는 말들이 나오면, 그건 위로가 아니라 차단의 언어가 되어버리는 거지.

심지어 어떤 분은 교육청 심의에서 아이의 학폭 상황에 너무나 마음 슬프고 예민한 가운데, “알겠으니까, 1분 안에 말하세요!”라는 지시를 받았다더라. 심지어 피해 상황을 재연해보라는 말까지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정말 할 말을 잃었어.


천둥: 인간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는 순간이었겠다….


키키: 사실 처음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라 유난히 예민한 건가 싶었는데, 아니더라고. 똑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모멸감과 무력감을 겪는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지.


천둥: 지난번에 마트에 장 보러 갔다가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 있다고 했었지?


키키: 응. 마트 계산대에서 한 엄마가 나를 붙잡고 아이가 일진 아이들의 외모 비하와 괴롭힘 때문에 며칠째 밥을 굶고 있다며 이사라도 가야 하느냐고 묻는 거야. 오죽 답답했으면 마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실까 싶어 마음이 많이 아팠지. 이건 나만의 특별한 일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가 학부모들에게 부과하고 있는 현실이야. 다시 한번 학부모회가 모든 학부모들의 고민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순간이었어.


천둥: 왜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걸까?


키키: 학교와 교육청이 너무 절차와 행정을 우선시하는 구조적인 문제 아닐까? 모든 상황이 종료된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선생님들도 큰 잘못이 없다고 느껴져. 교사들도 여러 행정과 절차, 그리고 교과활동 등등으로 너무 과부하 상태라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는 것 같아. 게다가 코로나 이후엔 개인화, 양육 혼란, 과한 미디어 노출, 언어폭력의 일상화까지 겹쳐지고 말이야.


천둥: 교사들은 힘들고, 부모들은 외로운 싸움을 하고….


키키: 아이들은 여과 없이 상처 되는 말을 함부로 내뱉고, 교사들은 그걸 교육적 기회가 아니라 징계나 통제의 대상으로만 보게 되고, 부모들은 점점 더 억울함을 어디에도 말할 수 없게 되고, 결국 학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갈등이 반복되는 악순환이야.

대부분 부모가 바라는 건 대단한 게 아니거든. 내 아이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 그런데 현실은 그런 공감 대신, 행정적 처리과 절차에만 매진하고 아이의 상태나 과정을 들여다보지는 않아. 그건 가정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하거나, 학교는 안전하게 잘 가르쳤는데 아이들이 잘 따라주지 않아서 발생한 일이라는 식의 말들을 듣게 될 때. 학부모인 우리는 그 과정이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

학교를 질타하거나 문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상태를 교육자로서 따뜻하게 바라봐주고 부모와 함께 길을 찾아가도록 도와주길 원하는 것뿐인데 학교는 문제처리 방식으로만 접근한다고 느껴져. “어머니, 그래서 학폭으로 신고를 하실 건가요?” “학폭으로 접수를 하시면 지금 바로...”그런 말들을 들으면 순간적으로 어떤 대답과 결정을 해야 할지 막막하고,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좋은 교우관계 속에서 우리 아이가 공동체 의식을 기르고 잘 배우며 성장하는 건데, 그것과는 아득히 동떨어진 학교 현장에 대해 너무 큰 괴리를 느끼게 되는 것 같아.


천둥: 진짜 그럴 때 너무너무 속상하지.


키키: 맞아. 부모들은 학교에 따지려고 하거나, 신고하려는 게 아니라 그전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조언을 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거든. 그런데 학교는 처리 절차와 신고 여부에 대해서만 묻더라고. 그런 말 한마디 말 한마디에 고립감을 느끼고, 오히려 더 깊은 상처를 받아. 그럴 때 우리는 학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는 사실을 학교는 잘 모르는 것 같아.


천둥: 그치. 한편으로 나는 공감이라는 말에 약간 거부감이 있거든.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공감만 해달라는 부모들이 너무 많아져서.


키키: 그건 그래. 조선미 교수님도 그 얘기 하잖아. 요즘 아이들이 당연히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도 하기 싫은데 왜 해야 하냐고 묻는다고, 무조건 공감해달라는 아이들과 부모들 때문에 교권이 떨어진다고 지적했었지. 게다가 기분이 태도가 되기도 하고.


천둥: 분별력을 가지지 못한 부모들 때문에 교사들이 많이 지치기도 했겠지만, 그야말로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아야 하잖아.

어쨌든 그런 학폭 과정 속에서도 자신의 아이와의 관계를 오히려 회복한 학부모들이 있었다면서?


키키: 꽤나 역설적으로 그 과정에서 얻는 게 있기도 해. 처음에는 학폭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쩔 줄 몰라 하던 부모들이나 교사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거야. 심판대처럼 느껴졌던 심의 자리에서 아이가 “저는 진짜 억울했어요.”라고 말하자, 그제야 교사들이 아이의 말을 듣기 시작한 적도 있대. 어떤 부모는 아이에게 학폭 과정에서의 “억울함을 글로 써보자.”고 제안했는데, 편지 한 장에 담긴 아이의 내면을 그때 처음 알게 됐다고 하더라. 사실 나도 그랬어. 우리 아이가 한창 학폭으로 힘들어서 죽고 싶다고 했을 때 많은 시간을 들여서 아이와 깊은 대화를 나눴거든. 지금은 아이도 나를 더 많이 신뢰하게 되었고, 고민이 있을 때마다 마음을 열고 의논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서 도리어 감사해. 또 그때마다 같이 바람 쐬러 갔었던 공원이 지금은 웃으며 추억하는 마음의 장소가 되었어. 만일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그런 깊고 진한 추억이 생길 수 없었겠지. 그 일을 계기로 아이는 격투기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학폭뿐 아니라 일상에서 있는 관계의 어려움이나 앞으로의 진로에 대한 고민들을 스스로 풀어내는 힘을 얻게 된 것 같아. 운동의 힘이지.

이런 순간들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깊은 배움이 된 것 같아. 학교가 가진 구조적인 문제와 고착된 것들을 당장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고 의미 있는 해석을 할 수는 있잖아.


천둥: 부럽네. 나는 그때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마음이 앞서서 내 아이의 마음을 보살피는 걸 제대로 못했거든. 지금도 많이 후회되는 부분이야.

어쨌든 결국 사건보다 중요한 건, 그 사건을 다루는 방식인데, 학교나 사회가 너무 강력범죄 사례만 내세워 모든 갈등을 범죄로 다루는 것 같아.


키키: 맞아. 갈등은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생길 수 있잖아. 그런데 갈등을 무조건 뿌리 뽑아야 한다는 식의 응보적 관점으로는 교육이 이루어질 수가 없어. 또 무조건 ‘학폭’이라는 낙인으로 덮어버리면, 아이들은 더 짓눌리고 학교도 피로도가 누적되면서 가끔은 매끄럽지 못한 해결로 인해 오히려 교권이 추락하는 일도 발생하잖아.

부모와 교사가 그 과정을 ‘교육적 기회’로 해석하고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아이에게 표현할 통로를 열어주면, 오히려 성장의 자원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러려면 부모와 교사가 신뢰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겠지. 마치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처럼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크고 작은 시도를 해본다면 결코 해내지 못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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