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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Dec 07. 2020

나 학교 가기 싫어

뒤늦게  등교거부

월요일 아침, 어느 집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이 새어 나온다.


‘오늘 학교 가기 싫어~’


하지만 우리 집은 처음이었다. 올해 내내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흥분과 기쁨이 하늘까지 올랐다가 생일이 끝나면서 기분이 바닥까지 내려온 아들의 상실감은 이렇게 찾아왔다. 하지만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는데...


학교 가기 싫은 사람의 방 / 학교 가기 싫은 자세






약 한 달 전 한창 생일잔치를 준비하던 어느 날 처음으로 학교에 아들을 늦게 데리러 갔다. 브리즈번에서 돌아오는 길에 도로에 사고가 연달아 나서 20분 정도 늦었다. (그날의 답답했던 기억 -> 생일잔치 준비 대작전)


그때의 충격이 아들에겐 매우 컸었다.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부족했다. 그게 다 였으면 괜찮았을 텐데...


미술 레슨 시간에도 사건은 벌어졌다. 그것도 2번이나...


이제는 혼자서 수업을 듣는 아들을 믿고 중간에 필요한 물건을 사러 다녀왔다. 하지만 두 번 다 아들에게 들켜서 아들이 충격을 받았다. 처음에는 가기 전에 없던 물건이 생긴 것을 보고 알아챘고, 두 번째는 아예 중간에 나와서 우리 차가 없는 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ㅡㅜ (땡땡이치던 우리의 잘못)



결국 우리가 잘못했다. 한 번 늦고 나서 두 번 사라진 것이 아들의 불안감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아들의 학교 가기 싫다는 것의 이유는 명확하다. 학교에서의 생활이 재미없거나 불편해서가 아니다. 그저 학교 마치고 데리러 올 때 늦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아빠 절대 늦지 마! ㅡㅜ’


그리고 여기에 더해 남들보다 더 일찍 데리러 와 주길 바라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게 내가 애를 쓴다고 막 그럴 수가 없는 것이 문제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정해진 시간에 학교 문을 열어주는데 그때까지는 밖에서 학부모들이 자유롭게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여유롭게 들어간다. 이때 나 혼자 미친 듯이 사회적 거리를 무시하고 달려 나갈 수가 없다. 심지어 문이 2군데가 열리는데 그 순서는 그때그때 다르다.


하지만 아들에게 저지른 잘못이 있기에 요즘에는 이렇게 하고 있다. 적당한 거리에서 두 문이 다 보이는 곳에서 기다리다가 문이 먼저 열리는 모습이 보이면 달려간다. 사회적 거리를 최대한 유지하면서 쏜살같이 맨 앞으로 추월해서 나아간다. 그렇게 몇 번을 일등으로 아들을 데리러 갔더니 아들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 목요일 즈음이 되자 좀 안정이 되었다.


‘아빠! 오늘도 일찍 오려고 노력해주면 좋겠어!’


그렇게 눈물 없이 오랜만에 씩씩하게 등교했다. 아침마다 울며 들어가는 아들을 보신 교문을 지키시던 부담임 선생님께서는 아들이 교실에서는 정말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매일 알려주셨다.






아빠 엄마의 실수로 급 학교에서 불안하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하다. 그래도 다시 돌아와 줘서 고맙다.


이제 정확히 3일 남았다. 3일만 학교에 가면 올해 PREP 과정을 마치게 된다.


솔직히 믿기지 않는다. 굉장하고 대단한 아들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박수를 보낸다. (나라면 저렇게 못했을 것을 확신한다.)


하굣길 / 미술 레슨 / 수영 레슨






에피소드



1. 크리스마스 카드

이곳에서는 연말에 친구들끼리 크리스마스 카드를 사탕이나 초콜릿과 함께 주고받는 문화가 있다. 아들도 반 친구들에게 많이 받아왔고 본인도 모두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이젠 직접 쓸 수 있는 아들이기에 공을 들여서 친구들 이름과 본인 이름을 적어나갔다. 24명의 친구들에게 정성스럽게 전달하고 왔다며 뿌듯해했다.



2. 플레이 데이트

우리 집 근처에 사는 반 친구가 아들과 함께 놀고 싶다고 자주 이야기한다. 어느 날도 내게 말했다.


(아들 친구) ‘나, 준이랑 플레이 데이트하고 싶은데 할 수 있어?’

(나) ‘그럼! 그런데 너희 엄마한테 물어봐야 해!’

(아들 친구) ‘응, 근데 네 이름은 뭐야? 엄마가 누구한테 말하면 돼?’

(나) ‘아 내 이름은 준이랑 똑같은 준이야. 너희 엄마가 내 이름도 알고 준 엄마 이름도 다 알고 있어.’


그 친구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는지 씩 웃고는 돌아섰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들은 쿨한 미소만 짓고 있었다. (둘이 학교에서 무슨 쿵작을 맞춘 걸까?)



3. 아들 앞에서 말싸움

아들이 저녁 식사 자리에서 밥을 소홀히 하며 짜증과 함께 소리를 높였다. 아들의 밥상머리 교육에 관심이 높은 우리는 기분이 상했고 그것이 다른 곳으로 불똥이 튀었다. 이미 아들과 관계없이 우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어찌어찌 그날은 마무리하고 잤다.


다음날 파랑에게 전해 들으니 아들이 미안해했다고 한다. 자기가 소리 질러서 엄마 아빠가 싸운 것 같다고. 사실 우리의 말다툼에는 아들은 이유가 아니었기에 그런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었다. 아들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고 또다시 서로 약속했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해서 많이 미안했다.



4. 밥이 다네

아들은 아주아주 가끔 배가 고프다고 한다. 언젠가는 배고파하는 아들에게 밥을 차려주었더니 이렇게 말했다.


‘와~ 밥이 달다~’


허기진 상태에서 쌀밥을 꼭꼭 씹어먹더니 단맛이 난다고 놀란 모양이다. 결국 그날은 밥만 많이 먹었다. (다른 방식으로 속이 터진다.)


최선을 다해 친구들 이름 적기 / 24명의 크리스마스 카드 / 캠핑놀이 하기 전에 밥 잘 먹자






파랑은 실습을 무사히 잘 마쳤다. 아주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다음 일정을 준비 중이다. 혼자서 집에서 조용히 공부해야 하는 기간. 파랑에게 공간과 시간을 주기 위해 오랜만에 아들과 하루 종일 바다에 다녀왔다.


늘어지게 놀다 왔다. 덕분에 난 약간의 화상을 입었지만 ^^;;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같이 좋아하는 과자를 먹으며 오는 시간이 괜히 좋았다. 그날은 아주 일찍 둘 다 기절했다. 그리고 난 아직 등짝이 따갑다.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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