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2
2024년 8월 15일 목요일
김 군✐
귀국을 이틀 앞두자 마음이 급해졌다. 아침부터 누가 깨우지도 않았는데 눈이 번쩍 떠졌다. 오늘은 브리즈번 여행의 백미이자 필수 코스인 ‘론파인 코알라 생츄어리’에 가는 날이다. 캥거루와 코알라뿐만 아니라 호주에 자생하는 수많은 동물들을 원 없이 볼 수 있는 곳으로, 코알라를 안아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었지만 올해 7월 1일 부로 이곳에서의 코알라 안기도 금지되었다고 한다. 코알라 안기를 위해 오픈런은 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근처 카페에서 기본에 매우 충실한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기분 좋게 해결하고 여유롭게 론파인행 버스에 올라탔다. 40여분 쯤 꼬불한 산길을 달려 입구에 도착하자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설렜다. 이슬비를 뿌리던 구름도 걷혀 해가 맑게 비치기 시작했다.
초입부터 화려하고 신기한 앵무새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길에는 커다란 도마뱀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휘둥그레진 눈으로 좀 더 걸어 들어가자 유칼립투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회색 털뭉치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무에 매달려서 숙면 중인 아이들이 반, 조그만 입으로 야금야금 나뭇잎을 먹고 있는 아이들이 반이었는데 정말이지 평화롭고 무해했다. 보송보송한 털에서는 햇볕에 바삭하게 잘 말린 고소한 베개 냄새가 날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름도 어쩜 코알라… 이름까지 귀여워 보이면 끝이라던데 난 이미 이 동글동글 맹숭맹숭 따끈나른 솜덩어리들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하지만 론파인까지 왔는데 마냥 코알라에게 영혼을 점령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애써 정신을 차리고 이번엔 캥거루가 자유롭게 뛰어논다는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드넓은 잔디밭에 캥거루와 사람들이 자유분방하게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비치몬트에서 마주쳤던 야생 캥거루는 먼발치에서 우리를 보고도 후다닥 도망갔는데 사람 손을 많이 탄 이곳의 캥거루들은 오히려 먼저 다가오기도 하고 쓰다듬는 손길에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생김새는 울끈 불끈 이 세계 최강 근육질 핵주먹 파이터처럼 생겨서는 하는 짓은 흡사 사람 좋아하는 옆집 온순한 강아지였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바닥에 누워있는 아기 캥거루 한 마리를 몇 번이고 쓰다듬어 주다가, 타고난 야생의 면모를 모두 잃어버리고 인간에게 길들여지다 못해 최소한의 본능조차 전부 소거되어버린 캥거루들에게 일견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딩고, 웜뱃, 악어, 테즈매니아, 오리너구리와도 짧은 눈 맞춤을 하고 마지막으로 코알라를 한번 더 눈과 마음에 담고는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폰으로 열심히 찍은 동물 사진들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자연과 인간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호주의 조화로움에 다시금 경외심이 들었다. 이 귀엽고 악의 없는 친구들과 오래오래 같은 별에서 살고 싶다는 바람과 동시에 인간이란 그저 다른 수많은 동식물들과 함께 지구 한편에서 살아가고 있는 하나의 종에 불과할 뿐이라는 당연하고 단순한 진리를 겸허하게 되새기게 되었다.
저녁까지 먹고 모든 일정을 마무리한 뒤 숙소로 돌아와 잘 준비를 하려는데 홍박사가 시간이 아깝다며 밤 산책을 제안했고 이은이는 자긴 피곤하다며 침대로 들어갔다. 어느새 다 커서는 2주씩이나 휴양지가 아닌 여행지로의 동행을 함께 해 준, 게다가 자기는 이만 잘 테니 엄마 아빠는 나가서 놀고 오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9세 아이가 웃기고도 대견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브리즈번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술이나 한 잔 하러 갈까 하다가 내일(=마지막 날..!)의 컨디션을 위해 알코올은 자제하고 대신 브리즈번 강에서 시티캣을 타기로 했다. 배는 상쾌한 밤공기를 가로질러 강 위를 부드럽게 달렸다. 배에서 잠시 내린 우리는 강가에 서서 도시의 불빛들이 캄캄한 브리즈번 강물 속으로 녹아 번지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조금 추웠지만 그래도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돌아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우리는 언제나 사라질 것에 대해 강렬한 아름다움을 느끼니까. 사라지지 않고 지겹도록 계속될, 곧 돌아가서 마주할 일상 속에서도 이처럼 강렬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면, 그런 내가 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마음을 안고 밤산책을 마무리했다.
이제 여행도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홍박사✐
호주에 왔다면 꼭 만나야 할 것들이 있다. 아니, 호주에 이들을 보러 온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이다. 바로 코알라와 캥거루. 전 세계에서 이 땅에만 존재하기에 더욱 신비하게 느껴지는 존재들이다. 비치몬드의 에어비앤비 근처에서 야생 캥거루를 처음 목격했을 때 동물을 보고 그렇게 열렬히 환호하긴 처음이었다.(물론 놀라지 않게 속으로만) 다만 야생의 캥거루는 사람의 인기척만 있으면 저 멀리 도망가버리고, 코알라를 볼 수 있다는 국립공원의 트레일을 걷고 또 걸었지만 그 흔적조차 볼 수 없었다. 최대한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건네고 싶었다.
