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T>
언제부터 그렇게 독했어?
얼마 전 와이프가 내게 물었다.
[나] ‘응? 무슨 소리야?’
[파랑] ‘언제부터 무엇이든 꾸준히 하는 습관이 생겼냐고~’
[나] ‘아, 나 원래 그렇지 않았나? 하하’
[파랑] ‘뭐래~ 연애시절에는 항상 놀다 놀다 놀다 지쳐서 들어가서 잠자기 바빴다고.’
음... 그렇다면 언제부터 일까? 무언가 매일 꾸준히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어떻게든 시간을 만들어서 해나가게 된 것은. 와이프 이야기대로 결혼을 하게 되면서 삶이 안정을 찾은 뒤부터 일까?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다른 건 몰라도 나름 끈기와 인내를 있다고 평을 받았던 것 같은데... 아니면 군대 시절 운동을 배우고 지금까지 계속해나가면서 몸에 밴 꾸준함일까?
와이프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한 뒤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태어나서 취업을 할 때까지는 단기적인 목표가 있었고 이것을 이루기 위해 정해진 시간과 필요한 노력을 쏟느라 바빴었다. 꾸준히고 뭐고 긴박한 데드라인에 맞춰서 모든 것을 쏟아붓기 급급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도, 수능을 준비하던 시절도, 그리고 취업준비생이던 그때도 그랬다.
그러다가 갑자기 직장생활을 하면서 인생에서 눈 앞의 단기적인 목표가 사라졌다. 그러면서 한 없이 늘어지며 남는 에너지를 쏟을 곳을 찾지 못해 놀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놀던 시절에 와이프를 만나서 즐겁게 연애하고 결혼했다. (정말 행운이다) 결혼 한 뒤가 문제였다. 더 이상 망나니처럼 놀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에너지와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름의 목표와 계획을 세우고 무엇이든 꾸준히 해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금의 호주 육아휴직까지 이어진 몇몇 가지 활동을 꾸준히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매일 1시간 이상 끈기 있게 해가고 있는 일들은 운동, 독서, 글쓰기, 영어공부, 기타 연습 이 정도다. 이러기 위해서는 5~6시간의 개인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나서 두 학생이 자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한다. (깰까 봐 숨도 쉬지 않는다) 부족한 시간은 두 학생이 학교에 갔을 때를 활용한다. 집안일은 최대한 가족과 함께 있을 때 한다.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은 거의 아들과 합체되어 육아&놀이가 진행된다.
아무튼 현재 내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는데 이런 (독한? 이상한?) 성격 탓에 그날 하기로 한 일을 못하면 매우 찝찝하고 그날 하기로 한 일을 다하면 행복하다. 그냥 내가 계획 쟁이라서? 2020 트렌드 코리아에 나오는 업글인간형이라서? 나도 모르게 꾸준히 하는 것에 대한 무언지 모를 성취감에 중독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내 활동이나 느낌들은 오늘 소개하는 GRIT과는 좀 다를 것이다. 내가 이해한 GRIT은 훨씬 그 정도와 수준이 강하다. 그 꾸준함이 일정 이상으로 몸과 마음에 부담이 될 정도로 힘들다. 뭐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시험공부할 때 그냥 한번 읽어보는 것과 외우기 위해 읽어보는 것과의 차이?
운동할 때 워밍업을 위해 10회 하는 것과 마지막 세트에 10회를 힘겹게 하는 것과의 차이?
보고서를 작성할 때 동료들과의 토론 자료를 만드는 것과 상사를 설득하기 위한 자료를 만드는 것과의 차이?
비슷한 활동을 하는 것 같지만 그 노력과 집중의 수준이 매우 다르다. 그 차이에서 놀라운 성과와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만약 내 설명과 예시가 적절했다면 GRIT이라는 경험을 해본 적이 한번 정도는 있을 것이다. 있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잘 알 것이다. 이게 참 모르고는 한 번 할 수 있어도 알고 두 번 하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이 느낌을 알고 필요할 때 다시 해보는 것과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고 필요할 때 해보려는 것과도 매우 큰 차이가 있다.
결국 살면서 어떤 활동, 그게 공부든 일이든 운동이든 무엇이 되었든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를 내려면 이 GRIT이 필요하다. GRIT이라는 게 아주 특별한 개념이 아니고 의식적인 연습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 성공을 만든다는 것인데 이 의식적인 연습은 편안한 수준이 아닌 힘들고 괴로운 수준의 연습을 말한다. 우리가 이미 살면서 알고 있고 체득한 그것이다. 대강 설렁설렁해서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아 그 경험이 이런 식으로 설명될 수 있구나’라고 정리를 해 볼 수 있을 것이고, 아직 경험이 없는 사람은 이 책을 읽으면서 ‘그냥 단순하게 반복하는 것으로는 성과를 낼 수 없는 거구나’라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세상엔 공짜가 없다. 성장하고 성공하려면 그에 맞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굳이 필요 없다면? 그냥 그대로 편안하게 지내는 것도 방법이자 행복일 것이다. 그래도 GRIT이라는 것을 경험한 것과 아닌 것과는 한 번뿐인 인생이 좀 차이가 있을 것 같다. 알고 안 하는 것과 모르고 안 하는 것과의 차이 정도로 말이다.
‘GRIT’ (엔젤라 더크워스) - 2017 완독
말로만 들어온 GRIT 열풍을 직접 읽어 보았다. 사실 정말 새로운 개념은 아니었다. 지난번에 읽었던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 이야기하는 의식적인 연습의 지속이 성공을 만든다는 개념과 일맥상통하였다.
책의 내용은...
1부에서는 GRIT이 무엇인지 다양한 사례와 연구결과를 통해 알려주고,
2부에서는 GRIT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관심/연습/목적/희망 4가지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3부에서는 모두의 관심사인 우리 아이들, 제자들에게 어떻게 GRIT을 알려주고 기르게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사실 개인적으로 GRIT에 관련된 경험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문득 떠올랐다.
하나, 특별한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순간순간 고통스럽지만 그 시기를 버티고 나면 맛볼 수 있는 성취의 기쁨과 만족감. 둘, 살인적인 일정으로 몸은 괴롭지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 참고 끈기 있게 노력하던 시기가 여유롭고 편안했던 시기보다 항상 의미 있는 결과를 보여준 경험. 셋, 뻔하고 쉬운 시험이라도 꾸준히 조금씩 준비를 의식적으로 했을 때와, 만만하게 보고 직전에 몰아서 준비한 뒤 거의 대부분 실수를 했던 기억들. 넷,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편안한 지점/할 수 있을 만한 지점까지만 하는 것보다 한 개만 더, 두 개만 더 했을 때 효과가 있다는 사실과 몰아서 하는 것보다는 꾸준히 조금씩이라도 했을 때 몸이 변한다는 것!
하지만 이런 경험이 있음에도 이를 계속 꾸준히 해 나간다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항상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하게 되는 일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저자가 마지막에 이야기한 것처럼 GRIT이 우리 삶에 전부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은 맞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살면서 이루고, 또 우리 자식들이 그러기 위해서는 GRIT이라는 것은 어떤 방식/의미든지 간에 꼭 알아야 하는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GRIT을 기를 수 있는 환경을 위해, 잘 안되거나 실수하더라도 조금 더 해 볼 수 있는 의식적인 변화를 나부터 시작하고, 이를 아이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