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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Nov 05. 2020

몸은 여름인데 마음은 가을

호주의 10월

20/Oct/2020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가 생겼다. 바로 '25’다. 그 이유는 지금 살고 있는 타운하우스의 유닛 넘버이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25’를 보면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부른다. ‘아빠~ 25~’


그만큼 지금 지내는 이 곳, 이 집에 익숙해졌고 사랑하고 있다는 말이다.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지금 지내는 이곳의 정겨움을 오래 즐기고 싶다. 나중에 아들과 서로 웃으며 '25’라는 숫자를 함께 추억할 수 있도록.


이 곳 호주는 하루가 다르게 많이 더워지고 있다. 이젠 여름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한국의 가족들과 연락을 할 때면 그곳의 깊어지는 가을을 느낄 수 있다. 뭔가 어색하면서도 어울리는 기분이다.


꽤 오래 살아온 탓에 10월은 내게 가을이 맞다. 그런데 여기는 햇살이 뜨거운 여름이 맞다. 내 몸은 분명 여름을 느끼는데 마음은 확실하게 가을임을 안다. 이곳에 있는 동안은 이러지 않을까 싶다.


몸은 여름인데 마음은 가을이다.


가을타는 독서 소년 / 여름을 즐기는 수영 소년






아들 학교 이야기



몇 달 전에 찍은 ‘스쿨 포토’가 인쇄되어 돌아왔다. 환하게 웃어달라고 부탁했었던 그날의 사진이다. 이 곳의 강력한 햇살에 까무잡잡하게 타들어 갈 무렵의 아들이 최선을 다해 웃고 있다.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있는 단체 사진을 보니 괜히 뭉클하고 대견하고 기특했다. 정말 잘 나왔네 아들~!


첫 스쿨 포토 / 하굣길 놀이



하교 시간에 선생님께서 ‘1분만~’ 하며 나를 부르셨다. 가슴 ‘철렁’하며 찾아뵈었다. (마냥 좋은 일이 아닐 확률이 높으니 ㅡㅜ) 아들이 친구들과 놀다가 아주 가벼운 손목 상처를 입고 밴드를 붙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같이 놀던 친구도, 아들도 서로 괴롭히거나 기분이 상한 상태는 아니었고 격하게 놀다가 그랬다고 하셨다. 그런 ‘싸움’에 가까운 놀이는 학교에서 하지 않는 것을 알려주었고 아들을 포함해서 모두 이해했다고 하셨다. 


나와 이야기를 마치고 걸어 나오는 아들에게 선생님께서 다시 설명해 주셨다.

(선생님) ‘준~ 이제 그 파이트 놀이는 학교에서 하지 않는 거야~’

(아들) '하지만 그건 OOO친구가 먼저 하자고 해서요.’

(선생님) ‘누가 먼저 하자고 했든지 간에 그 놀이는 학교에서 하지 않아야 해요.’

(아들) ‘(좀 억울한 듯) 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같이 노는 친구 그룹 중 놀이를 주도하는 친구가 서로 ‘태그 놀이’를 하다가 갑자기 ‘이제 파이트 놀이야~’라고 했다고 한다. 그 신호에 맞춰서 다 같이 장난을 좀 격하게 치다가 친구 손에 아들 손목이 긁힌 모양이었다. 


아들이 표정이 억울함이 있기에 칭찬 반 잔소리 반을 섞어 주었다. 선생님 말씀대로 심한 장난은 학교에서 하지 않고, 다른 친구들이 하자고 해도 아들은 참여하지 않고 멈출 수 있다고.


표정이 좀 풀린 아들과 맑은 하늘 아래서 파란 풀을 밟으며 돌아왔다. 그러면 정말 어지간한 기분은 모두 풀린다. 마음을 다스리기에 좋다.


금요일에 입는 푸르른 교복



어젠 학교에서 특별한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아빠~ 책을 만든 할아버지가 오셨었어~’ 유명한 그림 동화책의 저자분께서 학교에 초청되셨던 것이다. ‘아빠~ 우리 교실에 작은 도서관을 만든데~’ 아들의 흥분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직접 책을 만들고 있어~’ 곰이 나오는 책을 친구들과 만들고 있다고 한다.


짧은 경험이지만 이 곳 호주 교육에서 ‘책’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 아쉽게도 난 학창 시절 지나가는 말로 ‘책을 많이 읽어라’라는 이야기를 선생님들께 아주 가끔 들었을 뿐이다. 그저 입시와 성적의 늪이었다.


책을 가르치는 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보기 좋다.


가끔 나오는 괜찮은 표정과 포즈






아들 일상 이야기



아들은 지금 다니는 교회에서 무척 잘 지내고 있다. 형님들, 친구들과 지내는 아동부 예배가 즐거운가 보다. 주일 오후에 그동안 찍어주신 아들 사진을 보내주셨는데 사진마다 활짝 웃는 아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역시 아이는 아이들과 놀 때 가장 즐거운가 보다.


과제에 바쁜 파랑이 주말은 휴식을 선언했다. 엄마와 하루 종일 붙어 쉬던 아들은 행복해했다. 토요일 오후가 저물어 갈 무렵. 그날 가려고 했던 ‘신상 놀이터’를 다녀왔다. 이웃사촌분의 추천으로 가게 된 이곳은 또 다른 신세계였다. 새롭게 생기는 주택단지 중심에 멋지게 들어선 곳이었다. 해가 저무는 시간임에도 아직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열심히 놀았다. 체력과 담이 커진 아들은 제법이었다. 집에서 나오기는 싫어하지만 나오면 신나게 노는 아들이다.


집에 더 오래 있는 요즘, 이유는 이 ‘퍼즐 삼매경’ 때문이다. 300개짜리 피스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힘들어해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꺼내서 하나씩 하나씩 맞추더니 가지고 있던 3종류를 모두 맞춰버렸다. 놀이도 모두 시기가 있다고 하더니 이렇게 순식간에 해버릴 줄이야. 다음에는 좀 더 많은 피스를 아들이 직접 디자인을 고르기로 했다. 아쉽게도 혼자 퍼즐을 조용히 맞춰주면 우리가 따로 쉴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늘 옆에 꼭 누군가 붙어서 함께 해야 하는 상황이다 ^^;;


교회에서 / 퍼즐 삼매경



아들이 갑자기 말했다.


(아들) '아빠~ 나 당근 더 먹어야겠어!’

(나) '응? 갑자기 왜? 당근이 좋아졌어?’

(아들) ‘아니~ 작은 게 잘 안 보이네’


하하. 당근 먹으면 눈 좋아진다는 말을 기억하고 하는 말이다. 벌써부터 눈이 안 보일 리는 없지만 말이다. 


멋졌던 신상 놀이터





나를 책으로 만들었다

나만의 첫 이야기

진짜 책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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