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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27. 2021

내가 널 얼만큼 좋아하냐면


살고 싶어졌을 만큼. 내 세계가 180도 뒤집혔어. 내 고질병인 판단이 네 앞에서는 멈출 만큼. 나는 촘촘한 계획을 먼 미래까지 세워야만 직성이 풀리는데, 의심도 걱정도 많아서 뭐든 시작하는 게 어려운 사람인데, 설령 네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먼 미래의 내가 너 때문에 마음 상하더라도, 나는 다 괜찮아. 그러니까, 내가 널 좋아한다는 말은 현재 내 감정이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는 거야.




드라마 <너는 나의 봄>에서 이런 말이 나오더라. 너랑 함께 았기 위해서 코뿔소에 쿵 받히고 떨어지고, 그거 다 다시 할 수 있다고. 보면서 나도 생각했어. 나도 처음부터 다 다시 할 수 있다고. 이 모든 것에 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기도하던 때가, 나도 내가 싫어서 내 인생을 내버리듯 도망쳐버렸을 때가 있는데, 나도 처음부터 다 다시 할 수 있어. 너와 같이 있는 시간을 위해서라면.




사랑은 표현하기 전까지는 사랑이 아니라고 믿었었어. 말과 행동으로 전해지지 않으면 알 수가 없고, 그것도 상대방이 원하는 정확히 그 방식, 그 속도대로 전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런데 말하지 않아도, 표현하려고 하는 게 아닌데도 선명하게 보이는 네 마음 때문에 나도 겁이 없어졌나봐.




실은 한용운 시인의 시처럼, 시작하면서부터 끝을 생각하는 나는 그런 네 마음을 뻔히 보면서도 내 마음 한 자락 보여주기는 싫었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고 싶기도, 네가 지금 생각하는 내가 실제 나보다는 훨씬 괜찮은 사람인 것 같은데 실망할까봐 두렵기도, 너의 눈으로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고 네 시작의 이유는 뭔지 알 수가 없어서 망설임이 많았어. 모든 감정이 그렇듯 지금의 마음도 계속 흘러가면서 변할텐데, 너와 내 마음은 어떻게 될까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어렵고.




그래도 나는 모든 것을 믿는 사람이고 싶어. 나의 내면에 그런 힘이 있다고 믿고.




눈이 마주치면 심장이 철렁하고, 시간이 멈춘 것만 같아서, 내 다른 모든 시간이 그 시간 위주로만 빙빙 돌아가는데 너는 처음부터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두 듣고 싶어. 나도 다 말해줄 수 있어. 내가 좋아한다는 건, 그 사람의 세계가 모조리 궁금하다는 뜻이라 속속들이 알아야겠거든. 그런데 남들도 나와 똑같은 마음은 아니겠지. 무엇을 가장 원하는지, 어떻게 해줄 때 가장 행복한지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잘해졸게. 이제 혼자 안전지대에 숨어서 기다리기만 하지 않겠다는 말이야. 마음 다치고 애태울 일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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