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새해 말씀
2019년 12월 31일 밤.
아내 파랑과 처음으로 송구영신 예배를 드렸다. 연애, 신혼 때는 게으름이 앞서서 못 갔고 아들 탄생 후에는 돌보느라 못 갔다. 이번에는 마침 장인 장모님이 방문해주신 덕분에 아이를 재운 뒤 편안하게 다녀왔다. 오랜만에 둘이 나서는 밤거리 공기는 상쾌했다. 괜히 손이라도 더 잡고 싶을 만큼.
연말을 맞이하는 색다른 곳 호주는 조금 시끌벅적했다. 불꽃놀이와 야밤 파티로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평소 이곳의 조용하고 평화로운 사람들 답지 않게 들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건 그것대로 신선했다. 세상은 상황과 시기에 따라 변하는 게 맞았다.
8시만 넘으면 일찍 잠들던 습관을 겨우 이겨내고 교회에 도착했다. 파랑은 찬양팀으로서 사전 연습 후 찬양을 부르면서 예배에 참여했다. 난 성도석에 앉아서 마음을 가지런히 모았다. 한 해를 되돌아볼 수 있었고, 내년 새해를 떠올리며 정신을 잡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주어진 나만의 시간을 차분히 보냈다. 평소 잘 돌아보지 않는 성격 탓에 지나간 한 해가 새로운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혼자서 끊임없는 생각의 소용돌이를 만들며 정리하는 순간을 이어나갔다.
마지막 순서는 ‘말씀 책갈피 뽑기’였다. 의례 하는 순서인 듯했다. 해본 적이 없어서 그냥 선물 받듯이 나섰다. 고민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별생각 없이 가장 위의 것을 뽑아 들었다. 소리 내어 읽었다.
한 방 맞은 것처럼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주변 사람을 미워하기 때문에 다투는 것인가?’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다투는 것은 왜 인가?’ ‘내가 하는 사랑은 무엇인가?' 등 온갖 생각이 들면서 부끄러움과 당혹감이 몰려왔다.
많이 부족한 ‘나'인 것을 알았지만 ‘사랑’이라는 진심 어린 마음에 대해 이렇게 초라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돌아보면 ‘사랑’이 무조건적으로 그 대상을 판단하지 않고 덮어주고 안아줄 수 있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몰라서 못하고 살았다곤 할 수 없었다. 분명 알고 있었다. 모든 허물을 가려주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한 번도 정면으로 마주하지 못했던 '사랑'을 담은 말씀을 받았다. 새해에 내게 주어진 이유가 있을 테다. 당장 사람이 변하진 않겠지만 간직하겠다. 무엇을 실천하고 지켜나갈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최소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사랑이라는 걸 기억하고자 한다.
모자란 난 감상에 젖어했던 다짐과 달리 하루도 가기 전에 잊어버렸다. 사랑을 잊고 미움을 내보였다. 그래서 다시 남긴다. 잊지 않아 보려고.
새해 첫날, 사랑으로 허물을 가리지 못하고 다툰 남편으로서 반성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