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록Joon Sep 13. 2020

내가 더 힘이 세거든, 그래서 참았어

지금 호주는 가을? 겨울?

02/June/2020


이곳에서 처음 맞이하는 6월이다. 작년 7월에 도착했기 때문에 6월은 처음이다. 호주에서 6월이 가장 추운 겨울 날씨라고 들었는데 이곳 선샤인 코스트가 따뜻한 곳이어서 그런지 막 춥거나 그렇진 않다. 한국의 겨울을 30년 넘게 경험해서 그런 것 같다.


한낮에는 여전히 23도 정도이고 햇살이 따갑다. 이곳 사람들은 그 시간에 여전히 물놀이를 즐긴다. 확실히 달라짐을 느끼는 때는 아침과 저녁, 밤이다. 온도가 많이 떨어져서 일교차가 크다. 13도 정도로 한낮과 비교하면 10도 정도 떨어진다. 아침에는 긴 팔, 긴 옷이 필수이고 밤에 잘 때는 두툼한 잠옷과 이불 등이 필요하다.


한국은 완연한 여름이 시작되고 있다고 들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다른 것임을 양쪽에 있어보니 실감이 난다. 4계절을 한 번씩 보내고 나면 어느 정도 할 만함을 느끼는 군대 1년 차처럼 이곳에서의 생활도 한 바퀴 돌고 나면 대충 감을 잡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이곳의 겨울을 모두 겪은 것은 아니지만 정말 이곳은 따뜻하고 지내기 좋은 곳이다. 여전히 반바지, 반팔을 즐겨 입으며 샌들, 통(쪼리)을 신고 다닌다. 양말과 운동화에 발을 집어넣은 지 아주 많이 오래되었다. 이곳의 변화는 4계절을 뚜렷하게 겪으면서 수동적으로 맞는 한국과는 달리 환경은 줄곧 비슷하지만 각자의 리듬대로 변화를 만들어가고 느끼는 것 같다.


나름의 흐름과 패턴을 만들어가고 있는 요즘 문득 우리 아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맘때의 우리 동네






학교에서의 아들


1. 깜짝 놀랄 수 있는 이야기


아빠 엄마로서 아들에게 학교에서 지낸 이야기를 시시콜콜하게 모두 물어보고 듣고 싶지만 우리 아들은 물어보면 잘 대답해 주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하굣길에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조용히 손을 잡고 걸어오면서 기다리다 보면 본인이 먼저 이런저런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한다. 지난주에는 많이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 ‘오늘 어떤 친구가 나를 펀치 해서 선생님한테 말했어’

(나) ‘응?! 오늘이 처음이야? 아들한테만 그러니?’

(아들) ‘다른 친구들한테도 막 그래, 내가 선생님께 말해서 멈추게 했어’

(나) ‘그랬구나... 잘했어! 혹시 같이 때리고 싶은 생각은 안 했어?’

(아들) ‘내가 더 힘이 세거든, 그래서 참았어’


어디서든 남자아이들끼리는 몸으로 놀기 때문에 이런 일에 익숙해져야겠지만 사실 막 적응하는 시기에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은 쉽지 않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다. 그나저나 용기 있게 선생님에게 말하고 함께 힘을 쓰지 않고 참아준 아들이 많이 대견했다.



2.You’re my sunshine


Term 1 시절에 Assembly에서 선보이기로 했던 ‘유 아 마이 선샤인’ 율동 연습. 코로나로 인해 Assembly가 무기한 연기가 되어서 보여줄 기회가 없었다. 이번에는 그래서 아예 영상으로 찍는다는 연락이 왔다. 아침부터 아들을 좀 더 깔끔하게 씻기고 준비를 시켰다. 내 왁스도 발라주며 머리에 힘도 주었다. 자식이 어떤 역할을 하든지 간에 무대에 선다는 것은 부모의 큰 설렘이라는 것을 경험했다.


그날 오후, 잘하고 왔다는 아들. 아직 영상을 받아보진 못했는데 열심히 연습한 아들의 진지한 모습을 빨리 보고 싶다.


