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아나요?

by 한요고

도서관에서 책을 책상 위에 몇 권 쌓아두고 잠깐 자리를 비운 적이 있었다.

돌아와 보니 책이 흩트러져 있는 게 아니가. 맨 위에 올려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떨어져 있었다.

누가 손을 댔나 의아해했지만 그럴 리는 없고 아마 통로 옆에 있던 테이블 위의 책을 누가 툭 치고 지나간 것이라 짐작했다.

지나갈 때 손이든 엉덩이든 책이 닿는 느낌이 있었을 테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

그것을 감각하고도 정리하지도, 주워놓지도 않고 가버린 것이다.

‘대체 어떤 사람이야, 무례하네.‘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책을 펴고 읽는 동안에도 계속 그랬다.


그러다가 ‘잠깐만,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지?'

안면 없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의는 있다.

홈페이지에는 도서관 이용 규칙이 있고 자료실 곳곳에 ‘이용 시 주의사항’이라는 제목이 적힌 스티커가 붙어 있다.

그런 것들과 상관없이 ‘떨어진 책은 주워놓고 가야지!’라는 말로 내가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 아닌가?

내가 여기 왜 왔는지 잊어버리고 감정에 사로잡혀 정신을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갑자기 우스워졌다. 별별 사람 다 오는 공공장소이니 별스러운 일이 생길 수 있는데 넘어가면 그만인 것을 붙잡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누군가의 행동을 그 사람의 진심으로 해석하려는 습관이 있었다.

어렸을 때는 학교에서, 지금은 직장에서 ‘ 잘 ’ 지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눈치 있게, 다른 말로 하자면 센스 있게 처신하려다 보니 다른 사람의 행동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돼 버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OO파이 광고처럼 말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간파하는 궁예의 관심법 경지에 이르고 싶었나 보다.

이를 테면 ’ 책을 흩트려 놓고 간 것은 나를 무시한 행위야.‘라는 어이없는 해석을 하는 것이다.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무시하지?'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그냥 무신경하고 예의 없는 사람이 있었고 그 때문에 잠깐 동요한 것뿐인데.


습관이란, 말 그대로 자연스레 배어 있는 행태라 어쩔 수가 없다. ’ 그게 아닌데 ‘라고 아무리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망상에 빠질 때가 있다. 설령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눈치껏 알아낸 의미와 같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내 생각대로 해석해서 진실이라고 믿었던 것은 결과적으로 똑같은데.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멈춰야 한다.

’이건 망상이야. 괴로운건 나.' 라고.

의미없는 해석으로 자책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누군가의 행동이 신경 쓰일 때 내가 또 망상을 하려고 하는구나. 알아차리면 된다.

지금부터라도 시도하면 된다.

알아차리고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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