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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은 Aug 18. 2020

소설 <음복>을 읽고

남성들의 눈치없을 수 있는 권리에 대하여

 수많은 추천을 받고 읽기 시작했다. <젊은작가 수상집 2020>에 수록된 설까지 읽고 나서야, 이 작품의 진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직 안 읽은 분들은 꼭 오은교 작가님의 해설을 함께 보시기를 추천한다.




 처음, <음복>이 하도 좋다고 해서 서점에서 잠시 훑어봤다. 읽을까 말까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에는 눈에 들어오는 책이 있으면 읽곤 했는데 요즘에는 이 책이 어떤 값진 깨달음을 내게 안겨줄 거라는 확신이 있지 않으면 망설이게 되고, 읽기를 시작하더라도 완독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책 앞부분을 천천히 읽던 나는, 고모가 '나'의 남편을 싫어하는지 눈치를 못 챘고, 그런 나 자신에게 충격을 받았다. 최근 신입사원이 들어오면서 나도 그 못지 않게 꽤 눈치가 없는 스타일이란 걸 다시금 깨달았으므로 눈치를 지금이라도 기르기 위해서라도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꽤 실용적인 이유로 읽기를 선택한 것이다.





 남성이 수행하지 않는 온갖 감정노동과 자잘한 가사노동을 수행하는 일을 여성에서 다른 여성의 어깨에 지워진다. 직장 일을 언급할 필요도 없이, 집에서도 엄마가 도맡아하는 일은 아빠를 거치지 않고 나에게 고스란히 되물림된다. 엄마가 하던 일을 나는 엇비슷하게 따라하는 반면, 아빠가 할 때는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수행하여 아주 간단하게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을 목격한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음복>에서는 더욱 노골적으로 이 현상을 보여준다. '남편'의 속 편한 인생살이를 위한 오래된 거짓말이며, 가족모임 이후 며느리에게만 따로 전화해서 '남편'에게만은 함구해줄 것을 요청하는 시어머니. 무엇보다 엉성한 거짓말에 쉽게 속아넘어가는 '남편'이 다른 세세한 인생의 면모에서 '나'와 얼마나 다를 수밖에 없을지 상상이 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소설 뒷편에서, 이러한 '남편'이랑 사는 것이 편하기만 했을지, '나'에게 온갖 고통과 소외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았을지 조금 궁금했었다. 실제로는 그런 고통을 받는 '나'들이 수없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성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온갖 가사·양육·감정노동 등을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삶을 스스로 영위할 수 있는 기초적인 능력을 상실하는 것은 남성들이라고 나는 늘 생각한다. 그와 동시에 다큐멘터리 <B급 며느리>에서 김진영 씨가 말한 것과 같이 성인 여럿 중 특정 성에만 그 모든 노동을 수행할 경우에 갈등과 고통이 빚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다음에는 이 단편소설과 더불어 추천이 많은 <가원>과 <손>을 읽고 싶다. 강화길 작가님이 장편소설을 엮을 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도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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