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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Dec 12. 2020

잠깐 쉬어도 안 죽어

<회사원 서소 씨의 일일>

태어난다 유치원을 간다 초등학교를 간다 중학교를 간다 고등학교를 간다 대학교를 간다 군대를 간다 취업을 한다 결혼을 한다 아이를 갖는다 계속 일을 한다


쉼표가 없다. 이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이다. 나를 돌아보고 할 여유가 없었다. 항상 그다음이 바로바로 있었다. 다음 단계를 넘어가는 중간의 시간도 휴식이 아닌 다음을 위한 준비를 위해 존재했다.


몸과 마음이 힘들어서 쉴까 하다가도 주변을 돌아보면 지치지 않고 더 조금 쉬고 나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놀랐다. ‘아, 내가 너무 안일했구나. 달릴 시간도 부족한데 감히 쉬려고 생각했다니... 아직 멀었구나...’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런 스스로를 나태하다고 여기며 늘어지지 않게 박차를 가했다.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다. 휴게소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듯 쉬어감 없이 계속 계속.






30년을 넘게 달리다 보니 짬바(짬밥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생겼다. 달리면서도 몰래몰래 의문을 가지면서 고민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거 도대체 언제까지 달려야 하지? 어디가 목적지인 거야?’

‘이렇게 계속 달리면 내 몸과 마음은 무사할 수 있나?’

‘정말 모든 사람이 다들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하고 사는 건가?’


답을 알고 싶었지만 미친 듯 달려가는 옆사람들에게 물어보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어쩌다가 ‘도대체 왜 달리지?’라며 고민에 빠져 멈춰 선 사람에게 쏟아지는 비난과 질책을 보면 괜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딴생각할 때가 아니구나. 지금은 한창 달릴 때구나.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하고. 한 걸음이라도 남들보다 더 나아가야 하는구나.


생겨나는 질문을 품어볼 새도 없이 옆이나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그저 앞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저 앞 끝에 무엇이 있을지 두려워하지도 않고 마구 마구.






스스로 멈춤을 결정하지 못했기에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아 적당한 교통사고라도 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정말 그랬다. 심각하지 않은 부상으로 몇 달 정도 쉬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무탈했고 건강했다.


가끔 가뭄에 콩 나듯 가지는 휴가는 계륵과 같았다. 휴가 기간에도 완벽히 그 ‘인생 달리기’를 잊기 어려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복귀해서는 그동안 못 달린 만큼 달리느라 몸과 마음이 더 힘들었다. 그래도 이마저도 없으면 죽어버릴 것 같아서 매년 휴가를 악착같이 챙겼다.


내 삶인데 내가 스스로 쉬지 못하니 누구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모든 결정과 그로 인한 괴로움은 내 몫이 맞았다. 꽤나 단련되어 왔기에 그런 불평불만도 이제는 그저 습관적이었다.


점점 달리기에 대한 의문도 품지 않고 살게 되었다.






이게 딱 1년 전까지의 내 삶이었다. 지금은 완전히 멈췄다.


같이 달리던 그들이 한참 앞으로 가서 보이지 않는다. 처음에는 앞서가는 그들을 보며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들이 내 옆에 있었는지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혼자 조용히 남게 되자 그제야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 ‘멈춤과 휴식’의 시간은 내 인생의 최고의 시간이 되었다.


왜 멈추었을까? 달리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멈췄다. 무슨 말일까? 내 아이가 이유도 모르고 끝까지 달려야 하는 ‘죽음의 레이스’를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왜 달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멈추는 이유를 알려주기 위해 멈췄다.  


이제 멈추는 이유를 대답해 줄 수 있다. 삶의 목적은 달리는 데만 있지 않다고. 달리고 멈추는 것은 모두 자신이 결정해야만 한다고. 남들보다 더 빨리, 멀리 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이런 멈춤 속에서 동갑내기의 쉬어가는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의 상황은 나와 많이 달랐다.  가족 구성, 멈춤의 원인, 지내는 장소, 가지고 있는 고민 등 완전히 달랐다.


하지만 2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는 것, 그리고 쓰기를 시작한 것. 과거에 행한 수많은 선택과 결과들이 그의 머릿속에 들이닥쳤다. 쓰고 싶은 행위를 채우기 위해 읽고 쓰기를 반복했다.


직접 보지 못하고 대화할 수 없기에 확인할 방법은 없지만 분명히 그럴 것이다. 그가 써 내려간 이 책에 모두 나와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다른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다. 멈춤의 시간에 있었던 일들은 사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 꾼’이라는 작가답게 정말 재미있게 풀어낸다. 재미있는 글은 항상 옳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의미 없이 재미있기 어렵다는 것이다. 의미가 있기에 재미가 있는 것이다. 유머는 우리가 구사할 수 있는 최고의 기술이다. 작가는 이것을 글 속에서 능수능란하게 다룬다.


또한  작가의 글에는 내가 영원히 설명할  없을 특별함 있다. (내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사랑하지만 뭐라고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것처럼)   브런치에서 다양하고 수많은 형태의 글들을  읽어 봤지만 이런 글은 없었다. 의식의 흐름으로  내려간 글은  사람의 의식을 따라가지 못하면 읽기 어렵다. 처음엔  글들도 그런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많은 고민과 퇴고의 과정을 거친 정제된 글이었다. 나는 절대 이런 글을   없다. 아마 읽는 분들도 그런 생각을 하게  것이다. 그래서  글과 책이 좋다.


그리고 이런 그의 작품을 탄생하게 해 준 그의 ‘멈춤'이 좋다. 달려야만 하는 우리들 인생에서 멈춤의 의미와 재미를 알려주는 특별한 이 작품은 널리 읽혀야 한다. 그래야 마구 달려가는 스스로를 붙들어 세울 수 있을 테니까. 잠깐 멈춰서 숨을 골라도 세상 안 끝난다고.



읽고 남는 건 받은 질문과 했던 고민뿐

삐딱한 표지 사진 한 장 없는 서평을 고집스럽게 쓰는 이유






 브런치는 이런 곳입니다.

이 작가와 책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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