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쓰기

by 한요고


삶에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은 상대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데서 온다.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의적이든 아니든, 관계는 미세한 신호 하나로 방향이 바뀌고

이유를 알지 못한 채 지나쳐 가기도 한다.



나를 잘 챙겨준 사람이 있었다.

H는 나보다 어렸지만, 선배였고,

팀은 달랐지만, 같은 사무실에서 일했다.

어느 날 H가 다가와 점심 드셨냐며 말을 걸었다.

나는 존대하며 네, 맛있게 드셨어요?라고 했더니, 말 놓으시라고 손사래를 쳤다.

직장에서 누구에게도 반말을 해본 적이 없던 나는 당황스러웠다.

H는 괜찮다며, 편하게 얘기하시라고 했다.

점심때가 되면 H와 함께 식당에 갔고

나른한 오후에는 잠깐 대화를 나누며 졸음을 쫓았다.

우리는 퇴근하고 삼겹살을 먹으러 갔고

늦은 밤까지,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얘기를 나누었다.

그렇게 1년쯤 지났을 때, H는 다른 부서로 옮겨갔다.

자연스레 얼굴 보는 일이 드물어졌다.

바쁠 때 연락이 와서 통화를 못 하거나,

서로 문자에 답장이 늦어졌다.

각자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지 못했고 밥 먹자는 약속은 계속 미뤄졌다.

해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빛이 길고 가늘어지듯 관계는 저물어 갔다.

나는 왜 이렇게 됐을까? 의문이 생겼다.

혹시 말실수했었나? 골똘히 기억을 더듬었고

털어놓았던 속말이 민망해, 괜히 했구나 싶었다.

서로에게 폐가 될 일은 없었는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것은 아닌지 자꾸 돌아봤다.



모호한 태도, 짧은 대답, 늦어지는 답장, 무표정….

그런 것들에 불안을 느껴 상대방을 읽으려고 하지만

불안을 해소하기에는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알 수 없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워 넣고 생각을 끝내버리곤 한다.


관계는 가까워지다가 멀어질 수도 있다고 받아들이면 깔끔한데,

감정은 그렇게 선선히 따라와 주지 않는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고 싶어 한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어리석은 시도를 하는 동안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불안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검은 형체는 의심으로 가득 차, 근심 어린 말을 쏟아내고

알지 못하는 영역까지 내 책임 안에 두려고 한다.

사람의 인연뿐 아니라 일도 그렇다.

불안이 내는 소리에도 불구하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생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인정하기가 왜 이렇게 힘든 걸까?


불안한 그림자가 부정적이고 나쁜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 속에, 이루고 싶은 바람과 욕망이 어른거린다.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고,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은, 행복을 바라는

자신의 마음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H와는 가끔 안부를 물으며 잘 지내고 있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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