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군대에서 제대를 몇 개월 남기고 여유 시간이 많아졌을 때 내게 매주 한 번씩 이동도서관이 부대로 찾아오는 것은 하나의 큰 기쁨이었다. 많지 않은 종류의 책 중에서 혹시나 빠져있을까 봐 조마조마하며 항상 기다렸던 것은 바로 ‘로마인 이야기’ 다음 권이었다.
그때 ‘시오노 나나미’라는 작가를 만났고 매번 놀라곤 했다. 이렇게 '역사 이야기를 흥미롭고 자신의 관점에서 전달할 수 있구나’라고... 그렇게 군대 시절 마지막을 ‘로마인 이야기’와 보냈다. 아마 마지막 몇 권은 다 읽지 못했던 것 같다. (제대를 했거나, 그 당시 완결이 안되었거나)
사회에 나와서 독서는 가장 우선순위가 낮아졌고 지금까지도 ‘로마인 이야기’ 마지막 몇 권은 읽지 못한 상태이다. 그러다가 이 책을 만났다. ‘십자군 이야기’. 바로 구매해서 읽어 내려갔다. 3권짜리 시리즈였는데 아마 거의 일주일 안에 모두 읽었던 것 같다.
최고였다! ‘로마인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의 그 희열과 감동이 여전했다.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진 작가였다. 남아있는 제한적인 역사적 사실을 가지고 지루하기 쉬운 이야기를 정말 재미있게 전달한다. 이건 정말 보통 열정과 내공이 아니면 어려운 것이다.
워낙 뛰어난 천재들이 이 세상에 많지만 자신이 아는 것을 남에게 즐겁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평생 만나본 선생님, 교수님, 상사님, 선배님 중에서 몇 분에게나 의미 있는 내용을 재미까지 있게 수업이나 조언을 받아 본 적이 있을까?
이 작가도 (세상 모든 게 그렇지만)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고 한다. 불호인 측의 이야기를 살짝 들어보면 이런저런 이유가 많다. 너무 스토리 텔링에 치중하다 보니 역사적 사실에 점프가 많다느니... 등등
난 오히려 작가의 대단한 ‘스토리텔링’ 능력에 점수를 주고 싶다. 과장이나 보탬 없이 지식을 전달하면서 지루하고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보다는 이야기에 살을 붙여가며 흥미롭게 들려주며 전달자의 의도가 기억되는 것이 무조건 낫다는 생각이다.
이 세상 모든 정보와 지식은 ‘객관적’ 일 수 없다고 믿는다. 누군가의 필터와 해석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누군가’가 재미있게 자신의 생각을 덮어서 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받아들이는 자의 필터와 해석이 중요한 것은 다른 중요한 축이다.
하나만 더 이 작가, 이 책에 대해 덧붙이자면 역사적 사실 속에서 우리에게 당연하지만 검증된 교훈을 준다.
여러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작가의 의도된 설명 속에 훌륭한 인물과 변변치 않은 인물이 티가 팍팍 난다.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믿음과 목표, 소신을 가지고 꿋꿋하게 행동하며 결국 족적을 남긴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은 평생 나쁜 짓을 일 삼거나, 누군가를 음해하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다가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너무 익숙한 이야기이고 결과론 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내게는 큰 의미로 다가왔다.
'똑똑하면 소신을 가지고, 범인이면 양심을 가져야 한다.'
어쨌든 취향을 타는 작가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고 내 취향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자기 소신 없이 남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나 ‘로마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다면 한 번쯤은 읽어보자.
시작은 읽기 편한 이 ‘십자군 이야기’를 강력 추천한다.
‘십자군 이야기 1,2,3’ (시오노 나나미) - 2014 완독
로마인 이야기 이후 오랜만에 읽는 시오노 나나미의 책.
역시 그분의 필력, 필체는 재미있다.
파편적인 십자군에 대한 이야기가 주변 환경과 시대상에 대한 지식과 함께 정리가 되었다.
대단한 영웅들도 있었고, 어이없는 인물들(성인 포함)도 있었다.
똑똑하면 소신을 가지고, 범인이면 양심을 가지면 될 듯!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하루라도 쓰지 않으면 허전하고 답답하다. 하얀 바탕에 검은 글자를 채우는 새벽을 좋아한다. 고요하지만 굳센 글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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