오늘은 드디어 그 아쉬움을 만회할 시간이다. 야생은 아니지만 그들을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론파인 코알라 생츄어리를 방문하는 날이다. 브리즈번 시내에서 버스로 고불고불 길을 40분간 달리는 동안 오늘따라 코알라들이 다 숨어버렸으면 어쩌지, 캥거루들이 역시 금세 도망가버리면 어쩌지 하는 괜한 걱정이 들었다. 그나저나 생츄어리? 단어가 낯설어 찾아보니 피난처. 안식처란 뜻이란다. 동물원은 동물을 우리에 가두고 그들을 구경하러 가는 느낌이 강하다면 안식처라고 하니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에 조심스레 다가가 양해를 구하고 관찰하는 마음이 컸다. 자연스레 그들을 아껴줘야겠다는 마음까지 생긴다. 단어 하나로부터 관점과 비전이 달라질 수 있다니. 실제로도 자연 친화적으로 조성된 공간이었고 코알라를 위해 연구도 아낌없이 하는 곳이란다.
버스 안에서의 걱정은 기우였다. 입장하자마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높은 옥타브의 밝은 소리처럼 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입구부터 바로 눈앞에 등장한 코알라는 신이 귀여움에 귀여움을 마구 섞어 만든 존재처럼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유칼립투스 잎만 먹고 그 먹이 때문에 취해 잠들고 다시 일어나서 먹기를 반복하는 코알라의 삶. 웃으며 잠들어있는 표정을 무심코 쳐다보고 있으니 표정을 오롯이 따라 해보게 된다. 이렇게 편한 표정을 내 얼굴거죽에 씌운 지 얼마나 되었는가. 인간의 삶에 비해 코알라의 하루는 얼마나 평온하고 심플한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세상은 필요 이상으로 복잡해지고 있으며 우리 모두가 지나치게 일을 열심히 하며 산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평일에 대화할 시간도 없는 우리 부부의 맞벌이 삶을 잠시 떠올리니 아찔해졌다. 이렇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무엇을 위해서. 인류여, 우리 가끔은 코알라가 됩시다. 잠시라도 코알라가 되고 싶다는 헛된 바람에 땅바닥에 떨어진 유칼립투스 잎을 짓이겨 콧구멍에 꽂았다. 후후 하하. 코알라.. 가.. 된… 다… 불안에 떨고 바쁨에 치달릴 때 코알라를 생각하면 마음이 한껏 누그러질 것 같아 마음속에 꼭꼭 담아본다. 코알라를 집에 모셔갈 순 없지만 코알라 인형은 데려갈 수 있다. 호주만 다녀오면 조그마한 코알라 인형을 선물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도 역시나 코알라 인형을 사고 말았다) 코알라 외에도 가까이에서 캥거루에게 먹이를 주며 만져볼 수도 있었고 오리너구리에 웜뱃까지 볼 수 있었다. 전날 비가 와서 모두 꼬질꼬질한 모습이었지만 그마저도 사랑스러운 녀석들. 오늘이 바로 호주에서의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날이었고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을 다시 둘러보고 안식처에서 퇴장할 수 있었다. 잘 지내 얘들아, 우리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건강하고 씩씩하게 살아가렴! 형이 응원할게!
오후 늦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와 빠른 요기를 하고 숙소 근처에 있는 모스 그레이브 수영장으로 향했다. 평소에 수영을 취미로 하는데 최근에는 아이를 끌어들여 주말에 집 근처 수영장에 함께 가곤 한다. 아이도 처음엔 물을 무서워했는데 나름대로 개헤엄을 마스터하더니 잠수에 배영까지 꽤 즐기기 시작했다. 수영장행은 우리 둘의 강력한 요구로 성사되었고 비로소 오늘 가게 된 것이다. 호주는 사계절 따뜻한 날씨 덕분에 야외 수영장이 많고 공공으로 운영되는 곳들이 많아 합리적인 가격으로 수영을 즐길 수 있다. 게다가 25m가 아닌 50m 레인 수영장이 즐비하다. 올림픽에서 수영 금메달을 휩쓰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도착하니 김 군은 ‘스펙테이터’로 요금을 조금만 지불하면 함께 입장할 수 있었다. 노을 지는 노랗고 붉은 하늘 아래에서 우리는 수영을, 김 군은 책을 읽었다. 바보처럼 물놀이를 하는 우리 때문인지 나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인지 김 군의 표정이 오래간만에 편해 보였다.
