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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Sep 19. 2020

도시락 통을 못 열어서 하나도 못 먹었어

사랑받을 줄 아는 아이

23/June/2020


아들이 점점 능구렁이가 되어간다.


엄마의 요리에는 늘 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최고를 남발하고, (심지어 음식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 아빠의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잔소리에 일단 대답은 확실하게 한다. (심지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


아들도 우리 가족 세계에서 사는 법을 터득해가고 있는 것이다. 엄마 아빠에게 사랑받고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친구들과 선생님들께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어느 날은 학교에서 '자동차 장난감’ 선물을 받아왔는데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이러했다. ‘학교에서 내가 만든 책을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읽어줬어, 그리고 선생님 이름을 내가 잘 썼어, 그래서 받은 거야.’ 세세한 속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이런 기회와 챙김을 받은 아들이 멋져 보였다.


친구들과 지내는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즐거움과 행복함이 넘쳤다. 무슨 이야기를 친구들과 학교에서 나누냐고 물어보니...


‘내가 캐터필러에 포이즌이 있어서 캐터폴라라고 했더니 막 웃었어 친구들이’ (영어도 벌써 말장난이 되는구나 부럽다 아들), ‘오늘 친구들이 내 신발을 보고 레인보우라고 하면서 뷰티플이라고 칭찬해 주었어’ (캐주얼 데이에 멋지게 사복을 챙겨 입고 간 날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점심시간에는 친구들과 얼마나 떠들고 노는지 늘 먹을 시간이 부족하다고 했다. 아들 말처럼 친구들이 아들은 가만두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아들이 친구들을 가만두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낯설기만 했던 그곳에서 사랑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득템으로 신난 아들






도시락에 얽힌 이야기들


1.

얼마 전부터 아들이 도시락을 매번 남겨오고 있었다. 아침마다 힘들게 싸주던 파랑이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오늘도 남겨오면 내일부터는 샌드위치 싸줄 거야’


그동안 그나마 밥 종류를 싸줘서 먹고 왔는데, 어차피 남겨오는 거 힘들게 준비하지 않겠다고 설명해 주었다. 아들은 그날 싸 준 '토마토 펜네 파스타’를 깨끗하게 비워왔다. 그리고 다음날도 같은 메뉴를 주문했고 또 다 먹고 왔다. 삼 일째 아침에도 같은 메뉴를 주문하자...


(파랑) '아들~ 김밥하고 유부초밥도 재료 준비되어 있는 거 알지?’

(아들) '응 알아~’

(파랑) '계속 똑같은 거 먹어도 괜찮아?’

(아들) '똑같은 거 나도 알아~’

(파랑) '파스타 소스라도 크림으로 바꿔줄까?’

(아들) '아니~ 그 소스~’


옆에서 지켜보기엔 뭔가 누가 먼저 포기하나 고집 싸움을 보는 것 같았다.



2.

항상 점심시간이 부족하다는 아들에게 이유를 들어보니 친한 친구가 계속 말을 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법을 알려주었다. 나 이거 먹어야 하니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 먹으라고 도시락을 비워온 날 물어봤다, 어떻게 했냐고. ‘응 웨이러미닛이라고 하고 먹었어~’


정말인지 모르겠으나 그 말을 하고 그 친구도 아들도 조용히 밥만 먹었다고 한다. 신나게 웃고 떠들던 아이들이 아들 말 한마디에 모두 조용해졌다니 믿을 수 없는 노릇이다.



3.

어느 날은 집으로 돌아오면서 엄청 걱정스러운 표정과 말투로 내게 말했다.


‘오늘 도시락 통을 못 열어서 선생님께 부탁하려고 했는데 안 계셔서 하나도 못 먹었어’


헉,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여태 밥을 못 먹었을 아들이 걱정돼서 안 배고프냐고 물어보니 괜찮다고 했다. 뭐라도 먹여야 될 것 같은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는데 거의 집에 도착할 때쯤에 아들이 말했다.


‘장난이었어~ 원래 하나 남겼다는 말이야~’


하나도 못 먹었다는 게 아니고 하나만 남겼다는 게 아들의 장난 포인트였던 것이다. 너무 황당하고 당황스러웠다. 이런 장난을 칠 때가 오다니. @.@ 엄마 아빠가 어느 포인트에 가장 관심이 많은지 잘 알고 있는 아들의 어퍼컷과 같은 농담이었다.


우산 신사 / 축구 동자 / 자전거 모델






또 다른 아들의 명언들


1.

잠자기 전 내가 옛날이야기를 아주 조금씩 감질나게 해주고 있다. 이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더 듣기 위해 잘 준비를 차분하게 하고 자리에 눕는다. 다음날의 기대감을 높이기 위해 절묘한 곳에서 항상 이야기를 마치곤 하는데 어느 날 아들이 말했다.


‘아~아빠 이야기는 항상 스페셜한 데서 끝나는구나~’


ㅋㅋㅋ 한참을 웃었다. TV 드라마 속 화가 날 정도의 매회 절묘한 마지막 장면을 내가 아들에게 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 표현이 긍정적이어서 너무 놀랐다.


 

2.

요즘 파랑은 새로운 준비를 위해 집중 공부를 하고 있다. 때가 때인지라 도서관에 가지 않고 2층 공부방 틀어박혀서 하고 있다. 내가 가끔 1층에서 집안일이나 운동을 할 때는 아들이 2층 놀이방에서 혼자 놀기도 하는데 가끔 아들이 공부하는 엄마에게 가서 말을 걸고 집중력을 흩어놓는 경우가 생긴다. (아이는 아이다) 그럴 때마다 이유를 설명해 주고 그러지 않겠다는 답을 듣지만 곧 제자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파랑에게 들으니 이젠 아들이 이러면서 자기 방에 들어온다고 한다. 

‘(쉬쉬~) 아빠에게 들리면 안 돼~’ ㅋㅋㅋ 한참을 웃었다.






그 외에도 지난주에는 아들에게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밥을 잘 먹어서 모은 칭찬 스티커로 생애 첫 변신로봇 장난감을 득템 했고 거의 4개월 만에 수영 수업을 다시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이라 처음에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한동안 그대로 빠져있기도 했었다) 주말에는 이웃사촌 누나랑 축구도 하고 오랜만에 자전거 산책도 다녀왔다. 어제는 갑자기 떠나게 되신 유치원 선생님께 감사와 작별 인사를 드리고 왔다. (직접 쓴 편지와 함께 직접 ‘그리울 거예요’라는 인사를 했다)


아들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어디에서도 사랑을 받으며 잘 자라고 있다.


이렇게 받은 사랑을 남에게도 많이 나눠주는 사람이면 좋겠다.


늘 하는 말이지만 나부터 좀 그래야겠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 2022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 『아빠 육아 업데이트』를 바로 만나보세요!


수영 전 긴장 / 포즈 잡기 / 멋진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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