학교가 좋은 아들





집에서의 아들


1.

지난주 엄마 생일에 선물한 꽃이 활짝 피었다. 꽃과 풀, 나무들을 좋아하는 아들은 진심으로 감동했다. ‘와~~ 예쁘다’ 이런 감수성을 옆에서 보며, 나도 저 땐 그랬을까 싶었다.



2.

지금 집 1층 바닥은 타일이다. 날씨가 추워져서 아침이나 저녁에 맨발이 닿으면 차갑다. 그래서 장만한 엄마, 아들 토끼 실내화. 남자용은 이런 디자인 따윈 없어서 그냥 안 샀다.



3.

잠자기 전 한글, 영어 책을 읽는 것이 우리의 마지막 일과다. 어느 날은 자신이 좀 붙었는지 좀 어려운 책을 가져다 읽기 시작했다. 난 옆에서 내 책을 읽고 있었는데, 갑자기 읽는 소리가 끊겼다. 눈으로 그림을 보는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이제 잘 때가 되어 불을 끄려고 아들을 쳐다보니 책을 꼭 잡고 잠들어 있었다. 원래 책을 잡으면 잠이 오는 게 당연하긴 한 건데. 하하. 이제 좀 쉬운 책부터 읽어보자!



4.

아들과 나는 과자를 좋아한다. 호주 과자는 이제 1년 동안 시도하다가 포기했다. 죄다 짜고 달고 양이 많고 비싸고 맛이 없다. 오랫동안 한국 과자에 익숙해져서 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요즘엔 한인마트에서 한국 과자를 사다가 먹는다. 아들 간식으로도 한국 과자를 싸주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들도 좋아하는 한국 과자들이 생겼는데 아무래도 내가 좋아하는 과자와 겹칠 때가 많다. (사다 놓는 것이 그것이다 보니) 한 번은 과자를 함께 먹는데...


(아들) ‘아빠~ 반칙!’

(나) ‘엥? 무슨 소리야?’

(아들) ‘두 개씩 먹으면 반칙이지~~’


무의식에 작은 과자를 2개 입에 넣었는데 같이 먹던 아들이 유심히 보고 있었나 보다. 아들~ 과자는 얼마든지 사줄 수 있으니 우리끼리 그러지 말자!



5.

주말에 시간이 많이 나면 아들은 인형극이나 쇼를 준비한다. 이번 주말에도 즐거운 쇼를 열심히 준비해서 엄마 아빠에게 선 보였다. 초대장도 만들어서 주었다. 아들 방에 가보니 인형, 장난감 등이 꽤 그럴듯하게 놓여있었다. 아기자기하고 다양하고 기발한 아들의 쇼를 관람하고 나니 한 가지 상품권을 주었다. 한 번 더 볼 수 있는 상품권이었다. 나중에 쓰면 안 되고 바로 써야 한다고 해서 한 번 더 보게 되었다.


이런 생각과 놀이를 어떻게 하게 된 걸까? 정말 궁금하다.


토끼 실내화 / 자면서 읽기 / 꽃같은 아들





코로나 사태가 많이 풀렸다


정말 오랜만에 바닷가에 세 가족이 놀러 갔다. 놀이터, 모래사장에서 신나게 놀았고 유치원 선생님도 우연히 만나고 왔다. (어색하면서도 반가웠던 아들 ^^;;)


그리고 파랑도 2학기가 끝나고 방학이 되었다. 집으로 초대가 가능해져서 그동안 미루어 두었던 학교 동기 동생들에게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나눔을 실천하는 와이프는 어제도 혼자 지내는 동생에게 국과 반찬을 가져다주면서 눈물을 보이는 그 동생을 보고 더 주지 못해 속상해했고 또 다른 친구, 동생을 집으로 초대해서 보쌈을 한상 차려 주었다.


우리가 덜 가졌던 더 가졌든 간에 많이 돕고 나누고 살자는 말에 많이 동의했다. 돕고 사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마음으로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아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우리의 마음이 이곳처럼 넓어지기를




이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아빠와 엄마의 영향과 무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