수영을 한지는 10년이 되었는데 처음 그 매력에 빠진 건 물속의 고요함 때문이었다. 아무도 방해하지 않고 세상으로부터 단절된 평화로운 그곳에서 왠지 모를 위안을 많이 얻었던 것 같다. 게다가 내가 움직인 만큼만 나아가고 그 결과가 나오는 솔직함과 홀로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점은 수영의 세계에 더 빠져들게 했고 오랜 취미이자 습관이 되었다.(러닝도 수영과 비슷한 매력이 있어 매력을 느꼈었다) 언제고 호주의 야외수영장에서 헤엄을 쳐보는 것이 꿈이었는데 바로 오늘 이루는 날이었다. 그러고 보니 코알라에 야외수영장까지 작고 소중한 내 버킷리스트를 하루에 2개나 이루다니, 오늘이 바로 호주 여행의 클라이맥스가 아닌가 싶었다. 언젠가 다시 호주에 오게 된다면 수영장 투어를 해보고 싶다. 그날이 오길 간절히 기도하며 좋은 것을 꽉꽉 채워 보낼 수 있었던 소중한 오늘에, 그 기회를 선사해 준 호주란 나라에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이은✐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났다. TV도 못 보고 버스 정류장에 갔다. 버스는 엄청 늦게 왔다. 버스에서 동물원까지 가는데 시간이 엄청 걸렸다. 일단 동물원에서 Parrot을 봤다. (왕관 앵무새와 검은 왕관 앵무새 & 무지개 앵무새 등등 독수리도 봤다) 그다음엔 오리너구리를 보러 갔다. 오리너구리는 사람들이 오자 (물론 나, 엄마, 아빠까지 포함하여) 빙글빙글 돌았다. 그리고 우리는 코알라를 보러 갔다. 코알라는 정말 귀여웠다. 그리고 우린 캥거루도 보러 갔다. 가는 도중에 딩고도 보고 늑대거북도 보고 악어도 보고 화식조&에뮤까지 봤다. 그리고 캥거루한테 가서 캥거루와 놀아주었다. 그리고 이름도 지었다. (= 럭키)
⛳︎ 오늘의 일정
숙소 → 커피 헤드 컴퍼니 (Coffee Head Co.) → 론파인 생츄어리 (Lone Pine Koala Sanctuary) → 무스그레이브스 수영장 (Musgrave Park Swim Centre) → 웨스트엔드 베트남 식당 (Westend Vientnamese Foods) → 브리즈번 강 & 시티캣 → 숙소
◇ 커피 헤드 컴퍼니 (Coffee Head Co.)
조용한 주택가 안에 위치한 작은 카페. 작은 규모지만 카페 내부와 야외에 자리가 알차게 마련되어 있다. 커피도 당연히 훌륭하지만(우스갯소리로 호주는 스타벅스만 빼고 모든 카페의 커피가 맛있다고..) 어떠한 기교도 부리지 않고 기본에 매우 충실한 빵맛이 인상적이다. 호주의 카페들은 대체로 일찍 문을 닫는 편인데 이곳은 밤 12시까지 운영한다고 하니 저녁 무렵 따뜻한 커피가 생각날 때 찾으면 좋을 것 같다.
◇ 론파인 코알라 생츄어리 (Lone Pine Koala Sanctuary)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에서 가장 큰 코알라 보호구역. 동물원은 관광을 목적으로 타국에서 들여온 동물을 우리 안에 가두고 키우는 곳이라면, 생츄어리는 현지에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자연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동물들을 수명이 다할 때까지 보호하는 곳을 일컫는다고 한다. 론파인 코알라 생츄어리 역시 동물 보호구역으로서 운영되는 곳으로, 호주의 보호가 필요한 동물들(특히 코알라)이 자유로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 다양한 동물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들이 마련되어 있으니 미리 스케줄 표를 참고하여 움직이는 것을 추천하고, 브리즈번 시내에서 생츄어리까지 가는 버스 노선이 많지 않아 이 역시 미리 시간표를 확인하여 이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 무스그레이브 수영장 (Musgrave Park Swim Centre)
새벽부터 개장하는 브리즈번의 공공 야외 수영장. 킥판, 오리발 등 수영 도구를 무료로 대여 가능하고 성인용 레인과 아동용 풀이 따로 나뉘어 있다.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 시설이 매우 쾌적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야외 수영을 즐길 수 있어 개인적으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부터 단체로 훈련을 하러 온 학생들까지 다양한 풍경들을 만나 볼 수 있다. 브리즈번의 날씨를 제대로 즐기면서 수영할 수 있는 곳.
◇ 웨스트엔드 베트남 식당 (Westend Vientnamese Foods)
엄청나게 다양한 메뉴와, 어느 것을 시켜도 기본 이상의 맛을 선사하는 웨스트엔드의 베트남 식당. 쌀국수만 해도 종류가 대여섯 가지는 되고 밥, 고기, 사이드 디시 등 모두의 입맛을 충족시킬 수 있는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다. 매일 샌드위치만 먹다가 뜨끈한 쌀국수 국물이 당길 때 찾으면 매우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