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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Oct 09. 2021

비 오는 휴일 아침 달리기는 즐거워

 아침부터 비 소식이 있어서 조금 더 자고 싶은 마음을 참고 일찍 집을 나섰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연차 내기를 너무 잘한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어제 6시부터 졸리다가 8시부터 잤는데, 오늘 5시에 일어났다. 장장 9시간을 내리 잔 건데, 엄청 많이 잔 느낌은 아니고 머리가 조금 맑아진 느낌. 평일 내내 긴장해있다가―그렇다고 해도 이번주는 겨우 3일 일하긴 했지만, 5일같은 3일이었다― 나름 길게 쉬게 되니 마음이 풀어진 것 같다.




 공원을 들어서기도 전부터 미스트처럼 비가 내렸다. 찝찝하기도 했고 이러다가 운동화가 다 젖으면 어떡하나 고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비는 계속 아주 조금씩만 떨어지다가 내가 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 점점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지금은 빗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아침 일기를 쓰는 중.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운 하루의 시작이다.




 아침 달리기는 비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포기하기가 어렵다. 하루 일과를 끝마치고, 보강 운동을 충분히 하고 시작하는 저녁 달리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일기를 쓰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비슷한 효과랄까. 상쾌하게 머릿속이 정리되고, 몸과 마음을 실컷 스트레칭해주는 느낌. 아침의 공원도 저녁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오늘 달리기를 하며 정리된 생각이 있다. 바로, 내가 늘 생각하던 사랑은 사랑하기로 결심하기로 한 것을 의미한다고. 영혼과 마음이 속절없이 모두 이끌리는 것, 눈이 마주치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네가 어디에 있든 내 안에 나침반이 있어 너만 쫓는 것도 사랑이겠지만, 나는 온 마음을 쏟아서, 내 정성을 들여서 너를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어, 라고 할 때 비로소 나는 사랑에 빠진 거라고. 그동안 내가 애정 관계에서 겪던 어려움은 내 마음을 잔뜩 내 손 안에 움켜쥐고 조금도 나눠주지 않으려는 내 이기적인 심성에서 비롯된 것 같다. 변명을 좀 하자면, 함박눈처럼 쏟아져내리는 애정을 나도 받아들여본 적이 없어서, 사랑을 충분히 주고받는 관계보다 마음 졸이고 애 태우고 괴로워하는 게 더 사랑처럼 느껴졌어. 





 그러니까, 'Love is not just a feeling'이라고 늘 생각했지만, 사랑을 하는 상태로 들어서기까지는 어떤 마음의 결단같은 게 필요했고, 나는 그걸 한번도 해볼 요량이 없었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렇다고 쏟아져내리는 마음을 막을 수는 없으니, 그 마음은 누군가에게 제대로 퍼부어진 적도 없는 채로 어딘가로 흘러가곤 했겠지. 하지만 네가 조금씩만 흘러나오는 애정 탓에 지치고 힘들어서 단념할까봐 나는 그게 제일 무서워. 그래서 용기를 내서 안 해봤던 일을 하려는 거야. 내게 너무 편하고 익숙한, 내 마음은 단단히 봉해놓고 내게 주는 애정만 쏙쏙 가로채던 이 세계에서 사랑을 실제로 주고받는 일이 일어나는 무섭고 이상한 미지의 세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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