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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Dec 05. 2020

더 이상 이런 책은 나오지 말아야 한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경로를 이탈하셨습니다.’


이것 없이 한 발자국도 나설 수 없는 영혼의 파트너 ‘내비게이션’의 멘트에 몸과 마음이 멈춘다. 이미 정해진 길에서 멀어지면 세상이 끝난다고 여기는 나는 서둘러 원래 경로로 다시 진입한다. 그리고 다시 안도하고 평온해진다. 얼마나 편한 일인가? 누군가 검증이 끝난 길을 걱정 없이 따라가는 것 말이다.


이렇게 배우고 자라고 살다 보니 ‘옳은 길’이라고 믿는 ‘원래의 길’ 외에는 보이지도 않았고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밥이 ‘식판 밥’이니 말 다했다. 그 자유로운 식탁에서조차 딱 정해진 공간의 정해진 종류와 양에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편안해진다. ‘정해진 길 따라가기’ 대회가 있다면 내가 우승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내가 살면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내 기준으로 보았을 때 '경로를 이탈한 자’들이 보여주는 놀라움 때문이다.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능력, 나로선 절대 불가능할 창의력, 그리고 새로움을 갈구하고 추구하는 열정까지. 그저 길을 따라 걷는 내게는 이들은 외계인 이상으로 신비로운 생명체다.


남이 정해놓은 아주 편한 길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힘겨운 싸움을 계속한다.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저 어쩌다 있는 돌연변이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그런 이들을 점점 더 많이 만나게 되었다. 내가 정상인지 그들이 정상인지 모를 정도의 비율로.


학교를 중퇴하거나 회사를 퇴사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과 놀라움이 있다. 남들 다하는 것을 혼자 그만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세상에서 제일 편한 게 남들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인데 그것을 거절해야 하는 것이다. 그 흔한 ‘조퇴’도 하면 큰일이라고 믿었던 나에겐 무언가 혼자서 벗어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난 도대체 어쩌다가 이런 생각을 머리와 가슴속에 꽉꽉 채우며 살게 되었을까? 사실 이런 의문조차도 내겐 ‘벗어난 일’이었기에 떠올리지 않았다. 한 발자국도 삐져나가지 않으려고 애쓰며 닦여있는 길을 생각 없이 걸었다.






혼자 살아가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봤다. ‘내 아이도 이 길을 그대로 따라서 살면 되나?’ 그동안 믿고 걸어온 길이 다르게 보였다. 그 길 자체도 너무 별로였고, 그 외 다른 길들이 이제야 흐릿하게 보였다.


아이에게 다른 길을 보여주기 위해앞으로의  길은 달라야 했다. 그래서 육아휴직을 썼고 인생 처음으로 아주 크게 경로를 이탈했다. 그전엔 그렇게 어렵고 무서웠던 결정이 어느 순간 너무 쉬워졌다.


멀리 벗어나 새로운 길을 나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았다. 새로운 길에 서서 내가 살아오던 ‘상식적인  바라보니 깨달음이 있었다. 세상의 중심이라 믿었던  ‘중앙 도로 그저 수많은  하나의 길일 뿐이었다.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하고 그 좁디좁은 길에 눈을 가린 사람들이 미어터져서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그 길의 사람들은 그 길이 전부인 것처럼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나 경쟁했고, 그 길에 잠시 멈춰 서거나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어쩔 줄 몰라 울면서 쓰러져 있었다.






이 책은 남이 정해놓은 원래의 길에서 벗어나 세상의 수많은 길을 탐험하는 작가의 이야기다. 한 번도 하기 힘들다는 퇴사를 4번이나 했고 그 과정에서 남들이 외면하고 살아가는 삶의 고민을 해나간다. 스스로를 정상적이고 일반적이라고 믿는 우리(나를 포함하여)에겐 낯선 이야기다.


오히려 길을 벗어난 주인공을 걱정하며 어서 편한 경로로 돌아와야 할 텐데 할 수도 있겠다. 지금의 내가 경로를 벗어난 상태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랬을 것이고 아마 아예 읽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우리가 모두 다르듯이 우리가 가야 하는 길도 다르다는 것을. 그 다름을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누구도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니고 각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이제  이상 이런 책은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가장 쉬운 판에 박힌 길을 떠나 자신의 길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특별한 콘텐츠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어떤 삶이라도 그것이 특이한 것이 아닌 모두에게 인정받고 응원받을  있는 세상이 오길 바란다.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위한 여정을 담은 책은  책으로 충분하다.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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