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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Nov 01. 2020

11월에 읽기 좋은, 얇고 가볍고 포근한 책

<시와 산책>, 한정원

 사적인 서점에서 발견한 <시와 산책>. 정지혜 책처방사의 코멘트가 내 눈길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앞으로 이 작가의 책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모두 살 것이라는 코멘트. 저자의 이력을 살펴보니, <시와 산책>이 첫 단행본인 것 같았지만 잠깐 펼쳐서 읽어보고는 알아챘다. 이 책은 읽어야만 하는 책이라는 걸.




"같이 걸어요."
 
 모든 시작이 이런 말이면 어떨까요. 같이 걷자는 말. 제 마음은 단번에 기울 것입니다.





 시, 그리고 산책이라니. 제가 가장 사랑해마지 않는 단어들이 아닌가. 

 




 시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 틈틈히 읽어줘야 한다. 그리고 <시와 산책>은 한 권의 시 같았다. 작고 얇은 이 책은 서너장의 꼭지들로 구성되어 있고, 각 꼭지마다 시구가 꼭 하나씩 들어있다. 그때마다 보석같은 시를 발견하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나는 지금은 절판된 <세계 여성 시인선 : 슬픔에게 언어를 주자>를 중고서점에서 바로 주문해버렸다.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참 오묘해서 한 두번 맞닦뜨리는 것도 아닌데 매번 지난 여름도 이렇게 더웠나, 내가 원래 가을을 이렇게 타는 사람이었나, 작년 겨울엔 뭘 입었지 고민에 빠지게 된다. 올해도 처음처럼 가을을 타는 당신과 나를 위하여, 이 책이 이렇게 준비되어 있다. 게다가, 나는 지금 가을만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이 더욱 필요했다. 산책의 즐거움에 막 눈뜬 사람으로서, 다음의 구절을 보면 내 마음을 쏙 베껴놨다고 감명을 받고 마는 것이다. 가졌던 꿈이나 사랑을 두고 돌아섰던 때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그 결심하게 되는 지점이라는 것이 언제나 운명처럼 찾아오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쓸모도 정처도 없이 걷는다 해도, 산책에는 끝이 있기 마련이다. 길은 계속 이어지더라도, 그만 멈추고 돌아가야겠다고 결심하게 되는 지점이 반드시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일어나 사랑이나 꿈을 두고 그런 지점을 느끼듯이.






 요즘은 필사에 꽂혔다. 책을 사는 것보다 책에서 내 마음으로 쏟아져나온 구절을 어디 흘려보내지 않게 잘 기록하고 보관해놓는 게 더 확실한 소유의 방법이라는 걸 깨닫고 있다. 그렇게 꼭 붙들고 싶은 책을 11월의 첫 날 읽을 수 있어 행복했다. 예전 출판사 난다에서 나온 <읽어본다> 시리즈 이후로 모조리 읽어보고 싶은 시리즈를 오랜만에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런 기획이 나의 내일을 더 기대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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