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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Jan 13. 2021

아빠는 지금 혼자서 몰래 홈캉스 중

절대 모를 줄 알았는데...

요즘 파랑이 나를 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다. 아들과 붙어서 잘 놀다가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꼭 확인을 한다. 시야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중에 한마디를 붙인다.


'요즘 자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시는 것 같은데?'


헉... 숨이 멎는 듯하다. 맞다. 아들과 파랑이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기회를 틈타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티 안 나게 절묘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와이프의 촉은 살아있다. 아들과 함께하는 정신없는 상황 속에서도 내 위치 파악을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실 이리 지낸 지 된 지 좀 되었다. 내겐 꿀 같은 시간이기에 너무 이른 발각에 아쉬움이 크다.






그 시작은 아마 작년 말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즈음 파랑의 중요한 시험 합격 결과가 나온 뒤 본격적인 두 학생의 방학이 시작되던 시점.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여유가 생긴 파랑이 아들과 본격적으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나도 불안하게 파랑을 지켜볼 필요가 없어서 편했다. (자기가 공부하는 것도 아닌데 뭔가 있으면 옆에서 더 많이 동동 댄다)


두 학생이 맞는 구석이 많아서 이것저것 샤부작 거리면서 잘 논다. 만들고, 요리하고, 실험하고. 내가 잘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나는 무엇을 하더라고 예쁘고 그럴듯하게 하기보다는 그거 '완수'에 의미를 둔다. 아들은 그것도 싫어하진 않지만 파랑이 싫어한다.


그래서 잘하고 좋아하는 분과 아들을 붙여 놓은 것뿐이다. 둘이 붙어있는 시간에 나도 처음에는 분위기를 맞추고 맞장구를 친다.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적절한 시점에 상황을 빠져나온다. 그리고는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딱 이 정도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파랑이 '뭔가 좀 이상한데?'하고 느낀 것이다.






그래도 마냥 이렇게 편안하게 늘어져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연초에 우리 가족은(나를 포함해서!) 무척 바쁜 나날을 보냈다.


날 좋은 날 교회 아동부 친구들과 부모님들을 초대해서 수영장과 집에서 하루 종일 놀았다. 1박 2일로 결혼기념일 여행을 다녀오며 삼시 세 끼 잘 먹고 왔다. 아들의 학교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서 놀게 해 주었다. (2차 플레이 데이트) 지난 토요일에는 아들 학교 친구 생일 풀 파티에 다녀왔다. (이건 나 빼고 ^^;;) 주일에는 갓 태어난 아기가 있는 지인 가족을 초대해서 먹고 즐겼다.


이런 일정을 제외하고 나면 내가 혼자 쉬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내가 본격적으로 파랑을 마음 놓고 아들과 붙어있게 한 것이 처음은 맞다. 그동안 아들이 엄마 공부시간을 침범할까 봐 늘 내 곁에 두고 가까이하지 못하게 했었다. 이젠 좀 여유가 생겨서 마음껏 붙어있게 둔 것이다.


어디까지나 이건 강요가 아닌 아들의 선택이다. 선택받지 못한 자는 조금 떨어져서 여유를 즐겼을 뿐이다.


이 시간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바라며! 하하.



결혼 기념일 여행 (인데 아들만 있네...)






아들의 말말말



1. 드림 하우스


차 타고 이동 중, 파랑이 아들에게 나중에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지 물었다.


‘난 큰 집에 살고 싶어, 왜냐하면 강아지 10마리, 고양이 10마리를 키우려고’


나와 파랑은 기겁을 했다. '아들~ 그런데 강아지랑 고양이는 아기 돌보듯이 밥 주고 똥, 오줌 치워줘야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똥, 오줌? 아, 그 생각은 못했네! 그럼 고양이만 1마리!'


굳이 비유하자면 고양이에 가까운 아들은 이렇게 고양이 사랑에 빠져있다.



2. 화장실 부자


나와 아들이 기가 막히게 잘 맞는 순간이 있다. 바로 화장실에 갈 때다. 둘 중 한 명이 신호를 보내면 꼭 다른 한 명이 그 신호를 받는다.


'아들~ 아빠 화장실 다녀올게~'

'아, 나도 화장실~'


이런 일이 정말 자주 있다. 거의 늘 발생한다. 집에 꼭 화장실은 2개 이상 있어야 한다.


친구와 집에서, 친구 집에서 놀기 놀기 놀기






매년 1월 초가 되면 내가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다. 올해도 무사히 잘 마쳤다. 바로 지난 1년 동안의 아들 사진을 골라서 앨범을 제작하는 것이다. 한국에 가보지 못한 아쉬움을 담아서 양가 부모님께 손주의 지난해를 선물해 드렸다. 받아보시고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아팠다.


거의 1년을 버티고 있는 이 바이러스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이곳 호주도 계속 위험과 긴장 상태다. 우리가 브리즈번 여행에 복귀한 바로 다음날부터 락다운이 시작되었다.


새해의 바람과 소원이 모두 그것에 달려있는데 마음이 약해진다. 그래도 희망은 놓칠 수 없다. 그것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기에.



* 매일 쓰는 진짜 일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급 정보가 있지도 않은 아이와 지내면서 겪는 온갖 후회와 반성의 잡생각 뭉탱이 '육아 생존기'를 애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빠로서 기록하는 글을 쓰고 나면 자주 듣는 말이 있어요. 어떻게 아빠가 이런 육아 일기를 쓸 수 있냐고요. 부럽고 신기하다고요. 정말 그런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전혀 관심 없던 전과 달라진 건 사실입니다. 그 변화의 일대기는 제 책 <아빠 육아 업데이트>에 담겨있습니다. 변화를 원하신다면 권해봅니다. 또 누가 변할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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