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비 만드는 작업자입니다
-지치지 않도록 자신을 돌보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올해, 벚꽃이 필 무렵 시간을 따로 떼어 글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썼다가 지우고 고치고 삭제하고….
A4 한 장 채울 때보다 그렇지 못할 때가 많았다.
‘무조건 쓰라’라는 모든 글쓰기 책의 공통된 의견을 받아들여
기억나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마음에 얻어걸리는 대로 썼다.
그랬더니, 시험기간에 무리 지어 도서관을 누비는 중학생처럼
어디로 튀어 나갈지 모를 부주의와 산만함이 거슬리는, 무미건조한 글이 되었다.
써도 써도 같은 글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내가 정신이 없었나?
시험이 끝나길 간절히 바란 사람은 학생이 아니라 나였다.
한여름인데, 바짝 마른 나의 글쓰기 계절은 가을인가 보다.
'무조건' 썼더니, 아무 조건 없는 글이 되어 버렸다.
이게 아닌데, 쓰는 행위를 오해했던 게 아닐까?
내 글을 하나씩 읽어봤다.
하나 꺼내 보자면 아래와 같은 글.
‘하루가 지났다. 어제 약속했던 일들이 아직 남았는데 시간은 놓친 버스처럼 직진으로 가버린다. 오늘도 쓰지 못한 글이 쌓인다. 오래된 넝쿨에서 뻗어 난 줄기에 덮여 기억나지 않는 생각들. 재능을 탓해보고 노력을 탓해보지만 시간 앞에 소용없는 핑계다. 오늘만큼의 글은 외상으로 달아둔다.
직업을 갖고 월급 받으며 안정적인 생활 궤도에 오르기 위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시도를 할 동안 글쓰기는 뒷전이었다. 마음 한쪽에 자리한 첫사랑처럼 쓰기는 잊히지 않았다. 그리운 사랑을 언젠가 다시 만나지 않을까, 기대하며 사는 것처럼.’
글 전체를 비추는 정서, 지배적 정황이 없다는 걸 알아챘다.
글은 뚝뚝 끊어지다 이어졌다. 쓰다 보면 언제 끝날지 나도 몰랐다.
헤헤 웃거나 유치해서 낄낄 대던 에피소드는
맨살을 드러내고 혼자 덩그러니 건조한 가을 속에 있었다.
귀하디 귀한 쓰레기들을 차마 버릴 수 없어
떨어진 나뭇잎 수집하듯 usb에 파일들을 켜켜이 모았다.
날짜순으로 정리해 봤더니 한글파일 80여 개로 정산되었다.
‘애걔, 이것밖에 안 되네.’
머리카락 그러쥐고 커피 들이켜며 보낸 시간에 비례해, 빈약한 양이었다.
이런 쓰레기와 퇴비에서 피어난 글쓰기만이 견고한 글이 된다. 당신은 어느 것으로부터도 도망치지 않게 된다. 당신은 예술적 안정성을 지니게 된다. 안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바깥에서부터 쏟아지는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
Writing down the bones
앞으로 쓰레기... 아니 훌륭하고 질 좋은 비료를 만드는 일에 전념할 밖에 도리가 없다.
그녀의 말대로 쓰레기들이 밑거름이 될 시간(얼마나 걸릴까요?)이 필요하다.
썩어질 글들을 더 생산하고 말라비틀어진 글을 짜내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머리를 쥐어뜯고 커피를 들이켜고….
우리는 스스로가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 정말 말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는 사실과 직면하는 순간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그때 당신은 더 이상 어디로도 도망을 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것이다. 이제 당신은 별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종이 위에 풀어놓아야 하며, 그 가련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말을 경청해야 한다.
Writing down the bones
나탈리 골드버그가 말한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때까지 가야 하지 않을까? 줄무늬 고양이가 누워있는 곳.
잘 모은 쓰레기가 때가 되면 발효되고 운이 좋으면 비옥해질 것이다. ‘게으르며 불안정하고 자기혐오나 두려움에 쌓인 존재’가 자신이 만든 땅에 뿌리를 내리는 순간이 온다면 ‘어떤 비평도 무섭지 않다’라는 그녀의 말을 믿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