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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Nov 30. 2020

비도 오려하고, 아들도 아프고...

생일 파티 한 번 하기 어렵네

드디어 그날이 왔다.


하지만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먹구름이 가득 찬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 같았다. 일기예보 상 비 소식은 없었지만 비가 와도 이상하지 않을 날씨였다. 몇몇 분들이 연락이 왔다. ‘비올 것 같은데 계획 변경 없나요?’ 비가 올 계획이 없고 아직 오지 않기에 일단 그대로라고 답했다.


아들은 아주 새벽같이 ‘내 생일 파티 날이다~!’를 외치면 일어났다. 이렇게 흥분하고 기대하는 아들을 본 적이 없었다. 잠을 더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이미 학교 마친 기분이라며 시간을 여러 번 확인했다. 이른 아침임을 확인하더니 아예 학교 안 가고 생일 파티 준비를 도우면 안 되겠냐고 했다. 정신을 차리자고 달래며 정상 등교시켰다.


파티 날이라고 머리 힘 좀 주었는데 너무 일찍 일어나서 피곤해 보임






파랑과 나는 이제 막바지 준비를 했다. 파랑은 컵 케이크를 만들고, 나는 혹시 모를 사태(비가 와서 집에서 파티를 하게 되는)를 대비해서 집을 청소하고 정리했다.


아들이 학교 간지 1시간이 지났으려나? 전화 올 일이 없는 내 전화기가 울렸다. 호주 유선 번호였다. 마음이 불안해졌다.


‘여긴 브라잇 워터 스테이트 스쿨이야. 준이 아파.’ 제대로 알아들은 게 맞나 싶어서 잠시 멍해졌다.


(나) '뭐라고? 내 아들 준? 준이 아프다고?’

(학교) '응. 배가 아프고 토할 것 같은 기분이래.’

(나) '내가 지금 바로 가면 될까?’

(학교) '응. 가능하면 그래 주겠니?’

(나) '지금 바로 갈게!’


파랑에게 간단하게 소식을 전하고 바로 차를 몰고 달려갔다. (혹시 몰라서 휴지도 들고) 학교 사무실 앞에 대충 차를 대고 시동도 끄지 않고 뛰어 들어갔다. 양호선생님과 부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맞이했다. 양호실 침대에 기대어 구토 봉지를 잡고 있는 멀쩡한 아들 얼굴을 보니 대충 돌아가는 생황을 파악했다.


‘음.. 내가 보기에는 아들이 많이 흥분해서 그런 것 같아. 사실 오늘 학교 마치고 아들의 첫 생일 파티가 있거든. 오늘도 그것 때문에 6시에 일어났어.’


걱정 가득했던 두 선생님 표정이 바로 이해 가득한 얼굴로 바뀌셨다. 잠시 아들과 이야기를 해도 되겠냐고 물었고 두 분은 자리를 피해 주셨다.






(나) ‘아들, 지금 좀 어때? 막 토할 것 같아?'

(아들) ‘그냥 계속 울렁울렁 해’

(나) ‘오늘 생일 파티 날이라서 기대되고 흥분돼서 그러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아들) ‘응 친구들이 전부 다 내 생일 파티라고 계속 이야기해. 그래서 마음이 계속 긴장돼.’

(나) ‘그러면 지금 아빠랑 병원이나 집으로 갈까? 아니면 긴장을 좀 가라앉히고 학교에 있어 볼래?’

(아들) ‘음…. 여기 아빠랑 조금 앉아 있다가 교실로 다시 가볼래.’


두 선생님께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5분만 함께 있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아들과 손을 잡고 내 어릴 적에도 기분 좋은 날이면 긴장해서 속이 안 좋았던 적이 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물도 조금 마시고 얼굴 표정이 다시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함께 양호실을 나섰고 양호선생님께서 아들을 교실로 데려가 주셨다. 가면서 뒤돌아서 밝게 손 흔들며 웃는 아들은 보고 안심했다.


다시 집으로 복귀. 파랑에게 설명하며 대단한 우리 아드님에 서로 감탄했다. 다행히 아직 비는 오지 않았고 준비물을 모두 차에 실었다. 그리고 멀지 않은 학교 근처 공원에 자리를 잡고 하나둘 꾸미기 시작했다. 시간은 빠듯했다. 바람은 점점 심해졌고, 비는 아직 오지 않았다.


이제 하교 시간이 되어 마무리 작업을 파랑에게 맡기고 나는 학교로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이미 생일 파티에 오는 친구들의 흥분 덕분에 그곳이 파티 분위기였다. 엄마들도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고 내게 말을 걸었다. 축하한다고, 지금 바로 가면 되냐고. 아들 손을 잡고 손님들보다 늦지 않게 생일 파티장으로 서둘러 향했다.


아들은 아침의 그 어쩔 줄 모르는 상태는 아니었다. 딱 즐길만한 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차려진 파티 공간과 엄마를 확인한 아들은 얼굴에 놀라움이 가득했다. 하나둘 도착하는 친구들을 맞이하는 아들은 행복함이 점점 차 올랐다.


흥분지수 100%였던 그날의 생일자



그렇게 시작된 아들의 첫 생일 파티는 2시간 뒤 잘 끝났다. 하늘이 도우셔서 정말 거짓말처럼 비는 파티가 끝나자마자 내리기 시작했다. 선물과 카드도 많이 받고, 준비한 게임도 정신없는 내 진행 속에 어쨌든 잘 마쳤다. 차려놓은 장식과 음식에 대한 칭찬도 충분했다. 영어 대화도 정말 충분했다. 


약 3주간의 생일잔치 대작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느낌은 마치 큰 프로젝트, 대규모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끝낸 기분이었다.


다음날부터 파티에 왔던 부모들이 부쩍 더 친하게 대화를 걸어와서 많이 힘들었다. (문자로 하자 문자로...)


그렇게 며칠은 계속 몸과 마음이 피곤했던 기억이 있다.







아들의 실제 생일은 파티 며칠 뒤였다. 파티 다음날 아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전했다. 진짜 생일날에 우리 집에 놀러 오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고 했다. 그 친구들이 자기 엄마에게 물어본다고 했다고 했단다. 다행히 매너 있는 그분들은 우리에게 따로 연락을 하지 않으셨다. (우리도 좀 쉬어야지...)


아들의 진짜 생일날은 다소 잔잔하게 보냈다. 학교에서 미리 예약해 둔 ‘생일 아이스 블록’ (아이스크림)를 반 친구들과 나누어 먹으며 축하를 받았다. 그날 있던 수영 레슨에 가서도 선생님께 생일임을 밝히고 축하를 받았다. 한국에서 아직 도착하지 못한 생일 선물 덕에 특별히(?) 생일 당일 선물을 추가로 받았다. (받아 갔다?) 오랜만에 다 같이 맛나고 분위기 좋은 식당에 가서 세 가족 모두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도 했다.


특별 생일 선물로 만난 고난도 레고 (집중하는 뽀로로 입술)






이제 아들은 6살이 되었다. (호주 나이) 이곳 호주에 올 때 4살이었는데 생일이 두 번 지나면서 6살이 된 것이다. 많이 자랐다. 몸과 마음이.


벌써부터 내년 생일 파티는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이 되지만... 우선 일 년은 벌었으니 잠시 놓아두려고 한다. 생일이 일 년에 한 번이어서 참 다행이다.


생일 축하한다. 아들. 나중에 이 글들을 보면 이런 우리의 마음을 알 수 있을 거야! 하하.


생일 카드 (중간에 한글도 보인다 - 감동!) / 생일 선물



생일잔치 준비 대작전 시작!


누가 누가 파티에 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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