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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Jul 08. 2021

목소리가 작은 아이


전 직장을 다닐 때 목소리가 작다는 지적은 여러 차례 들었지만, 어느날 카페에 들어가서 정말로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주문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실은 내 말을 누군가에게 전달할 만한 힘도 없으며, 내게는 그럴 만한 가치있는 목소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는 친밀한 사람들 곁에 있지 않는 이상 늘 말수가 없는 아이어서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오해도 여러 차례 샀는데, 심지어는 교장선생님이나 아빠 동료같은 어른들을 마주쳐도 인사를 할 줄 몰랐다. 내가, 정확히는 '나 따위'가 인사하면 사람들이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고, 직장에 들어와서 지적을 몇 번이나 받은 뒤에야 이 버릇은 고쳤다.




지금도 목소리가 때에 따라서 심하게 작아지는 문제는 아직 극복하지 못해서 여전히 주변 사람들을 화나게도 답답하게도 만드는데, 이건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복합적인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내 말을 전달할 힘이 없는 건 둘째치고, 내게 자신감이 있으면 사람들이 싫어할 거라는 이상한 생각에, 스스로를 심하게 아래로 낮추어서 아예 사람들 눈에 띄지 않으려는 행동 기제가 나도 모르게 작동한다.




이것도 인사와 비슷한 문제이다. 나는 특별히 못난 것도 잘난 것도 없는 평범한 인간 중 하나라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한 것 같다. 내 이야기가 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이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하다. 늘 작업하려고 애쓰지만 진척이 잘 되지 않는 소설 쓰는 문제도 비슷하다.




유년시절 내가 날 드러낼수록, 내가 나 자신으로서 존재할수록 어른들, 특히 부모님으로부터 부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은 것도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사람들과 거리를 아주 많이 둬서 친밀한 관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실망, 부딪힘, 다툼, 마음의 상처 등등을 피해가려고 하는 내게 친구가 편지를 써준 적이 있다. 너 자신을 더 열어보였을 때, 사람들은 아름다운 것을 발견할 것이라고.




반사적으로 벽을 치고 뒤로 물러나는 성격은 내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꼭 문제라고 할 수도 없지만,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이 생겼기 때문에 고민으로 떠올랐다. 안전함 속에 머물러 있기보다 더 뻗어나가기, 내가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의 폭을 최대한 넓혀보는 것이 요즘 목표로 삼는 과제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고 싶은데, 이걸 번번히 잊고 가장 안전하고 편한 은신처로 숨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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