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 앞에 서서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뚱뚱한 비둘기 한 마리가 사람처럼 횡단보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 신호등 보는 법은 모르는지 빨간불인데도 8차선 도로를 무단횡단 하고 있다. 몇몇 운전자가 배려심있게도 차의 속도를 늦추고 "빵~" 하고 클랙슨을 울려주었다. 1차 경고, 2차 경고에도 불구하고 이 날개 달린 보행자는 경적 따위는 아랑곳없이 뒤뚱뒤뚱 제 길을 갈 뿐이다.
"허~ 저 놈 봐라, 용감한 거야 아니면 무식한 거야 " 며 웃어넘기려는 순간, 그만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다. 이 상황을 모르고 질주하던 택시 한 대가 미쳐 비둘기를 발견하지 못한 채 그만 추돌해 버린 것이다. 뒤따르던 후속차량들이 도로 위에 쓰러진 몸을 밞고 지나가는 바람에 그만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한 생명이 사라지는 시간은 겨우 빨간불과 파란불 사이의 찰나였다. 결코 유쾌하다고 할 수 없는 화면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 오버랩되면서 '하필이면 왜?'라는 의문 속으로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로드킬이라고 하기에는 당시 비둘기의 모습이 너무 태연자약했다. 날짐승이 위기의 순간에도 날기를 포기하고 죽음을 맞았으니 혹시 권태를 느낀 나머지 자살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자살이라고 하기에는 그 동기가 석연치 않다.
아서라. 내가 신이 아닌 바에야 어찌 한 생명체에게 닥친 죽음의 원인을 알 수 있단 말인가. 굳이 이유를 찾기보다는 그 주검이 내 앞에 놓였던 사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헤아려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조류는 애초 태어나기를 자유로운 노마드로 살아야 하는 종이다. 그러나 더 이상 비행하는 삶을 버리고 인간의 땅에 두발로 정주하기 시작한 새. 만약 그 비둘기에게 죄가 있다면 억울한 누명을 주장하는 빠삐용에게 내린 하나님의 판결에 적용된 죄목과 같지 않을까? 자신의 인생을 낭비한 죄!
한 생명체의 죽음을 왜곡하거나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쩌면 그는 죽어가면서 내게 일종의 다잉 메시지를 남겼을 수도 있다. '나를 죽인 범인은 바로 X' 처럼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다잉 메시지가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보여주며 '나를 죽인 책임은 결국 나'라는 생생한 메시지 말이다.
횡단보도라는 안전지대에 있으면 인심이라고 착각한 그 새와 지금까지 구축해온 알량한 삶에 안주하려는 나는 과연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동안 달려왔으니 이제 설렁설렁 걸어가도 돼", "이제 나이도 있으니 좀 쉬어가렴" 라며 한때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들은 내게 늘 속삭여왔다.
하지만 세상은 무한 질주하는 왕복 8차선의 도로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횡단보도라는 것도 파란불 일 때에만 보호받을 수 있다. 신호가 바뀐지도 모르고 인간을 흉내내어 여유자적하던 비둘기를 향한 클랙슨 소리는 어쩌면 변화를 거부하는 나태한 나에 대한 경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경고마저 무시한채 허망하게 죽은 비둘기가 전하려던 다잉 메시지는 바로 이런 게 아닐는지
"조심해! 너도 나처럼 한방에 훅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